법의 역사
개인들의 갈등에서 크게는 국가 기관을 상대로 하는 일까지
우리는 어느 덧 대화가 아니라 법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도 ‘법치주의’라 하여 ‘법’을 강조합니다.
1. 그럼 ‘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사회가 생겨나면서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
사회가 형성 전 => 힘으로 해결
홉스가 말하는 '만인과 만인과의 투쟁"이 벌어지는상황
이 단계를 지나 기본적인 규칙은 생겼을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법이 아닐까
내용은 공동 생활에 필요한 극히 기본적인 사항에 그침
예를 들어 고조선의 8조 법금 중 일부가 남아있는데
살인한 자는 죽인다
다른 사람을 다친게 한 사람은 곡물로 배상한다.
도둑질은 한 사람은 노예로 삼는다.로
그러다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복잡해짐.
2. 최초의 성문법 ?
학교에서는 bc1750년의 바빌로니아의 함부라비 법전 이다라고 배움
지금은 우르남므의 법전이 세계 최초의 성문법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세계 최초의 성문법보다는 지금 남아있는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3.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은 ?
돌에 새겨져 루부르 박물관에 보존
가장 유명한 내용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적인 형벌이 있는데
자유민의 뼈를 부러뜨린 사람은 뼈를 부러드리는 벌을 받는다.
이런한 법은 바빌론법 뿐만아니라 그 당시 살았던 사회 공통적으로 적용
지금도 사람들의 잠재 의식 속에 가장 공평한 것은 자기가 한 것 만큼 받는 것
4. 세계의 3대 법전 - 유스타아누스 법전
함무라비 법전, 유스티아누스 법전 , 나폴레옹 법전
유스티아누스 법전이 만들어진 로마
로마가 위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법문화
법 문화가 발전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로마인의 권리 의식이 발달
일찍 종교의 권위에서 벗어나서 세속적인 법이 발달했고
법의 제정을 보더라도 지배자의 일방적인 입법보다는 투쟁과 타협을 통해 법이 만들어짐.
에를 들어 평민이 귀족의 압제에 대항해서 나온 법이 12표법
=> 시민들이 총 파업을 한 것. 산에 올라가서
근데 실질적으로 평민을 위한 내용이 없다.
에를 들어 귀족과 평민의 결혼을 금지 조항이 있다던가
12표법을 만드는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 => 12인 입법가들이 귀족이었다. 등의 이유를 들어서
평민들이 쟁취한 법전이기보다는 오히려 평민들의 힘이 커지는 가운데 귀족들이 위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만든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단 성문법이 만들어지고 광장에 노여서 공개된 것은 커다란 진전임
그외도 로마의 사회지도층들이 유난히 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로마 시민 고유의 시민법을 넘어서 지중해 문명의 공통된 법의 원리를 찾아서
세계에 적용할 수잇는 만민법을 발전시켜 나감.
로마법학은 후대 실정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5. 로마 이후 중세유럽의 법
교회가 이성의 위에 존재 했던 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회가 기독교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있었는데
법도 마찬가지
기독교의 지배에서 국가나 법 질서에있어서도
교황과 국왕의 대립 속에서 종교적인 교황권이 세속적인 왕권에 우월한 것으로 인정
기독교의 영향으로 자연법이 강조됨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아우쿠투스는 법을 영구법, 자연법, 속세적인 실정법으로 규정
영구법은 창조된 질서 법이고
자연법은 인간의식에 의한 영구법의 모사이고
속세법이 실정법인 것인데
영구법이 가장 상위법
영구법에 의해서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
이러한 자연법론은 부당한 실정법에 불복할 수 있다는 저항권의 '이론적 근거가됨.
반면 종교적인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특정한 사상을 믿도록 강요하고
재판에 있어서도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과 부합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간주
예가 지오다르노 부르노의 재판을 들 수 있다.
당시 종교계에선, 교리에 따라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이 돈다 => 천동설
부르노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우주가 무한하다라는 주장을 함
사실 과학에 대한 주장일뿐인데 이것이 죄로 인정 되어서 화형을 당하게 됨.
학문의 자유를 부르짖다 돌아간 최초의 사례로 알려짐
부르노가 죽인게 1600년 전인데 중세의 거의 해체될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의 권위가 막강
6. 근대 시민혁명
기존 법과 다른 점은 ?
법 제정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게 됨.
로마 시대에는 시민들이 제정에는 참여 못함
법 내용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
불가침의 인권이 인정
중세의 법과 완전히 다름
물론 이 당시에 제정된 법이 불합리한 부분도 있지만
시민들이 법을 만드는데 직젖 참여
그리고 국가가 교회가 침해할 수없는 권리의 영역이 잇었다는 사실
7. 나폴레옹 법전 =? 오늘날 각종 민법의 원형
나폴레옹이 만든 법이 아니고 그전에 잇던 법들을 모아 편찬한 것
중세적인 요소의 법률들과 근대적인 요소가 혼합된 법 체ㄱ계를 합쳐서
프랑스에 적용해서 통일된 법전을 만들게 됨
이 법전은 당시 새로 등장한 법질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특히 소유권의 절대성을 주장해서 자본주의의 밑받침을 닦음.
특히 계약 자유의 원칙을 규정해서 이것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과
자유로운 소유권 유통에 전제가 됨.
그외에도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본사상으로 해서
법앞에 평등 개인의 자유
신앙 및 계약의 자유 권적 기본권을 보장
나폴레옹 스스로도 나의 진정한 명예는 마흔 번 싸워서 이긴 전승이 아니다. 워터루에서 다 사라지기는 햇지만
영원히 살아지지 않는것은 나의 민법 전이다.
8. 아시아의 법
도덕과 법의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엿다.
동아시아와 서양 근대법의 차이점
법에 대한 동아시아의 전톶적인 사상 은 덕치주의
유학에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의 방식이다.
유학은 하은주의 3대를 이상으로 해서 3대의 정치 를 덕치로 파악해서
이것을 통해서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하게 됨
덕치주의는 특히 공자에 의해 강조
첫재는 통치자의 측면에서 군주가 도덕적으로 정당해야 된다.
정치는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드는 것인데
도덕적 정당성이 없으면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
둘째로 피지배자의 측면에서 볼때는
통치자의 덕에 감화되서 피지배자가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 것 을 이상적인 형태로 봄
이것은 덕에 감화된다는 측면에서 볼때는 정당하게 보이지만
자발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면에서 보면
현대 생각하는 법적인 개념하고는 차이가 잇다.
지금 현대에 와서도 단순하 법치주의가 형식적 법치주의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으로 내용의 정당성을 가져야된다. 그런 면들이 강조되는 것을 볼때
덕치사상도 정치와 정치가의 도덕적 정당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 의미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현재의 법은 규제하는 쪽으로 나가려는 현상이 잇다.
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편리하도록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생길때
규제보다는 뒷받침해주는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