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년도 초기에 충북에 위치한 시골초등학교에 다녔다.
아마 내 나이의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때만 해도 먹을 것이 귀한 시대로 학교에서도 아침을 굶거나 도시락을 못 싸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빵을 점심시간에 나누어주었는데 빵은 한 반에 20개 정도로 오고 아이들은 70명이나 되는데 어느 누가 이 빵을 쉽게 먹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빵을 나누어 주는 방법이 다양했다. 구구단을 외우는 아이, 이를 닦고 온 아이, 손발에 때를 닦고 온 아이, 참기름이나 양초를 가지고 오는 아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아이, 등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골고루 주려 노력을 했지만, 그 많은 아이들의 입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빵을 먹기 위해 선생님께서 용의복장 검사를 할 때면 냇가에 뛰어가서 모래알로 이빨을 박박 문질렀으며, 돌멩이를 가지고 손발에 때를 닦고, 교실바닥을 닦기 위해 참기름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어머니 몰래 부엌에 있는 참기름을 붓다 반은 쏟아버리면서까지 병에 채워서 가져가 빵을 먹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고 억울한 사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국민교육헌장 암기 사건이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께서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는 사람한테만 빵도 주고 집에도 일찍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먼저 암기를 해야 그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교실에서는 아이들 전체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날 얼을 오늘에-----” 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은 제각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빵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한 시간 쯤 흘렀을 때 한두 명씩 담임선생님의 책상 앞에 나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하면서 선생님의 “통과”라는 소리와 함께 당당하게 빵과 가방을 가지고 나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빵이 몇 개 남았나 하는 초조와 불안감으로 암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슬며시 일어나 빵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 안을 보니 4개 밖에 남지 않은 빵을 보며 숨이 멎을 것 같은 생각에 암기하던 것을 끝마무리도 못한 채 당당히 선생님 앞으로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한번 슬쩍 보시더니 “자 해봐. 틀리면 알지.” 나는 힘차게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려 <중략>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기억이 안 나서 머뭇거리며) 박-박- 박 박정석” 이라고 큰소리로 얼떨결에 대통령 이름을 바꾸는 순간 담임선생님께서 표정이 달라지더니 지휘봉으로 머리를 한대 치면서, “니 마음대로 대통령 이름을 바꿔! 이 놈. 참 빵에 환장한 놈이여! 들어가 다시 암기해!” 하시며 소리를 쳤다. 누가 나에게 대통령이름을 제대로 알려주었나? 지금처럼 매스컴이 발달하여 TV나 라디오를 그리 흔하게 접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생한테 너무 가혹한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을 갖다 놓고 그 어려운 국민교육헌장을 다 암기했는데 마지막 대통령 이름이 틀렸다고 해서 빵을 안주니 그때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미웠다. 그때 나 혼자만이 교실에 남아서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빈 빵 바구니만 쳐다보면서 수없이 암기했다.
그때 의리 없이 먼저 암기하고 빵과 가방을 가지고 가면서 ‘열심히 해봐.“ 라고 당당히 나갔던 초등학교 동창들이 새삼 보고 싶어진다. 그때 나에게 빵을 빼앗겼던 동창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수업 중에 가끔 학생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먹을 것이 흔한 지금 학생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정말이에요? 국민교육헌장이 뭐예요? 그걸 왜 암기합니까?” 라고 한다.
지금은 아마 아이들에게 빵을 주면서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라면 어떻게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