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daum.net/et_nunc/64
케네디 원 지음, 서정아 옮김, 프롬나드(2013)
작년 이맘때, 태국 남부 해변 지역 여기저기를 한 달 정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하늘만큼이나 파랬던 바다와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하며 보았던 바다 속 아름다운 풍경들은 일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그때 해변을 산책하며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바닷물에 직접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이었다. 저 나무들은 어떤 생존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에 저렇게 짠 바닷물 위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때의 그 나무들, 바로 맹그로브에 대한 이야기이다.
맹그로브는 여러모로 특이한 나무다. 바닷물에 직접 뿌리를 내리며 자랄 뿐 아니라, 바닷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소금기를 걸러내는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물 위로 드러난 뿌리로 호흡을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특한 건 맹그로브가 ‘새끼를 낳는 나무’라는 점이다. 씨앗을 통해 번식하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맹그로브는 주아라고 불리는 싹이 튼 형태의 작은 나무를 키워낸 후, 이를 바다에 직접 떨어뜨려 번식한다. 떨어진 주아는 썰물의 갯벌에서 바로 뿌리를 내려 자라거나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 정착한 곳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 직접 광합성을 할 수 있기에 바다 위에서도 한 달 정도는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바닷가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일 것이다.
단지 신기한 생존전략 때문에 맹그로브가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맹그로브 숲으로 인해 만들어진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맹그로브 진흙 1세제곱미터 안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기체, 크기가 0.5밀리미터 이상인 유기체가 통상적으로 2만에서 4만 종이 포함되어 있다.”(152) 풍부한 유기체와 견고한 뿌리라는 보호막은 다양한 생물들이 풍부한 먹이를 바탕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상어와 같은 강인한 생물조차도 어린 시절엔 맹그로브 숲의 보호를 받으면 살아간다. 태국에서도 맹그로브 숲에서 뿌리 사이를 배회하는 새끼 상어를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맹그로브는 오늘날과 같은 지구온난화 시대에 훌륭한 탄소저장고 역할도 하고 있다. 맹그로브 퇴적물이 탄소를 가두어두어 이산화탄소로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밀물과 썰물을 통해 맹그로브는 엄청난 양의 용해된 유기 탄소를 배출해 해양 생태계 전반에 필수 양분을 공급한다. 비록 지구 지표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1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맹그로브는 육지에서 기원해 바다로 운송되는 유기 탄소의 10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148) 그런데 지금, 이 보석 같은 나무들이 세계 곳곳에서 파헤쳐지고 있다.
“그곳을 답사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맹그로브 숲은 단단한 땅의 경계에 깊게 뿌리 내려 바다로의 접근을 가로막는, 그야말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해안의 덤불숲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애물이자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맹그로브는 개발 광풍이 불었던 플로리다에서뿐만 아니라 맹그로브가 자라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뿌리 뽑히고 불태워지고 불도저로 파헤쳐졌다.”(15)
첫 단추는 새우양식업이었다. 원래 맹그로브 숲은 새우의 천연 서식지이다. 먼 바다에서 태어난 새우 유생은 맹그로브가 우거진 연안으로 이동하여 “다 자라 허물을 벗고 다시 먼바다로 나갈 준비를 갖출 때까지 맹그로브 숲의 뒤엉킨 가지 사이 보금자리에서 먹이를 얻으며 살아간다.”(51~52) 그러나 새우의 양식화가 성공한 이후 최적의 양식지로서 맹그로브 숲은 상업 자본의 무자비한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구색만 갖출 정도의 임대료에도 기꺼이 땅을 빌려줄 태세였고 새우 양식업자들은 약삭빠르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새우는 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종목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당연히 새우 양식업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55)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이런 식으로 맹그로브 숲을 파헤쳤다.
사정은 부유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수산양식업이 맹그로브를 감소시킨 기폭제였다면, 부유한 국가와 그 연안 지역에서는 부동산 개발이 원흉이었다.”(107) 리조트와 카지노, 요트 선착장과 골프장 같은 위락 시설을 만들기 위해 포클레인과 불도저로 맹그로브 숲을 밀어내고 있다. 또한 토목공사로 인한 침전물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주변 생태계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상어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새끼 서식지에서 갓 태어난 레몬상어의 5년 생존율은 노스비미니의 준설 작업과 간척 사업의 폐해로 30퍼센트나 감소되었다.”(110) 댐과 보를 건설하기 위해 강바닥을 파헤치고, 골프장과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우리 모습이 비춰진다.
이처럼 맹그로브 숲에 대한 공격의 결과는 생태계의 교란과 환경의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맹그로브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던 공동체의 파괴로 나타난다. “안전, 식량 공급, 생계의 원천. 이 모두는 맹그로브가 해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서비스다. 이들에게 맹그로브의 파괴란 표면적인 파장 효과에 머무는 간접적인 환경 손실 정도가 아니다.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산산조각 나고 사람들은 도시로의 이주를 강요당한다. 건강과 복지도 악화된다. 그러나 생태계의 훼손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적인 손실도 세계 경제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외부 효과에 속한다.”(209)
물론 뒤늦게 맹그로브의 가치를 깨달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한번 무너져 내린 생태계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자원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역시 4대강 사업 등으로 인해 망가져가고 있는 하천을 복원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비용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간의 건강이든 자연의 건강이든 망치기는 쉬워도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생태적 가치에 대한 전지구적 각성이 필요한 이유다.
“이리안자야의 아스마트족 신화에는 외로운 창조자가 벗을 만들고 싶어 맹그로브 뿌리로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의 외로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맹그로브를 베어 그 나무줄기로 북을 만들어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간 형상을 한 조각이 생명을 얻어 춤을 춘다.”(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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