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다]제1화. 이유 없이 달리고픈 101호 남자의 무한궤도
Life 2016.02.18 18:31
'이 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다'는... |
제1화. 이유 없이 달리고픈 101호 남자의 무한궤도
“왜 하필 사서 고생을? 얼어 죽고 싶어? 위험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지인들에게 들어야 했던 질문입니다.
마침 서울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때였죠.
장가 언제 갈 거냔 얘기보다 더 많이 제 귓속을 파고든 걱정 섞인 오지랖.
헌데 그 같은 물음에 단 한 번도 시원스레 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거기에 굳이 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지구 둘레 1/3에 달하는 길이의 철도를 달린다는 열차,
그 안에서 마주할 이들과 그들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지도에서만 봤던 시베리아는 정말 어떤 곳인지.
그저 ‘몸도 마음도 열어놓자’는 마음만 갖기로 하고 떠났습니다.
열어놓은 만큼 무언가를 가득 담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대한 포부와 야심찬 계획, 혹은 태고적 로망 같은 명제들에 대한 반감 속에 어쩌면 애써 막연하고 목적 없는 여행을 꿈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너머엔 뭐가?’ 이번 여행의 화두다.(사진: Asaf Eliason/shutterstock.com)
여행에 앞서…
늦게 예매할수록 값이 오르는데, 임박해서 구입하더라도 10만원을 넘기는 일은 거의 없다.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인 만큼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의 경우 7시간의 시차가 존재하는데, 열차와 관련한 모든 시각은 모스크바 기준시로 표기된다. 이를테면 티켓에 적힌 출발 시각이 09:00라면 블라디보스톡에서 열차가 출발하는 시각은 16:00가 된다. 최대 90일까지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
# 기분 좋은 적막, 여정의 시작
1월의 마지막 날 자정을 정확히 5분 남겨놓은 시각.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 도착했다.
플랫폼 역무원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야무진 검사를 온몸으로 감내한 후, 드디어 열차에 오른다.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모스크바행 101호 열차다.
여정의 시작점. 적막한 긴장감이 감돈다.
열차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탑승객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미리 배워간 대로 익숙하게 침구를 깔고 짐을 정리했다.
가볍게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는, 나를 싣고 시베리아로 달려줄 열차의 내부를 바라보며 침대에 몸을 묻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시야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열차 내 조도는 눈을 살짝 감기게 만들 만큼 포근했다. 감상에 빠질 최적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또 기다렸던 시간들이 천천히 머릿속을 스쳤다.
직장생활 6년,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이 생경한 곳까지 날아와 다시 어딘가로 달리려 하고 있다니. 소리 없이 공허한 쓴웃음이 찾아든다.
어디선가 깊은 무게가 실린 뱃고동 소리가 한 차례 울리고 그 소리가 잦아들 즈음,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분 나쁘지 않은 미세한 덜컹거림이 온 몸으로 전이돼 온다.
심장 박동도 덩달아 요동치기 시작한다.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가슴 뛰어본 적, 대체 언제 였던가…’
# “Are you spy?” 21세기에 접한 냉전과 사회주의 잔재의 내음
두근거림과 씨름하며 지샌 밤을 뒤로하고 창밖으로부터 쏟아지는 햇살에 선잠을 깼다.
시베리아(열차 안)에서의 첫 아침이다.
지도와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5개가 넘는 역을 지나왔다.
새벽이 지나는 동안 정차하는 역마다 승객들이 탑승했는지 텅빈 채 출발했던 열차가 어느새 만석이다.
열차에 오른 지 꽤 된 듯한 옆자리 아가씨는 깊은 잠에 빠져있고,
이제 막 탑승한 듯 보이는 일가족은 짐을 정리하고 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눈을 부비는 손가락 사이로 펼쳐진 풍경은… 역시 생경했다.
한국에서의 루틴에 따라 아주 자연스레 세면도구를 집어 들고 통로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별안간 수십 개가 넘는 눈이 나를 응시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제야 구(舊)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단정하기엔 섣부르지만 과거 긴 냉전 기간을 거친 탓인지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무언의 압박이 엄습해온다. 호기심보다 의심이 어린 눈빛들은 분명한 그 증거다.
그 눈빛들을 마주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넬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는다.
내 눈에 비친 승객들 모습은 마치…(사진:Grisha Bruev/shutterstock.com)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동공에 각인되고 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의 부담스러움이 아니라
마치 움직이는 감옥에 수감된 신참 죄수의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문득, 전날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열차 내 이 곳 저 곳을 촬영하기 위해 DSLR을 꺼내들었으나 역무원이 달려와 살벌한 표정으로 제지한다.
주변의 러시아인 몇몇도 거든다.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니옛(нет=no)’을 반복하는 걸로 봐선 찍지 말라는 얘기 같다.
심지어 열차 탑승 직전 기차역 곳곳을 촬영 중이던 내게 다가온 보안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Are you spy?”
상황이 이렇고 보니 열차의 정차·발차 시간이 거의 초 단위까지 정확한 것도 이데올로기의 산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루 2교대로 일하는 여자 차장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객실 및 화장실 청소를 수행하고
식수를 끓이며, 개별 승객들을 대상으로 하차역도 미리 알려준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통제형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일꾼’이랄까.
냉전이란? |
#말로만 듣던 횡단열차, 이렇게 생겼다
내가 몸담은 3등칸 ‘플라츠카르타’ 1량에는 총 54명이 탑승한다.
통로를 기준으로 왼쪽에 세로로 2층 침대 하나, 오른쪽에 가로로 2층 침대 둘이 배치돼 있는, ‘ㄷ’자 구조다.
개념상 ‘6인 1실’이지만 여닫을 문이 없는 관계로 사실상 ‘6인 1조’라 보면 무방하다.
2층 침대 이용자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아래로 내려와 1층 침대를 당당하게 이용한다.
1층 침대 사용자가 있든 없든 누워있든 말든 침대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거나 수다를 떤다.
1층 침대에 대한 일종의 지분(?)이 있다.
필자도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아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화장실은 단 2개다.
열차 내에서 최소 며칠을 머무르는 승객들은 2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용변과 세면을 해결한다.
내부 청결 상태는 3등칸 치고는 나쁘지 않으나 물이 귀해서인지 기술적 문제인지 세면대와 변기 모두 급수력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횡단열차 내부, 3등칸 ‘플라츠카르타’ 모습
열차는 평균적으로 1~2시간마다 한 번씩 정차한다.
10번 중 십중팔구는 2분 정차, 나머지 1~2번은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도 역에 머무른다.
정차하는 동안 사람들은 대부분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제각기 밀린 담배를 태우거나 몸을 풀고, ‘키오스크’라는 매점이나 어디선가 등장한 보따리 상인들로부터 먹을거리를 구입하기도 한다. 길게 정차할 경우에는 아예 역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거나 장을 보는 이들도 있다.
열차 실내 온도는 섭씨 23도 내외로 꾸준히 유지된다.
어쩐지 다른 승객들은 하나 같이 민소매 차림이다.
시베리아라는 단어에 대한 자연반사적 두려움으로 인해 완전무장에 가까운 옷차림을 했던 나만 삐질삐질 땀을 흘려댔다.
하지만 정차 시간에 플랫폼에 나가 공기를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현재 나의 위치가 온몸에 각인된다.
그 밖의 정보 |
#러시아인들은 이방인의 월수입이 궁금하다
새로운 풍경들에 집중하는 사이 그간 다소 갑갑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어졌다.
덩달아 용기도 생겼다. 결국, (좀 무섭지만)먼저 부딪쳐보기로 했다.
의심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의 아이들에게는 한국에서 준비해간 과자를, 성인들에게는 커피믹스를 건네 본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다. 잠깐의 머뭇거림은 있었지만 그들은 내 인사 방식에 의심의 눈빛을 거둬들였다.
딱히 특별한 물건이 아님에도 한참을 겉봉지만 뚫어져라 훑어보는 그들에겐 피식 웃음도 났다.
경계심이 어느 정도 허물어지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본격적인 대면이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가 나를 향해 쏟아졌고,
내가 러시아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그들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집요하게 자신들의 언어로 질문을 이해시키려 든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정말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다.
결국 짧디 짧은 영어 단어 몇 개와 함께 ‘손짓 발짓’이 동원된다.
답답한 마음에 구글번역기를 켜고 말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열차에서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내 신상과 목적지, 심지어 월수입까지도 기어이 캐내고야 만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종이에 펜으로 대충 아빠와 엄마로 연상 가능한 그림을 간단하게 그린 뒤 가족 관계도를 나타내준다.
기자라는 내 직업을 설명할 땐 그들이 보는 신문을 펴고 기자 이름이 적힌 곳을 가리키며 기사를 쓰는 시늉을 한다.(그런 식으로 나 역시 그들의 직업이 트럭 운전사, 간호사, 농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수입에는 달력과 함께 지폐가 동원됐다.(알아낸 사실을 어디 상급 정보기관에 보고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긴 했다.)
효율이 제로에 가까운 의사소통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어디선가 읽은 누군가의 인도 여행기와 흡사하다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난 이방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도 호응하고 노력했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러는 동안 난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열차에서의 첫날 하루는 그렇게 종일 ‘취조’를 받는 데 소진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깔리고 열차 내 소등이 이뤄지고 나서야 나는 자유의 몸이 됐다.
하루는 정말 총알 같이 지나갔다. 몰래 들이킨 맥주가 몸을 노곤하게 만들면서 내일 펼쳐질 또 다른 하루에 대한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열차는 내일을 향해 달리고 있다.(사진:ALEKSANDR RIUTIN/shutterstock.com)
열차 내 음주와 흡연 |
다음 이야기 | 이방인이 친구 되는 법? 그들이 하는 걸 하면 된다. ‘탈법’도 그중 하나. 하루 종일 펼쳐진 보드카와 소주의 한판승부, 승자는 누구? |
제2화. 소주 vs. 보드카, 한·러 양국의 한판승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습니다. ‘타국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하고 싶거든, 그 나라 사람과 그 나라에서 나는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어봐야 한다’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걸진 모르겠지만, 무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에 나선 지 불과 이틀째 아침부터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타국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말이죠. 그리고 그 결과로 잠시나마 생사를 넘나드는 악몽 같은 경험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 보드카를 잠재운 소주의 ‘카운터펀치’
열차에서의 첫날은 고단했다.
슬라브인들의 엄청난 ‘취조’ 열기와 이에 화답하는 ‘일일 용의자’ 놀이. 모든 걸 불태운 터라,
누군가 남반구까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아침 햇살을 애써 외면해가면서 꾸역꾸역 잤는가 보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몸을 일으켰다. 헌데 누군가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눈을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시선. ‘훗, 난 이미 패를 다 깠어.
두려울 게 없다고.’ 가뿐한 마음으로 쿨내 진동하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즈드라스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
다소 당황하면서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는 이들은 밤사이 내 윗 층과 옆자리를 차지한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바실리’라는 이름의 아저씨는 미국 전직대통령 조지W.부시를 닮았고, ‘칸타실라’ 아저씨는 모르긴 몰라도 오고타이 칸(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의 먼 후손쯤 돼 보이는 얼굴이다.(양손 놓고도 말을 잘 타게 생기셨다.)
간단히 씻고 돌아오니 테이블에 아침상이 차려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이건 밥상이 아니라 술상? 삶은 닭과 달걀, 통조림 연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호밀빵… 모양새도 익숙지 않은데다 냄새까지 고약하다. 더구나 빈속인 아침이다.
나 역시 나대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 가방 속에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다양한 종류의 전투식량과 사발면, 즉석국, 분말스프 등이 야무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아침이니 만큼 빵과 스프로 적당히 해결하기로 한다.
열차 안에선 뭘 먹나요?
※ 취사가 금지된 열차 내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즉석식품이다. 언제든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탱크가 마련돼 있어 제한적이나마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다만 끓일 물을 보충한 직후 타이밍에 잘못 받으면 미지근한 물이 나올 수 있어 사전 확인이 필수적).
※이 때문에 기차역 주변 마트에서는 즉석식품이, 특히 한국 브랜드의 그것이 단연 강세다. 이제는 러시아의 국민라면이 된 팔도 ‘도X락’을 비롯해 농심 ‘X라면’과 ‘튀김X동’, 오뚜기 ‘진X면’ 등이 한가득 진열돼 있다.(맛은 한국에서의 그것에 비해 다소 싱거운 느낌).
※ 며칠 동안 이런 음식들만 먹다 보면 물리기 마련.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역시나 과일이다. 쉽게 구하기 어렵지만 열차 내에서 수시로 이뤄지는 물물교환을 잘 활용하면 의외의 득템이 가능하다.(필자는 캬라멜 ‘마X쮸’에 영혼을 판 러시아 꼬마로부터 그 귀한 망고를 받아냈다). |
적당히 때우려던 날 그들의 밥상(혹은 ‘술상’) 앞으로 끌어당긴 건 바실리 아저씨의 가방에서 나는 ‘짤랑짤랑’ 소리였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내게 아저씨는 슬며시 웃으며 가방 안을 보여준다. 세상에. 종류별로 보드카만 다섯 병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스프에 적신 빵 한 조각을 입에 넣기가 무섭게 아저씨들이 술잔을 들이민다.
이건 뭐 낮술도 아니고 대체 이 시간에 술을 마셔본 적이 있나 싶다.(MT 다음 날 라면에 마신 해장술 제외.)
열차 연결 칸에서 미리 차갑게 숙성된, 목넘김에 최적화된 무색무취의 걸쭉하고 투명한 액체가 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든다. 부검을 하지 않아도 내 식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몸으로 알 수 있었던 엄청난 경험.
“으...아...으어”
양쪽 눈썹이 닿을 듯 미간을 구기며 탄식을 토하는 나를 바라본 아저씨들은 낄낄대기 시작한다.
바실리 아저씨는 잽싸게 내 잔을 다시 채우며 소감을 묻는다.(참고로, 이 아저씨, 굴삭기 운전사로 중국 하얼빈에서 5년간 생활했던 관계로 중국어 구사가 가능. 필자는 중어중문학 전공에 중국 유학경험자.)
속내를 마냥 드러낼 수 없어 일단 ‘크라시바(красиво·훌륭하다)!’를 연발해본다.
하지만 속은 복잡하다. ‘이걸 계속 마셔야 하나’ 라는 고민이 잦아든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도는 동안 (살아보겠다고) 테이블 위의 안주들을 미친 듯이 입으로 밀어 넣었다.
닭고기고 연어고 도통 무슨 맛인지 모를 지경. 그저 입 속의 쓴 맛만 없애기 바빴다. “한국에서는 주스를 섞거나 얼음을 넣어 보드카를 마신다”고 하자 아저씨들은 기가 막히단 표정들이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뭔가를 섞는 순간 그건 ‘보드카가 아닌’ 거란다. 그러면서 톨 사이즈 텀블러 잔에 절반을 채워 그대로 꿀꺽 삼킨다.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술 소비량을 기록하는 나라의 국민들답게 전투적인 음주 문화다.
술판이 벌어지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역시나 화제의 중심은 이방인인 나다.
문제는, 질의응답이 한 차례 이뤄지면 여지없이 술도 한 잔 들이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질문⇒답변⇒“오, 그래 마셔 마셔!” 이런 분위기다.
나에 대해 정말 궁금한 건지 술을 마시기 위한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 일부러 답변을 장황하게 해 보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내용을 애써 나불대기도 해 봤으나, 도수 40도가 넘는 술에 그 같은 얄팍한 시간끌기 수작 따위는 소용이 없다. 사람이 많아지니 술자리 분위기는 살아나지만 내 몸에는 알콜이 계속 쌓여만 간다. 숙취해소음료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질 수 없다. 뭔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다.
대한의 건아로서 그냥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는 생각에 평소엔 있지도 않던 애국심이 어디선가 솟아오른다.
결국, 사라지려 하는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한국에서 챙겨온 비장의 무기 ‘참X슬 fresh’ 한 병을 꺼내 그들 앞에 내려놓는다.
마침 4병째 보드카를 막 해치운 시점에 풀려가던 그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다시금 커진다.
술병을 이리 저리 뜯어보고 결국엔 인증샷까지 찍고 신이 났다.
아저씨들은 잔에 술을 채우고 킁킁대는가 싶더니 단숨에 들이켠다.
“으음?”
바실리 아저씨는 자신이 방금 마신 것이 물 아니냐는 질문으로 내게 굴욕을 선사했다.
한국에서 고달픈 서민들이 즐겨 마신다는 설명에 그는 ‘이 정도 술로 힘든 삶이 위로가 되겠는가’라며 동정어린 눈빛을 보냈다.
물론 애초부터 17.8도와 40도의 싸움은 한국과 러시아의 땅덩이 크기만큼이나 무모한 대결이었음은 인정한다.
(사실 보드카에 유린당한 내 입에도 소주는 밍밍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45도 짜리 안동 소주를 공수해 왔어야 하는 것을.
하지만 대한민국 술의 대표주자 소주의 위력은 머지않아 드러났다.
소주를 모두 먹어치우고 다시 보드카를 마시겠다며 참X슬 2병을 호기롭게 비운 아저씨들은 이내 곧 배를 쓸어 만지며 불편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화장실로 달려갔다. 돌
아온 그들은 소주 특유의 향이 속에서 올라온다며 숨을 몰아쉬고는 각자의 침대로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역시 소주는 저력 있는 술이었다.
독한 보드카를 마셔가며 버틴 나 역시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 혹은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마냥 양 팔을 높이 치켜들고 승리의 세레머니를 잠시 만끽했다.
지극히 유치하지만 동시에 유쾌한 마무리를 끝으로 나도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러시아의 건배사
※ 술 많이 마시는 나라인 만큼 건배사도 다양하다. 횡단열차를 비롯 러시아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접했던 건배사는 ‘자즈브라드니(заздра́вный)’, ‘즈다로비예(здоровье)’, ‘이바늄(Ебанём)’ 등이다.
※ 건강을 기원한다는 뜻인 ‘자즈브라드니’는 박근혜 대통령이 3년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구사해 유명세를 탔다.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널리 쓰이는 ‘이바늄’의 경우 ‘Let's fuck it’이라는 속어의 뜻을 갖고 있어 때와 장소에 따른 신중한 구사가 요구된다. |
#개고기로 시작해 박지성으로 끝난 그 녀석들과의 대화
잠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음주 후 언제나 그렇듯 찾아오는 요의(尿意)에 잠시 몸을 일으킨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한 무리의 청년들에게 붙들렸다. 맥주를 같이 마시자는 제안이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쉽게 놓아줄 분위기가 아니다. 이미 보드카를 대차게 마시고 있던 나를 지켜본 그들이다.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됐다.
역시 젊은이들이라 활기가 넘친다. 내 국적을 확인한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부터 틀어댄다. 유튜브 조회 25억건을 넘어선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다. 사실 평소에 그리 좋아하던 노래는 아니었음에도 매우 흥이 난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들과 한바탕 어울려 춤사위를 펼친다.(역시 노홍철 ‘저질 댄스’ 대목에서 가장 압도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시원한 맥주로 열기를 가라앉히고 나자 녀석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한국인은 왜 개를 먹는가’, ‘한국인은 정말 성격이 급한가’, ‘태권도가 정말 재미있는 무술인가’ 따위가 그것이었다. 제한된 의사소통이었지만 그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최대한 논리적으로 답변하려 노력했다. 한국 여성에 대한, 상당히 불쾌한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크게 화를 냈다. 결국 사과를 받긴 했지만 동시에 그런 질문이 그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따라왔다.
참 많은 것들을 바로잡아야 했다. 러시아에서 LCD/LED TV로 성공한 LG의 경우는 다행이었지만, 녀석들 대부분은 현대와 삼성을 일본이나 중국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인 앞에서 러시아 대학생들이 서로 일본과 중국으로 나뉘어 기업의 국적을 놓고 우기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도저히 가만두고 보기가 어려워 이건희 회장 사진까지 동원해가며 진실을 설파했다. 정말이지 냉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다행히 술자리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축구선수 박지성 덕분이다. 어느 나라를 가나 20대 남자 녀석들은 축구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법. 더구나 여긴 유럽이다. 한 녀석은 박지성이 러시아 리그에 왔으면 MVP를 받았을 것이란 아부(?)로 나를 흐뭇하게 했다. 전 세계 축구선수 ‘베스트 11’을 꼽는 과정에서도 녀석들은 왼쪽 날개 자리에 박지성의 이름을 거론해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나름의 배려를 했다.
# ‘시베리아 표류 위기’ 문턱에서의 극적 생환
녀석들과 마셔댄 맥주도 동이 나면서 난 그야말로 시체가 돼 침대에 쓰러졌다. 오후 3시쯤 잠이 들었다가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눈을 떴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열차가 멈춰 섰다. 몇 시간 전 부어댄 맥주로 인해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정차 중에는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좌절했다.(출발 전후 30분 화장실 통제. 1화 참조.)
결국 기차역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현재 시각과 역명을 확인했다. 37분이나 정차하는 벨로고르스크(Белогорск)역이다. 여유 있게 밖으로 나갔는데, 어째 길게 서는 역이라고 보기엔 역사가 좀 작아 보인다. 아무튼 일단 급한 볼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일을 마치고 아직 덜 깬 잠과 숙취가 가시지 않은 채 역사 내부를 잠시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많이 들어본 소리 같다.
그렇다, 열차의 출발 신호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역사 밖으로 뛰쳐나가 열차를 향해 냅다 달렸다. 심지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100m나 될까 말까 한 길지 않은 거리가 1km는 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를 괴성을 지르며 열차의 이동 방향을 따라 얼마나 뛰었을까. 기적적으로 열차가 스르륵 멈췄고, 나도 숨을 몰아쉬며 열차 출입문 앞에 섰다. 이윽고 차장이 문을 열고 어서 타라는 손짓과 함께 소리를 지른다.
엄청나게 흥분된 상태로 열차에 오르자 그간 고모님처럼 살가웠던 차장이 저승사자로 돌변해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무슨 얘기인지는 뻔했다. 집을 송두리째 태워먹은 개구쟁이를 혼내는 듯한 차장의 훈계였지만 낙오로 인한 아찔함과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이번 여행에 대해 우려를 보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동안 시차가 바뀐 줄 모르고 시간을 잘못 체크한 내 실수였다. 그곳은 벨로고르스크가 아니라 정차 시간이 5분에 불과한 스보보드니(Свобо́дный)라는 작은 역이었다. 잠이고 숙취고 뭐고 다 달아났다. 객실에 돌아와서도 모두가 잠든 중에 나 혼자만 맥이 풀려 한동안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영하 20도가 넘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가건물 같은 기차역 안에는 (영어를 할 줄 모를 것이 분명한) 역무원 1명이 있고, 내가 덜렁 남겨졌다면. 난 여권도 갖고 있지 않았고 심지어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열차에 다시 오르지 못했더라면 이 여행기는 더 재밌어졌을 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의 운은 이날 다 써버렸다. 종교가 없었지만 내가 아는 모든 신께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하루를 마감했다.
제3화.가보지 않으면, 그곳에 있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살면서 그럴 때가 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히 떠오르는 이유는 없는데(어쩌면 그 이유를 넘겨짚어 볼 겨를이 없던가) 갑자기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때 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반추해보면 그 이유란 게 분명 존재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눈앞에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사진: Katvic/shutterstock)
#처음으로 맞은 이별, 새로운 도시, 그리고 따뜻함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지 2박3일, 정확히는 75시간을 달리고 달린 끝에 러시아 중부도시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쉼표인 동시에 육지에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나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당초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150시간을 쉼 없이 달려볼까 했으나, 6박7일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보내기엔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쉬어야 전체적인 여행에 무리가 없겠다는 계산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역사, 나에겐 오아시스의 입구
모두가 잠든 새벽 1시10분, 열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웅장한 이르쿠츠크 역으로 들어선다. 플랫폼에 다가설수록 열차의 떨림은 줄어들고, 내 심장 요동은 거세진다. 그동안 수십 개의 역을 정차할 때완 당연히도 다른 느낌이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접하는 도시에 대한 나도 모를 흥분과 기대감이랄까.
고모님처럼 지냈던 차장 아주머니를 비롯해, 그간 정들었던 주위 사람들이 새벽 시간임에도 플랫폼까지 내려와 배웅을 해준다. 십 분이 넘도록 덕담을 나누고 한 명 한 명 기념촬영까지 마친 후에야 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할 수 있었다. 러시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어찌 보면 서로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느라 바빴던 그 시각 플랫폼의 공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이르쿠츠크는 어떤 도시? ※시베리아 초원로를 따라 그 주변에 세워진 도시들 가운데 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도시. 인구 58만 5000명, 한겨울 평균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나든다. 동(東)시베리아의 교통 요지로 기계·화학·셀룰로오스·제지 공업, 식육 콤비나트가 발달했다, 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르쿠츠크는 19세기 들어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청년 혁명가들이 이주한 유배지인 탓에 근대 문명이 꽃을 피웠고, 그 결과로 도시 분위기가 러시아 다른 도시의 그것과 달리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이 강하다.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양식과 유럽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그런 반(半) 서구적 분위기.
※뜨거운 학구열로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문화와 예술이 발달돼 있어 일명 ‘러시아의 파리’라는 별칭도 붙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차로 15분 거리일 만큼 도시 자체가 넓지 않은 대신 오밀조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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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도착 시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기차역 앞에는 새벽임에도 택시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역시나 예상대로 끈질긴 호객행위에 시달리고 난 뒤 가장 변두리에 차를 대고 있던, 조금은 순수해 보이는 기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나서 300루블(약 4500원)에 쉽게 낙찰.(이 가격은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제시 받은 금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택시에 오른 지 3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체감상이 아니라 실제로 3분 소요) 기사에게 건네는 300루블의 손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황당했다. 룸미러로 다시 얼굴을 보니 순수는커녕 악마의 얼굴로 보인다. 사실 그보단,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내 자신이 살짝 우습다. 여행지인 점을 감안하면 그리 손해도 아니건만.
롤러코스터 같던 3분의 심경 변화를 뒤로 하고 어쨌든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 하룻밤 내 한 몸 뉘일 곳의 이름은 ‘바이칼러 호스텔(Baikaler Hostel)’. ‘부O닷컴’ 평점 9.0을 자랑하는 여행자들의 쉼터다.(광고 혹은 협찬 아님). 명성에 걸맞게 500루블의 착한 가격과 깔끔한 시설. 무엇보다도 그곳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러시아를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함께 투숙한 타국 여행자들도 하나 같이 밝고 따뜻하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예감이 나쁘지 않다. 그들과 간단한 신상명세를 교환하고 다음 날 여행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덜컹거리지 않는 침대라니! 그대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혼자 사용한 호스텔 6인실. 저 낭만적인 와이파이 패스워드가 보이는가.
역시 육지에서의 편안한 숙면은 피로를 가시게 했다. 불과 5시간이지만 양껏 꿀잠을 자고 일어난 뒤 가벼운 몸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드디어 바이칼 호수를 직접 보러 가는 거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로 한 시간 가량 달리면 바이칼을 끼고 있는 도시 리스트비안카(Листвянка)에 닿을 수 있고, 난 오늘 그곳으로 향할 요량이다.
호스텔 매니저가 일러준 대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열! 표지는커녕 노선도조차 없는 난잡한 삼거리 교차로. 목적지는 고사하고 동서남북도 모르겠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스무 대 남짓한 버스가 전분데, 모두 ‘지옥행’이라고 해도 모를 만큼, 식별 불가능이다. 다급히 눈앞에 정차해 있는 버스 기사 몇몇에 물어보니, 알아들을 수 없는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올 뿐 도무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저건가? 잠깐, 저건 버스가 아니잖아!
‘오늘 저녁에 다시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야 하는데…’ 당일치기로 바이칼을 보고 돌아와야 하는 만큼 한시가 급했다. 호스텔에서 챙겨온 지도를 펼쳐들고 방향을 가늠하기 시작한 그때.
“May I help you?”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게 묻는다. 뜻밖에 너무도 고맙고 반가워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니 웃으며 나를 리스트비안카행 버스로 인도해 준다. ‘다이미르’라는 이름의 그는 이르쿠츠크 주립대 영문학 전공자로, 잉글랜드 축구선수 웨인 루니를 굉장히 닮았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다).
루니를 닮은 다이미르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버스가 도통 움직일 줄을 모른다. 버스 기사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문 앞에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있다.
시외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고 탔건만, 뭔가 이상하다. 좌석이 모두 채워져야 출발을 하는 사설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불행히도 내가 몸담은 버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한 시간 가까이 승객이 올라타길 기다린 끝에야 버스는 출발했다.
고마워! 루니, 아니 다이미르!
#드디어 바이칼, 느낌표로 바뀐 쉼표
눈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버스에서 한 시간을 보낸 끝에 리스트비안카에 도착했다. 다행히 한겨울임에도 바람은 강하지 않고 볕은 따스하다. 잔뜩 집어먹은 겁이 무색할 지경이다.
꽁꽁 얼어붙은,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원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바라보는 바이칼의 풍경은 눈 덮인 히말라야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 호수
겨우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는 이 호수는 표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다. 전 세계 담수량의 오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넓고 깊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과 철갑상어를 비롯한 3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호수 표면이 얼어붙은 틈을 타 발을 내딛어 본다. 눈이 채 쌓이지 않았거나 벗겨진 곳은 결빙 당시 수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색깔도 무섭도록 시퍼렇다. 더럭 겁이 났지만 이내 적응을 마치고 발길이 닿는 곳까지 걸어 나갔다. 바다에서 썰물 때 갯벌을 걷는 듯한 그런 느낌.
호수라면 고작해야 충주호나 경포호 정도가 전부였던 내게 바이칼은 상상 그 이상의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수평선까지의 거리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이 호수는 동해에서 바라본 바다보다도 광활했다.
시퍼렇다 못해, 시커먼 호수 위에서 이런 객기도 부려본다.
바이칼에 얽힌 설화 ※바이칼 호수로 주변 336개의 하천이 흘러들지만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지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앙가라 강이다. 바이칼을 벗어난 앙가라 강은 이르쿠츠크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흘러 결국 예니세이 강과 만나 북극해로 흘러든다. 바이칼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앙가라 강은 유유히 흐른다. |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져온 DSLR 카메라가 빛을 발해야 하는 순간이건만, 이내 무용지물이란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한정된 프레임 속에 가둬지는 사진의 풍경은 동공이라는 렌즈를 통해 두뇌 속 메모리로 저장되는 입체적인 풍경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이렇듯 때로는 기억이 기록을 지배하는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바이칼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시간 동안, 그저 숨이 막힐 듯한 아득함 속에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생각뿐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도, 내가 숨 쉬는 그 순간도 모두. 미칠 듯이 형용하고 싶지만 애초에 글로, 혹은 사진으로 100%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렇게 빙판 위에서 바이칼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거대한 풍경 앞에서 흔히 그러하듯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보기도 한다. 물질적인 부분과 관계없이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늘 갈구하기만 했던 유년기. 감수성이 흘러넘쳐 별 것 아닌 일에도 마치 햄릿이라도 된 듯 고민의 밤을 지새우던 10대. 사랑의 열병이라는 미명 하에, 때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대에게 연정을 품고는 응답 받지 못할 사랑에게서 오는 고통의 달달함을 남몰래 느끼던 20대 초반. 가만히 두고 보기엔 너무도 분통이 터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국가적 행태에 하루하루를 분노하며 살고 있는 지금에까지.
여기 앉아 (바이칼을 보면서)상념에 잠긴다. 이름하야 ‘상념의 벤치’다.
그렇게 스스로의 방식으로 바이칼을 느끼고 겪은 하루는 정말 풍성했다.
조바심을 느낄 정도로 늦어지던 버스의 출발. 꽁꽁 얼어붙어 안전할 줄로만 믿었던 바이칼 호수가 바로 등 뒤에서 부지직 갈라지던 소리. 부드러웠던 훈제 ‘오물’과 따뜻한 스프 ‘보르쉬’. 꼼짝 없이 발이 묶이려는 찰나에 기적적으로 나타나준 이르쿠츠크행 버스. 그렇게 서로를 가장한 우연과 필연이 씨줄과 날줄로 아름답게 엮인 시간들.
사실 전부터 바이칼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초 이번 여행에서 바이칼의 역할을 ‘하루 쉬어가는 곳’ 쯤으로 섣불리 규정했던 것 같다. 이곳에 불과 18시간가량을 체류하는 일정의 특성 때문이다. 때문에 이르쿠츠크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헤맬 때, 그리고 어렵사리 찾아낸 버스가 좀처럼 출발을 하지 않고 시간만 잡아먹고 있을 때 나는 ‘어차피 시간도 없는데 그냥 이르쿠츠크나 돌아보고 편히 쉬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아마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가볍게 찍을 쉼표, 아니 어쩌면 아주 짧은 시간의 숨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바이칼은 어느새 굵고 진한 폰트의 느낌표로 변해 있었다.
제4화. 그들은 어쩌다 개그지망생이 됐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누구나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일반론이 어떤 분야나 환경에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 느끼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는 것, 공정한 경쟁 속에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의 산물을 기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 이유와 책임이 결코 개인에게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뜀박질처럼 단순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진:sculpies/shutterstock.com)
# 내 마음의 220V
땅거미가 짙게 내린 오후 7시,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에서의 숨 가쁜 하루를 뒤로 하고 모스크바행 열차에 올랐다. 이른바 시베리아 횡단 ‘후반전’의 시작이다. ‘전반전’에 비해 10시간 가량 더 열차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새로이 맞이할 인연과 경험들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모스크바 도착까지 3박4일을 머무르게 될 내 자리는 객실의 맨 마지막 구석 침대다. 그런데 위치가 조금 얄궂다. 통로 문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어 문이 여닫힐 때마다 객실로 비집고 들어오는 야릇한(?) 향기와 소음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선사한다. 오가는 사람들과 수시로 눈을 맞출 수밖에 없는 민망함은 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자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전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3등칸 한 객실에는 무려 54명의 승객이 있음에도 전기콘센트는 차장실 앞쪽에 하나, 통로 밖 화장실 앞에 하나, 이렇게 두 개 뿐이다. 어떤 여행객의 후기를 보니, ‘열차에 오르고 보니 너무도 운이 좋게 자신의 머리맡에 콘센트가 있었다’며 인증샷까지 올렸지만, 그 확률은 가히 로또 당첨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면 또 모를까.
내내 이런 화면만 보고 싶지 않다면…(사진:Bloomua/shutterstock.com)
콘센트 선점에 대한 경쟁이 극심하다보니, 용케 스마트폰 충전을 시작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리를 꼭 지키고 있어야만 한다. 일단 스마트폰의 도난 우려가 있고 (물론 열차에서 며칠 생활하다 보면 생각보다 도난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콘센트에 스마트폰이나 예비 배터리를 꽂아놓고 다시 가보면 여지없이 내 것은 구석에 치워져 있고 다른 이의 그것들이 꽂혀있기 일쑤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키고 서 있을 때는 한숨을 쉬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주인이 보고 있지 않으면 본능에 충실한 거다.
누군간 이렇게 생각하겠지. ‘쯧쯧쯧, 멀티탭 하나면 될 것을…’ 물론 챙겨갔다. 난 4구짜리 멀티탭 하나면 열차의 영웅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자랑스레 탭을 연결하고 이들의 충전기까지 꽂아주는 아량을 베푼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같은 환상은 깨졌다. 순찰을 돌던 차장(이번에도 약간 고모님st.)이 가차 없이 탭을 빼 버리곤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의를 준다. 당연히 난 무슨 말인지 모른다. 주변에 물어봐도 그냥 안 된다는 얘기뿐이다.
이 얼마나 대승적인 자태인가!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이에 굴하지 않기로 하고 차장이 사라졌을 때 다시금 탭을 꽂아본다. 조금 뒤 다시 돌아온 차장은 내게 날카로운 눈빛을 한 차례 쏘더니 그냥 돌아간다. 뭔가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돌 지난 내 사과폰은 숨만 쉬어도 배터리를 폭풍흡입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포기하고 돌아간 줄로만 알았던 차장이 숫제 전원을 내려버린 게 아닌가. 달려가서 따졌더니 또 알 수 없는 말로 훈계만 늘어놓는다. 이대로 몇날 며칠을 가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하염없이 빌었더니 그제야 전원을 올려준다. 일종의 갑을관계가 성립됐다. 그 뒤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기는 온전히 차장 마음대로 들어오고 끊기기를 반복했고, 난 복불복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전기를 쥐락펴락, 그래서 승객도 쥐락펴락하는 고모, 아니 차장님. (사진:April Cat/shutterstock.com)
※살로(са́ло) 훈제 혹은 반건조된 돼지비계. 소금·후추로만 양념이 돼 있으며 호밀빵 위에 얹어 먹는다. 날것에 가까운 비계를 씹는 맛이 익숙지는 않았으나 씹을수록 특유의 꼬신 향이 올라오는,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도 높았던 음식. 본디 우크라이나 지역의 전통 음식으로, 장기 보존이 용이하고 필수영양소(지방)도 풍부해 오래 전부터 애용돼 왔다고 한다. ※보르쉬(борщ) 붉은 뿌리채소인 비트(beet)를 넣고 끓인 묽은 수프. 따뜻하고 향긋해서 먹고 나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음식. 실제로는 다양한 방식의 조리법이 존재한다고 하며, 역시 중세 우크라이나가 기원이다. ※오물(Омуль) 이름에 속지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직 바이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선요리다. 바이칼에만 서식하는 연어과의 민물고기로,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직화구이로 먹는 경우도 많다.(내가 바로 그랬다). 외관의 느낌이 꽁치와 유사하지만 맛은 훨씬 부드럽다. 비리지는 않으나 특유의 냄새가 있어 약간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맥주와는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샤슬릭(шашлык) 러시아를 대표하는 꼬치구이. 유명한 만큼 종류도 맛도 다양하다. 꼬챙이에 소·돼지·양·닭 등 다양한 동물들의 순살을 끼워 화로에서 굽는다.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숯불 소금구이 맛. 체첸 지방에서 양고기 꼬치를 먹는 문화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로슈키(piroschkis) |
#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부장님 개그’를 접하다
‘후반전’의 시작을 나와 함께한 이들은 아직 풋풋함이 채 가시지 않은 대학생 두 녀석이다. 이르쿠츠크 주립대학 졸업반으로 나보다 열 살 가량 어린 ‘길리우’와 ‘콜리아’. 각각 지리학과 통계학을 전공한 나름 재원들이다. 마침 이르쿠츠크에서 길을 알려줬던 ‘다이미르’(3화 참조)와 같은 학교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반갑기도 하고 그 에피소드로 대화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둘은 지금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 중서부에 위치한 옴스크(омск)까지 가는 길이다. 700만 루블(약 1억1700만원)의 막대한 상금이 걸려있는 ‘개그 콘테스트’에 도전하러 간단다. 둘이 한 침대에 걸터앉아 개그를 짠다며 나름의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잠을 줄여가며 한 달 가까이 준비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궁금한 마음에 한 토막 보여 달라 하니 공짜로는 어렵다는 대답이다. 황당한 마음에 정말이냐 물었더니 씩 웃으면서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얘길 꺼낸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론 귀엽기도 한 마음이 들어 다음 정차역에서 맥주를 왕창 구입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니 녀석들이 흥을 내기 시작한다. 뭔가 뚝딱거리며 상황극을 시전하는데, 웃음 포인트는커녕, 도대체 얘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그다. 중간 중간 영어로 짧은 설명을 곁들여주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난해함만 더해 간다.
적당히 호응을 해준 뒤 나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다른 것도 보여 달라’ 했더니, 또 비슷한 걸 한다. 먼저 것과 대체 뭐가 다른 지 도통 알 수가 없다.(아마도 배경이나 인물이나 내용은 다를 테지만) 아…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상상도 못했던 걸 보여 달라’고 정확히 말할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행동을 봐도 어느 부분이 웃긴 건지 궁금증만 커진다.(혹시 언어유희로 웃기는 애들인가…) 웃긴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망설임 없이 대폭소를 터뜨릴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음에도 그들은 날 전혀 웃게 하지 못했다.
콜리아(왼쪽)와 길리우. 얘들아. 너희를 보면 머금던 미소도 사라지더라.
슬프게도 녀석들은 개그맨이 되기 위해선 꼭 버려야 할 습성을 갖고 있었다. 자고로 웃기려는 사람이 먼저 웃어버리는 것만큼 김새는 일도 없건만, 이 둘은 개그를 하는 와중에 자기들이 먼저 배꼽이 빠지게 웃어버린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니 “한국인은 원래 그렇게 웃음에 인색하냐”며 핀잔을 준다.
한국에서는 주로 몸보다 말과 상황으로 웃기는 것이 대세라고 하자 갑자기 길리우가 ‘원하는 게 그거였냐’는 표정으로 윈스턴(담배의 일종)을 한 갑 꺼내든다.
길: “이 담배, 혹시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나?”
나: “모르겠는데?”
길: “윈스턴 처칠! 우하하하하”(웃다가 침대에서 떨어짐)
아무래도… 얘네 망한 것 같다.
# “It is not your responsibility”
예상치도 못하게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후유증이 큰 개그를 맛보고 나니 속이 다 허전했다. 라면을 하나씩 먹으면서 대화를 이어가본다.
이르쿠츠크에서 나고 자란 두 녀석은 20대 중반이 되도록 자국 수도인 모스크바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단다. 지금 콘테스트를 보러 가는 50시간 거리의 옴스크도 크게 마음먹고 아주 멀리 나가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여행은 돈이 넉넉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이 돌아온다. 실제로 러시아의 최저임금은 한 달에 6000루블(약 10만원) 가량이며, 제조업 공장에서 쉬지 않고 한 달을 꼬박 일해도 1만 루블을 넘게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녀석들도 학업과 노동을 병행해오고 있지만 갈수록 힘이 든다는 하소연이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한·러시아 양국의 경제 상황으로 옮아간다. 한국도 그렇지만 러시아도 현재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러시아 대졸자들의 취업률은 40%를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양질의 일자리는 모스크바에 편중돼 있다. 이들이 곧 졸업할 예정인 이르쿠츠크 주립대의 경우 러시아 내 15위의 수준급 학교임에도 졸업생들이 일할 곳이 없어 상당수가 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어 공무원의 수가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많긴 하지만 대부분 처우가 열악한 수준이다. 결국 좋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그것도 소수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대학졸업생 5명 중 3명은 일할 곳이 없는 게 현재 러시아의 현실이다. (사진:xtock/shutterstock.com)
녀석들의 표정이 어둡다. 한국의 상황도 심각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에-좋은 얘긴 결코 되지 못하지만-한국에서도 취업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생활고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고 알려줬다. 조금은 놀랄 줄 알았던 내 예상이 순진했던 것인지, 그들은 “러시아에서 그 같은 일은 신문에도 나지 않는다”고 태연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녀석들은 이번 콘테스트가 결코 장난스런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흥미가 있는 것에 도전하는 것은 맞지만, 졸업시험까지 연기해가면서까지 참여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차등 상금이라도 꼭 타서 컴퓨터도 바꾸고 가까운 해외여행도 하고 싶다는, 내가 듣기엔 너무도 소박한 꿈 때문이라는 거다.
먹먹하고 답답했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하루하루를 세상이라는, 사회라는 벅찬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쌓여간 감정에, 오래도록 마신 맥주의 취기로 내 영어는 이미 거칠어진 상황이었지만, 그들에게 뭐라도 필요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단순히 힘을 내라고 강요하거나 곧 나아질 것이란 근거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 시절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들이었으니까. 그저, 지금 닥친 현실이 본인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로 어설픈 위로를 대신했다. 뭐든 더 열심히 하되 자책감만 갖지 말기를 당부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들의 개그가, 농담이 그렇게까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그때 나눈 대화, 그리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표정 때문일 터다.
…
여행이 모두 끝나고 모스크바를 떠나기 직전 길리우와 통화를 했습니다. 결과는 아쉽게도 예선 탈락. 하지만 친구와 좋은 추억을 만든 것에 만족한다는 말에 마음 한 편이 찡하더군요. 그리고 고맙게도, 그때 맥주를 마시며 제가 두서없이 늘어놓았던 위로들이 고마웠다는 말에는 코끝까지 찡했습니다.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청년들을 위해! (사진:SP-Photo/shutterstock.com)
제5화. 러시아는 왜 독재자를 사랑하는가
숨 가쁜 하루하루를 생업에 집중하며 살기도 벅찬 요즘입니다. 뒤를 돌아보기는커녕 좌우를 살피기도 쉽지 않은, 도약은 고사하고 뒤처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시기를 살아내느라 악전고투 중인 분들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계속 이렇게만 살아가야 할까요. 모든 불평등과 부조리와 불합리의 근원, 그리고 그것을 풀어낼 열쇠는 뜬금없지만 ‘정치’라는 것에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사회 발전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각자를 위해, 신경을 쏟고 깊이 들여다보며 치열하게 관심 가져야 할 필요가 너무나도 절실한 분야입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들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tumsasedgars /Shutterstock)
# 내 생애 첫 유럽
모스크바를 향해 달리는 열차는 아침 이른 시각 개그지망생 길리우와 콜리아(4화 참조)의 목적지인 옴스크에 도착했다. 햇살 한 점 없는 ‘희끄무리죽죽한’ 날씨가 기분까지 침전시킨다. 플랫폼에서 두 녀석과 뜨거운 작별의 포옹을 마치고 열차에 다시 돌아오니 헛헛한 기분만 감돈다. 덕분에 오전 내내 창밖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끝없는 생각에 잠겨본다.
길리우에게 내 개그를 좀 전수해줄 걸 그랬나…
식욕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없이 그렇게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한나절을 꼬박 창밖만 바라봤다. 어쩜 시베리아는 이렇게도 황량하기만 한 건지. 자작나무와 쌓인 눈뿐이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이곳을 지난다고 해도 그 감상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마치 무한반복으로 돌아가는 영사기를 바라보는 기분. 이런 나 역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흡사 ‘망부석’으로 보이겠지만.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 굳어갈 즈음 날 일깨운 건 곧 도착할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학창시절 ‘사회과 부도’에서 수없이 봤던,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우랄산맥에 자리 잡고 있는 러시아 서부의 대도시. 그렇다. 내 인생 처음 유럽 땅을 밟는 것이다. 예카테린부르크라니… 도시 이름부터가 벌써 유럽스럽지 아니한가!
원래 부르크로 끝나는 도시가 유럽스러운 거다. 함부르크, 짤츠부르크처럼.(사진:lookus /Shutterstock)
첫 유럽 땅. 마침 정차 시간은 1시간. 시간도 널널하니 밖으로 나가 볼 요량이다. 도착 30분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침대에 앉아 열차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군생활 시절, 부대에 비상이 걸려 전투모드로 내무실에 각을 잡고 앉아있던 생각이 난다.
열차가 정차하기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킨다. 공기조차 고급진. 이것이 유럽의 공기구나.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뒤라 역사의 화려한 야경만 도드라지지만, 그 너머에 있는 건 분명 유럽의 하늘이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유럽이란 미지의 공간에 발을 딛을 줄은, 그것도 이런 식으로 기차를 타고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행 출발 때부터 그런 기대나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막상 와보니 적잖이 감격스럽다.
캔츄씨? 디씨즈 유럽!
아뿔사. 설레는 마음에 급히 나오느라 평소 플랫폼에 나가는 습관대로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오고 말았다. 길바닥에 두껍게 쌓인, 반쯤 회색빛으로 변질된 눈이 발밑을 파고든다. 이미 역사 밖으로 나온 터라 되돌아가기도 늦었다. 발이 시려온다. 하지만 발에서 느껴지는 한기보다 눈이 녹으면서 슬리퍼에 남는 물기와 불순물이 더 찝찝하다.
근처에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가 보여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밤에 마실 맥주를 사기 위해서다. 2층 전체가 주류 코너인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역시 유럽이다! 계산을 하는 점원도 뭔가 세련돼 보인다. 역시 유럽인이다.
맥주를 양껏 골라 담고 계산을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너무 비싼 가격이다. 분명 며칠 전에 마셨던 맥주인데 가격이 1.5배 가까이 높다. 대형마트가 열차 플랫폼에 있는 매점보다 물건값이 비싼 게 말이 되는 건가?… 역시, 유럽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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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가 너무 하고 싶어요
이르쿠츠크에서 열차에 오른 지도 3일이 지나니 슬슬 몸이 근질근질하다. 좀이 쑤시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부 어딘가가 간지럽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에는 기름기가 가득하다. 이에 대비해 한국에서 공수해간 ‘드라이 샴푸’를 써 봤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서투른 사용 탓인지 기름기가 없어지기는커녕 더 가렵기만 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겠다 싶어 최소한의 차림(아 물론 속옷과 바지, 셔츠는 입었음)으로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따뜻한 객실과 달리 화장실은 수도가 동파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 반쯤 열린 창문 밖이 시베리아 벌판이니 그럴 만도 하다.
갈등의 시간이 잠시 흘렀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충 세수와 양치만 하고 밖으로 나가니 세면도구를 든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이 도끼눈으로 날 노려본다. 때로는 험상궂은 남성보다 날카로운 여성의 눈빛이 더욱 위협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번 열차는 이상하리만큼 객실 내 여성 비율이 높다. 그렇다 보니 화장실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자리가 날 줄을 모른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화장실 냄새가 아닌 각종 세면용품 향기가 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그럴수록 내 몸은 더욱 가렵기만 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차장에게 달려갔다. 300루블 정도를 내면 샤워를 할 수 있다지. 하지만 ‘안 된다’는 반응. 1등 칸에 샤워실이 있단 걸 뻔히 알고 왔는데? ‘에이 왜 이러시나’라는 표정과 함께 제시액을 높여 흥정해 본다. 그래도 안 된단다. 정말 앞뒤가 꽉 막힌 차장이다. 몸이 가려워 곧 죽을 것 같다고 한참동안 읍소를 하는데도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다.
이를 지켜보던 한 녀석이 슬몃 웃더니 이 열차에는 1등칸이 아예 없어 샤워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이럴 수가. 후회와 허망함에 몸은 더욱 가려워졌다.(이 때는 정말 몸에 무슨 병이 생겼나 싶을 정도였다…)
하루하고 반나절만 더 참으면 모스크바다. 그러나 사실 평소에 그렇게 깔끔하게 생활하는 편이 아님에도 이 밤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웠다. 결국 모두가 잠든 야음을 틈타 화장실로 향했다.
기억하는가? 실망을 넘어 절망스런 급수력을 자랑하는 열차 내 세면대
비좁은 세면실. 옷을 하나하나 벗는 것조차 쉽지 않아 탈의에만 몇 분이 걸렸다. 끝없는 갈등의 시간이 이어졌다. 손발에 먼저 물을 묻히고 나서 아주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눈을 질끈 감고 물을 받아 끼얹어 본다.
!!!!!!!!!!!!!
자동으로 입이 쩍 벌어지고 신음이 새어나오면서 머리카락의 모든 올기가 곤두선다. 정말이지, 심장마비에 걸린다면 분명히 이런 느낌일거다. 차디찬 물이 몸에 닿는 것보다도 그 물이 몸을 훑고 지나간 뒤 한기가 더욱 맹렬하다. 그러다보니 쉬지 않고 물을 끼얹게 된다. 몸에서 뿌옇게 김이 피어오른다. 온수가 나올 리가 없으니 그건 내 몸에서 나는 수증기일 터.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 씻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다. 옷을 껴입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위아래 치아가 딱딱 부딪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물기가 흥건해진 화장실 바닥을 발견한 차장의 짜증섞인 외침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러시아 기차역 열전 예술 양식에 대해 조예가 깊진 않지만 나름 인상 깊었던 역을 몇 개 소개한다. 알록달록 따뜻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던 역. 몽골에서 출발한 열차의 기착지인 탓에 다소 동양적인 느낌도. |
#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Strong Man’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적잖이 남아있다. 그 영향은 정치제도에까지 미치면서 다소 불완전한 민주주의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을 지닌 채 내가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자국의 전·현직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뚜렷했다. 판단의 기준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그리고 첫손에 꼽는 것은 ‘힘’이었다.
현직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해 물었을 때 대학생에서부터 노인, 군인, 어린아이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경의의 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심지어 몇몇은 나에게 푸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고, 잘 모르겠다는 나의 대답에 답답하다는 듯이 그의 업적과 위대함을 줄줄이 나열했다. 이 정도면 거의 신격화된 존재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러시아에선 가히 ‘푸느님’(사진: Slavko Sereda/Shutterstock)
사실 우리가 외신보도를 통해 접하는 푸틴의 이미지는 ‘강력한 지도자’와 ‘독재자’ 사이 그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서방언론 중심의 보도가 편향된 시각을 가져다줬을지 모르나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통해 그는 분명히 러시아를 통제형 국가로 이끄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주변국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정적을 제거하며 언론을 억압하는 모습들은 이미 사실로 알려진 일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만난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를 찬양한다. 이유를 물으니 ‘그는 강하고, 러시아를 강하게 만든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힘이 지나치게 집중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시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거나 그 같은 일은 극소수에 불과해 ‘대수로울 게 없다’는 확신에 찬 대답으로 나를 이해시키려 든다. 21세기에 이런 위험한 사고방식이라니. 더구나 그들이 한때 신주단지처럼 받들어 모셨던 사회주의라는 체제는 만인의 평등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는 소비에트 연방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알려져 있는 스탈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나뉘긴 했으나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들에게 스탈린은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한 노인이 자신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과의 서부전선에 투입돼 전투를 벌였다는 얘기를 격하게 늘어놓는 동안 열차 내 다른 노인들의 맞장구 섞인 추임새가 이어지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러시아 내에서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인식되는 스탈린(Joseph Stalin). (사진:Teia /Shutterstock)
물론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때는 강성한 제국이었고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기록돼 있으며,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국가다. 미국과 함께 군비 경쟁을 벌이며 세계의 패권을 다투던 시절이 있었고 세계 최고의 우주개발 기술을 보유한 영광의 시기도 존재했다. 비록 20세기 후반부터 경제난으로 인해 ‘종이호랑이’라는 비아냥을 피하진 못했지만.
그 강성했던 제국이 이젠 종이호랑이로… (사진:jiris /Shutterstock)
그들은 푸틴이라는 강력한 리더를 통해 그 같은 ‘강한 러시아’를 투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치안보다는 감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수많은 경찰, 이유 없이 신분 검사를 실시하는 정보요원, 열차에 무임승차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나가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변혁의 열망보다는 불편함과 억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의 위상이 승천하는 것을 더 큰 가치로 받아들이는 국가주의 원칙 하의 국민들. 독재와 권위주의로 점철된 70~80년대 당시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적인 인식이 지금의 러시아 국민들과 같았더라면 과연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이 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다'는... |
지난 이야기
스탈린에서 푸틴까지. 러시아의 민중들의 ‘강한 리더 대세론’, 그 속내는?
제6화. 그래도, 결국, 사람이다
몹쓸 생업 탓에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서랍에 켜켜이 쌓인 명함을 일일이 헤아려 보니 1000장이 조금 넘더군요. 괜스레 마음 한 편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그 무게에 질리기도 하고, 이유 없이 숨이 턱 막히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굳이 발길을 내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결국은 많은 이들을 마주했습니다. 내심 기대했던 사색의 시간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죠. 사실 애써 가지려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 미지의 공간에서마저도 사람이, 그리고 인연이 고팠는가 봅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역설적이게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사색 아닌 사색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 고마웠던, 그리고 그리울 이들과의 마지막 시간
열차에서의 치열하고도 차분했던 3박4일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시베리아 한복판에서는 두어 시간에 한 번씩 정차하던 열차는 모스크바에 가까워지고, 수도권의 주요 도시들을 거칠수록 정차가 잦아졌다. 며칠 동안 정들었던 이들이 수십 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열차를 떠난다. 이때마다 플랫폼에선 ‘작별의식’이 거행된다. 연락처와 메일주소를 주고받으며 짧은 언어로 서로의 행운을 빌어준다. 사실 재회의 가능성 따위는 제로에 수렴한다. 단지 그런 행동과 말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시공간이다.
‘굿바이’ 101호의 사람들이여 (사진:agusyonok/shutterstock.com)
갈리치(Га́лич)역에서 내린, 올해 마흔 다섯의 스타스 아저씨는 이번 열차에서의 내 전담 통역사 역할을 수행해준 고마운 분이다.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 좋은 식료품점 주인 같은 캐릭터로, 기본적으로 남들에게 뭔가 얘기를 들려주기 좋아하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나와 몇 마디 나누면서 얻은 내 신상정보를 열차 내 사람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홍보(?)해주고 다녔다. 덕분에 처음 보는 승객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만 수차례 물어봐도 자신에 대한 얘기는 꺼내놓지 않았다. 그저 ‘엄청 어두운 과거가 있는 쓸쓸한 중년 남성인가’라는 추론을 해볼 뿐이었다.
하지만 웬걸, 역에 마중 나온 이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인과 포옹을 나누곤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사람은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그를 배웅했다.
(미모의 아내를 거느린)스타스 아저씨와 (그렇지 못한) 나
열 살의 다니엘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동방에서 온 이방인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녀석. 어린이용 외화에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영특한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외모로, 분신마냥 끼고 다니는 아이패드가 그의 스마트한 이미지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나와 함께 다른 객실을 돌며 전기가 나오는 콘센트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국적과 인종과 세대를 넘어 의기투합했다. 야로슬라블(Яросла́вль)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의 어머니가 감사의 인사와 함께 건넨 따뜻한 빵 한 조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열차에서 많은 아기들을 봤지만 예카테리나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 아장아장 걷는 모습으로 모든 승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종종 찢어지는 듯한 울음으로 밤잠 혹은 낮잠을 설치게끔 만든 원흉(?)이기도 했지만 그 인형과도 같은 귀여운 모습엔 누구라도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쿨한 성격의 엄마가 툭하면 그녀를 방치하고 사라지는 바람에 내가 몇 번을 안아 올려 달랬는지 모르겠다.(나중에 딸을 낳으면 수월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시베리아 만년설도 녹이는 귀여움을 보유한 예카테리나
열차에서 내리기 전 그간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이들과 뒤늦게 어울리다 만난 이리나는 모스크바의 한 언론사 기자란다. 더없이 반가운 마음에 한 시간을 눌러앉아 대화를 나눴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반가움도 컸지만 서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적지 않았다. 역시나 어느 나라를 가든 격무와 스트레스는 기자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횡단열차의 말․말․말 러시아에서 만난 이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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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박7일, 9288km, 그리고 내 인생의 횡단열차
새벽 4시. 불과 30분 후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설레는 마음에 이미 자정부터 잠은 제쳐두고 객실 내 사람들과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아들, 동생들을 만날 생각에 들뜬 언니,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청년까지 모두들 흥분에 찬 표정들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그렇게나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드디어 열차가 멈춰 선다. 9288km, 도무지 엄두도 나지 않던 거리를 마침내 달려왔다. 지나온 6박7일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흥분되고 두려웠던, 철렁하고 아찔했던, 행복하고 뿌듯했던, 아련하고 아쉬웠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대단한 일을 해 낸 것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분명 우습게 치부할 일 또한 아닌 것이란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벅차오른다.
그동안 고생해준 차장 고모들과 뭉클한 마음으로 포옹을 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열차에서 함께 내린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지는 동시에,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내 자신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한참을 모스크바역 플랫폼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열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다. 누군가는 다시 길을 떠나야 하고 열차는 그들을 싣고 달릴 것이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었던, 모든 것을 잊고 마음 편히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들. 내가 몸담았던 그리고 잊지 못할 2016년 2월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그렇게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모스크바역 전경
※국립역사박물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 ※레닌 묘(Мавзоле́й Ле́нин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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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다’ 시리즈를 마치며
러시아를 다녀온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는 동안,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일상에 잦아들며 차분하게 나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여행을 마친 뒤면 으레 찾아오던 감정과잉증후군(임의적 표현)에 조금도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다녀온 곳이나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상에 빠지지도 않았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갖지 못했다.
열이틀 동안의 러시아가 인상 깊지 않은 탓도 아니다. 단일 여행으로는 가장 긴 시간을 해외에서 체류한 경험이었고, (지난 여행기를 보면 알겠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겪으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도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는 내가 이제는 정말 철이 든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행의 기억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여행자만의 특권일진대, 철이 든다는 이면에 뜨겁게 끓던 가슴이 굳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못내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 연유를, 총 6편의 여행기 중 5편을 탈고한 후에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다. 5주가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써 오면서 난 여전히 시베리아에, 그리고 횡단열차에 머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사람들, 그리고 그 감상에 대해 기록해나가는 동안 그 공간에서 내가 떠나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거다. 글이라는, 감정을 장악하는 존재의 무게감을 다시금 절실히 체감하는 순간이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모두 열차에서 내릴 시간이다. 그동안 시베리아에서 만났던, ‘serendipity’가 되어 준 소중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 6주 동안 여행기를 통해 함께 공감해준 독자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Спасибо, люблю тебя!”
여러분 안녕, 101호 남자는 다시 찾아옵니다! (사진:Helen’s Photos/shutterstock.com)
※Special Thanks To: 송지은, 박성우, 조다희, 지소희, 아나스타샤, 리마, 바실리, 칸타실라, 에스테로, 세르게이, 소르비나, 알렉세이, 카닌, 이반, 다이미르, 예스퍼, 길리우, 콜리아, 이고르, 나타샤, 마리나, 로이, 스타스, 다니엘, 예카테리나, 이리나, 알마스, 그리고 김진욱.
/글·사진:101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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