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노동착취의 딜레마
“일당 300원이 없으면, 아이들이 굶어요”
아동 노동 착취의 딜레마
매년 6월12일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World Day Against Child Labour)’이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현장에 내몰려 있는 아동의 숫자는 약 2억4,600만 명.
이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의 아동들이라고 한다. ILO의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국제프로그램(IPEC)’은 “빈곤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불안한 정치상황 등도 아동노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운데 ‘축구공의 경제학’이라는 개념으로도 유명한 세계적인 스포츠기업들이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해 어린이노동독립감시협회(IMAC)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동노동을 배제하려는 이와 같은‘도덕적’움직임 덕에 아이들과 아이들의 가족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오각형과 육각형의 가죽 32조각, 1,620회의 바느질…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의 일당 2천만 원, 인도와 파키스탄 아이들의 일당, 300원.”
전 세계 수제 축구공의 70%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1만5천 명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축구공 하나의 가격은 15만 원, 하루 종일 축구공을 꿰매는 아이들의 일당은 300원이다.「 지식e」(EBS 지식채널e/북하우스),‘ 축구공 경제학’중에서.
딜레마
지난 10월28일자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일판 옵서버는, 미국의 세계적 의류업체인 갭(GAP)의 어린이용 저가 의류가 인도의 아동 노동착취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10세 안팎의 어린이들이 노예와 흡사한 조건에서 갭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비극은 서구의 소비자들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제품을 계속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에 따르면, 갭 하도급업자들은 뉴델리에서 30시간 떨어진 오지에 사는 부모에게 7파운드(한화 1만3000원) 정도의 선금을 지불한 뒤 어린이들을 데려오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아동들이 월급도 전혀 받지 못했으며, 일이 힘들어 울음을 터뜨리면 감독관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기름걸레를 물고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비난을 받자 갭은 인도 하청업체에 대한 주문을 취소했다. 그러나 갭은 이미 지난 2000년에도 캄보디아에서 아동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BBC에 의해 폭로된 적이 있다. 이에 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또 다시 인도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제3세계에서 노동을 착취하고 있으며, 나아가 5~6세 아동들의 노동력까지 수탈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나이키도 1990년대 초 인도 및 파키스탄의 아동노동을 착취해 축구공을 생산했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다국적 기업이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노동 착취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편 나이키, 퓨마, 아디다스 등 일부 초국적 기업들은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해 어린이노동독립감시협회(IMAC)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FIFA는 1996년, 국제자유노동연맹(ICFTU)와 함께 FIFA 라이센싱으로 생산되는 축구공 및 용품과 관련한 일정 노동기준을 채택했으며, 1996년에는 “강요하거나 구속된 노동 혹은 아동노동으로 생산된 축구공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다국적기업이 하청업체에 대해 계약만료를 선언했다고 아이들의 아픔도 함께 끝나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동들에게는 일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는 것 또한 고통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일하는 아이들…
<# 장면 하나> FIFA공인구의 외피는 대체로 12개의 5각형과 20개의 6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구공의 주요 생산국은 한국, 모로코, 태국, 파키스탄, 인도 등이다. 2006년 11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사는 자사에 수제 축구공을 공급하던 파키스탄의 ‘사가스포츠사’와의 계약 종료를 선언했다. 파키스탄에서 연간 생산되는 축구공은 약 4천만 개, 그 중에서 사가스포츠의 생산량만 약 6백만 개에 달한다.
지금까지 약 4만5천 명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사가스포츠에서 축구공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축구공을 만드는 노동력이 대부분 어린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만들 때마다 버는 돈은 100~150원 정도이다. 5~6세 아동들의 경우 축구공 하나를 만드는 데에만 13~14시간이 소요된다. 아이들은 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중독되어 시각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인도 소녀 소냐도 5살 때부터 축구공을 만들었다. 2년 동안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다가 눈에 이상이 왔다. 소냐는 축구공의 스티커를 붙이는 화학약품의 강한 독성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소냐는 시력을 잃어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동생들은 축구공 만드는 일을 계속 해야만 했다.
<# 장면 둘> 신흥공업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인도. 그러나 인도에는 천만여 명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의 어린 노동자, 12살 소년 문나는 채석장에서 일한다. 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타지에서 살던 문나는 부모가 그를 채석장업자에게 팔아넘겨 이곳에 오게 되었다.
가난에 지친 부모가 선금을 받고 아이들을 채석장에 내보내는 것이다. 아이는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노예처럼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식사는 아침·저녁에 먹는 주먹밥 두 개가 전부다. 숨조차 쉬기 힘든 섭씨 35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아이는 온종일 맨손으로 돌을 깨고 나른다. 문나의 손가락은 상처투성이다. 손바닥은 닳고 닳아 지문이 문드러진 지 오래다. 하루 10시간 이상 힘든 일을 하는 채석장의 아이들은 일사병으로 쓰러지거나, 몸속에 돌가루가 쌓여 폐질환을 일으키는 등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게다가 이와 같은 채석장은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되는데, 이들 불법 고용주가 아이들에게 주는 일당은 고작 500원 정도이다.
<# 장면 셋> 중앙아시아의 최빈국으로 꼽히는 키르기스스탄. 1991년 구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된 이후 느닷없이 찾아온 ‘자본주의’는 국민들의 빈곤을 악화시켰다. 이곳에는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월12일 문화방송(MBC) 국제문제 관련 프로그램 ‘W’는「막장의 아이들-키르기스스탄」을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어린 노동자를 소개했다. 취재진이 만난 아이는 14살 소년 우멧이다. 아이는 탄광촌에서 일한다.
가로·세로 1미터 남짓인 갱도를 몸을 숙인 채 수십 미터는 족히 걸어 들어가야 우멧이 일하는 장소가 나온다. 자욱한 석탄가루와 유독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우멧은 안전장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일을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멧과 함께 일하는 아이 노르딘이다. 노르딘은 이제 겨우 10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조그마한 아이, 탄광에서 일한 지 2년이나 되었다. 탄광에서 아이들이 하는 일은 어른들이 캔 석탄을 자루에 담아 밖으로 나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보통 자루에 담아서 나오는 양은 50킬로그램 정도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몸무게보다도 무거운 짐을 지고 날라야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햇볕 한 자락 들지 않는 탄광을 10여 차례 이상 드나들고 있다. 아이들이 탄광촌에서 일하는 이유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자루를 이고 나가기에는 갱도가 너무 좁아 아이들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2006년 현재, 전 세계 노동 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아동의 숫자는 약 2억4,6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 중의 절반이 아시아의 아동들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99년 6월17일, 제네바 연례총회에서 ‘협정 182조’로 알려진‘최악의 아동노동금지 협정(Convention Concerning the Prohibition and Immediate Actions Toward the Elimination of the Worst Forms of Child Labour)’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는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가혹한 노동과 매춘, 강제징병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매년 6월12일은 ILO가 정한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1996년 라이프 지에 나이키 로고가 찍힌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실리면서 전 세계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나이키 불매운동에 나섰고, 나이키의 주가는 폭락했다. 한 켤레에 150달러(약 15만 원)인 나이키 운동화를 어린이들이 2달러가 채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며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주가가 폭락한 나이키는 결국 파키스탄의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나 아동노동을 배제하려는 이러한 움직임들 때문에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지역에서만 약 2만 가구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아니, 생명 부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노동 현장으로 내몰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은 이 사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 가난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법적 규제를 준비하고 있는 곳도 있다. 우멧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국민총생산이 구소련 국가들 중 최저일 뿐 아니라, GDP가 러시아의 0.3%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아동노동법을 발효하고, 14살 이하 어린이들에 대한 노동을 엄격하게 단속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법률을 통해, 아이들을 일터로 보내야 하는 가난한 부모들을 벌주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꿈꿀 수밖에 없는 아이들
우멧은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아버지는 러시아로 이주한 이후 소식이 끊겼다. 우멧이 탄광에서 버는 돈은 하루에 1,600원 정도이다. 우멧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집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마리도 없던 가축이 생겼고, 어머니도 조금은 안심하는 모습이다. 우멧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자라서 경제 분야 장관이 되고 싶다. 경제도 살리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돈도 지불하고 싶다. 인도 소녀 소냐에게도 작은 희망이 있다. 부당하게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횡포에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은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꿈을 꾼다. 우리가, 세상이, 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근 여러 가지 형태의 윤리적 소비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어린이 노동에 직접 반대하는 운동, 불매 운동, 성금모금 등과는 달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는 기업에 대해 소비를 하는 운동이다. 이와 같은 윤리적 소비 운동은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다. 실제 공정무역 상품을 파는 시장이 최근 4년간 62% 성장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운동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단편적으로나마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 단체들은, 아동노동 착취 문제가 가난과 폭력, 악덕 기업주의 횡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는 한 기업, 혹은 정부의 단편적인 잘못이 아니라, 인권과 윤리, 경제적 양극화 등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뒤섞여 발생한 문제이다. 국제사회의 관심, 정부의 제도적 마련 및 사회적 지원, 그리고 소비자 개인의 양심이 모두 모여야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기업’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의 ‘효율적인’작동 방식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2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