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각종 구호단체가 활발하게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초래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자연재해가 빈번하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답변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지난 35년간 인구 증가율보다 식량 생산 증가분이 훨씬 높다는 통계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보다는 풍부하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민주주의의 부족 탓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를 말한다. 소수 거대 자본이 식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이들이 식량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식량이 남아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 돈이 없는 빈민이나 수입이 신통찮은 노동자는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 나라와 부자만이 식량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따라서 숱한 구호활동과 원조 이전에 시장의 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고착화되는 까닭은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신화는 '식량이 충분치 않다' '자연 탓이다' '인구가 너무 많다' '녹색혁명이 해결책이다' '자유시장이 굶주림을 끝낼 수 있다' '미국의 원조가 굶주림 해결에 도움이 된다'와 같은 것이다. 이 열두 가지 신화는 반드시 벗겨내야 할 '족쇄'이다.
먼저 식량이 충분치 않다는 신화를 깨부수기 위해 저자들은 현재 전 세계 식량 생산이 전 세계 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는 연구 자료와 통계를 내놓는다. 또한 방글라데시-인도-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즉 기아에 신음하고 있는 많은 빈국이 식량 수출국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반박은 '자연 탓이다' '인구가 너무 많다'와 같은 신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말 문제는 인구가 많거나 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남아도는 식량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자유시장이 굶주림을 끝낼 수 있다는 것도 저자들에 따르면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시장은 전적으로 돈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몇몇 거대 자본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식량 시장을 독점할 수 있고 실제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량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미국의 원조가 굶주림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일부 부자나라의 논리일 뿐이다. 미국의 원조는 오히려 지금과 같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자 나라가 그같은 원조를 자국의 식량 및 무기를 수출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 나라가 진정으로 전 세계적인 기아를 퇴치하려면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탕감시켜주는 데 애써야 한다.
이렇듯 저자들은 식량 문제를 둘러싼 신화(그것이 주로 부자 나라가 자신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를 조목조목 파헤치며 그 모순과 허구를 드러낸다. 저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묵인하는 것은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경향을 눈감아주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질타한다. 이러한 신화를 깨부수는 일이 바로 시장에서의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것이고 고통-슬픔-굴욕-공포로 대변되는 굶주림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프랜시스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창비 12,000원.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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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rnstkddl/70017209854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저자는 '미국과 전세계의 굶주림과 빈곤의 원인을 탐구하고 이 문제를 대중과 정책결정자에게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는, 푸드퍼스트(Food First)로 잘 알려진 비영리 연구·교육기관'인 식량과 발전정책 연구소(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와 이 기관 소속이거나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죄책감과 공포를 넘어서'라는 제목을 단 서장에서 현재 거의 8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굶주림'을 '불가능한 선택이 주는 고통'으로 정의하면서 그것은 '굴욕적인 삶'이며, '공포'를 강요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풍요로운 세계에 굶주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 즉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먹을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우리 스스로를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적어도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인간은 그 윤리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을 비롯, 전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빈곤과 굶주림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분석한다.
"분명 먹을 것이 모자라서는 아니다. 지금 세계는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자연재해 탓도 아니다. 굶주림의 원인의 식량과 토지의 부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이다."
그러면서 굶주림의 원인과 현상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몇몇은 편파적이고 사실이 아니'며 '현실적 해법을 찾는 데 장애가 된'다고 보면서 이러한 '잘못된 원리'를 '신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신화는 대체로 열두 가지로 압축되는데(1986년 초판에서는 '열 가지 신화') 그것을 거칠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신화 식량이 충분치 않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가용자원이 한계에 달해 충분한 식량을 공급할 수 없다는 주장인 바, 오늘날 세계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에 3,500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을 만큼의 곡물을 생산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5세 이하 어린이들 중 78%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미국에는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강한 식사를 감당할 힘이 없다. 미국 어린이 중 8.5%가 실제로 굶주리고 있으며, 20.1%는 굶주림의 위협에 처해 있다.
두 번째 신화 자연 탓이다
가뭄, 홍수 등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자연재해들이 기근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이다. '감자 대기근'으로 1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아일랜드는 그 당시 식량수출국이었다.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늘여나간 현재에 오히려 그 전 시대보다 재해의 취약성이 더 커지고 있다.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니라, 다만 그것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 뿐이다.
기근은 신이 내리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저지르는 사회적 재해임이 밝혀졌다.
자연을 원망하게 되면 인간의 제도가 다음 사항들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 누가 식량에 대한 권리를 가질 것인가
- 사람들이 시장을 통해서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한 즉 소득과 가격변돌이 심하다면 아무리 많은 식량이 생산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기근을 겪으면서 죽어갈 것이다.
※ 누가 만성적으로 취약해지는가
- 일반적으로 기근은 빈곤층에는 재난이지만 부유층에게는 기회가 된다. 가뭄끝에 단비가 내리거나 홍수가 진정되더라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식량생산자원에 대한 접근성은 이전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자연재해 이전에 이미 취약했던 빈농들은 재해가 끝나도 더욱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들에 대한 농업체계 자체-토양, 배수, 종자 -의 취약성
- 경제거인 압력으로 농민들이 토양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오랫동안 점증되어언 보전관행이 중단되면 수확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 누가 누구에 대하여 굶주림을 이용하는가
- 식량은 종종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고 굶주림은 항상 그 산물이다.
http://www.fao.org/docrep/005/y7352e/y7352e03.gif
세 번째 신화 인구가 너무 많다
멜서스 이래 많은 학자들이 '인구폭발'로 인한 재앙을 경고했지만, 현실은 역설적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굶주림이 상존하는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급속한 인구 증가가 굶주림을 발생시킨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굶주림과 마찬가지로 다수 빈곤층, 특히 아이를 적게 낳겠다는 선택에 필요한 안정과 경제적 기회를 여성에게서 빼앗아가는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이다. 높은 출생률은 강요된 빈곤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다.
네 번째 신화 식량이나 환경이냐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토양침식이 우려되는 한계토지에서까지 농작물과 가축을 생산하고 열대우림을 파괴하며, 농약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왜 농민들이 생산성이 좋은 농지를 두고 경작되어서는 안 될 땅과 열대우림으로 옮겨가는가, 농약은 누구에 의해 확산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생략되어 있다. 정답은 거대 사업자들. 필리핀과 니카라과를 비극의 땅으로 만든 건 다국적 기업 돌(Dole)과 미국 농장주들이었다.
http://www.fao.org/docrep/005/y7352e/y7352e14.gif
다섯 번째 신화 녹색혁명이 해결책이다
생산증대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면 토지에 대한 접근성과 구매력에 관한 집중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굶주림을 줄일 수 없다. 기술의 혜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불평등만 심화될 뿐이다. 식량을 생산할 토지나 구입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굶주림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여섯 번째 신화 정의냐 생산이냐
토지개혁은 대규모 생산자들의 식량 수확을 줄어들게 할 것이며, 결국은 굶주린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정의'와 '생산'은 서로 경쟁하는 목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주장과 달리 '소농들이 대농들보다 더 집약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더 높다.' 전통적인 영농체계는 생산에 소비된 칼로리당 5~15배의 칼로리를 생산하는 반면에, 미국 같은 자본집약적 체계에서는 10칼로리를 써서 1칼로리만을 생산해 낸다.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MST)은 아래로부터 시작된 토지개혁에 대한 요구운동이다.
http://www.foodfirst.org/images/upload/7a4c-63-1078_400x320.jpg
일곱 번째 신화 자유시장이 굶주림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내버려 두면 시장은 단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반영할 따름이다. 시장은 개인의 필요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돈에 반응하고, 생산에 드는 사회적 비용과 자원비용에 대해 무관심하다. 시장은 먹을 것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여덟 번째 신화 자유무역이 해답이다
수출로 번 돈으로 빈곤을 줄일 수 있는 물건을 수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출이 굶주림을 끝내지는 않는다. 수출에서 이윤을 얻는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쓰지 않으며, 수출 농업이 식량 작물을 대체하면서 식량작물을 재배하는 소농들을 몰아내 버리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가 온두라스의 멜론에 지출하는 1달러 가운데 9센트가 온두라스에 돌아오는데 그 중 농민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2센트도 안 된다. 가장 큰 이익은 보는 것은 미국에 근거를 둔 중개업자, 도소매업자들인 것이다.
아홉 번째 신화 너무 굶주려서 저항할 힘도 없다
빈민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에 무지하고 수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빈민들은 '경제체제의 작동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착취가 일어나는 과정(임금 착취, 정치차금 공여, 뇌물, 가격 차별)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수동적이고 무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보다는 덜 가난하지만 역시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인 경제정책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고 이들을 변혁의 대열에 동참시키고 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활동이나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은 그 본보기다.
열번째 신화 미국의 원조가 굶주림 해결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미국 대외원조의 목표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증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미국의 식량 원조는 굶주림의 해결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90년대 총원조의 5%만이 긴급구호용이었다. 원조는 실제 농업발전을 저해하기도 했다. 보조금을 등에 업은 값싼, 혹은 공짜 미국 곡물은 지역에서 생산된 식량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지역 농민들을 농토에서 도시로 내모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한국을 세계 제 3위의 미국농산물 수입국이 되게 하고, 밀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 한국인들의 식습관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열한 번째 신화 그들이 굶주리면 우리가 이득을 본다
굶주린 사람들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 우리가 커피, 바나나에서 배터리와 컴퓨터에 이르는 모든 물건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이다. 우리의 복지를 위협하는 것은 굶주림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사람들이 계속 궁핍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열두 번째 신화 식량이냐 자유냐
굶주림의 종식을 위해서는 사회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사람들의 자유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시민적 자유가 보호되는 사회에서 더 쉽게 굶주림을 끝낼 수 있다. 여기서 자유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뭉치고, 억압과 착취, 부당한 차별에서 벗어나고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생계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빈곤과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지적 발전, 정신적 통찰, 음악적 재능, 육체적 성취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거대 이념의 경제적 독단'을 캐묻는다. 그리하여 "두 이념은 독단이 되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적 가치들을 타락시킨다. 도처에 널린 굶주림은 이러한 타락을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증거 "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게 사는 데 필요한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확립하고 나아가 자유를 더 확산시키기"를 우리의 책임으로 이해한다.
[출처] 굶주리는 세계 -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작성자 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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