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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인터넷 속의 세계사

중국의 인재등용법 - 과거제를 중심으로

by 시경아빠 201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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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중국의 인재 등용법-과거제를 중심으로’특강

“중국의 인재 등용은 과거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요. 漢代는 ‘향거이선제’, 魏晉南北朝대에는 ‘구품중정제’, 唐대엔 과거제, 明淸대엔 宋대 과거제를 모태로 ‘紳士’라는 명청시대 고유한 사회계층을 형성시켰지요. 과거제에 학교시가 첨가되면서 다양한 신사계층이 출현했답니다. ”

박기수 성대 사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오전 7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지도교수 이효성) 고위과정 특강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중국 명청시대 연구 전문가인 박기수 교수는 이날 ‘중국이야기:중국의 인재등용법-과거제를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한 특강을 통해 중국의 각 시대 인재등용법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특히 “주대에는 종법이나 봉건에 의한 신분에 따라 관료를 임명했다”며 “춘추전국시기에는 지위가 낮더라도 재능과 학식이 뛰어난 선비를 등용하려는 경향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진나라에서는 군에서의 공에 따라 관직을 수여하는 제도를 이용해 6국을 통일했고 이런 제도는 한대에도 계승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대에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의 주장인 상현 사상에 기초해 훌륭한 인재의 추천을 제도화했다”며 “추천된 인재에 대한 평가를 거쳐 관료로 등용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또 “위진남북조의 ‘구품중정제’는 ‘구품관인법’이라 한다”며 “중정을 설치해 중정관이 가세와 도덕, 재능으로 인물을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구품중정제의 기본 정신은 향론에 따라 현과 덕을 기준으로 한 개개인의 서열로 관료의 상하체계를 세우는 것”이라며 “중정 한사람이 넓은 향국의 많은 인재를 공정히 품평하기 곤란하고 정실과 자의성이 개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나라때는 구품중정제가 귀족에게 농단돼 모든 폐단이 발생한다고 보아 이를 폐지하고 처음으로 진사과를 두었다”고 말했다. 또 “당대 과거 합격자의 관리등용은 수도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관직에 나아가려면 신, 언, 서, 판을 겨루는 이부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며 “당대 사회는 귀족사회적 성격이었고 이부시험에는 수험생의 출신 가문이 당락을 좌우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송대의 과거제도에 대해서는 “송대에는 서민사회가 출현하고 황제독재체제가 확립돼 관료를 등용하는 과거제도에도 변화가 있었고, 당과 송의 과거제도는 내용이나 성격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당대의 과거가 관리후보 자격 시험이라면 송대의 과거는 관리선발 시험”이라며 “당대에는 예부에서 과거를 주관했고, 합격자는 관리 후보 자격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이부 시험에 합격해야 관리가 될 수 있었고, 문벌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여서 서민 자체는 이부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또 “송대에는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시제도를 실시했고, 송대의 과거제는 운영상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했다”며 “시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당대에 없던 성명봉인법과 답안을 다시 써서 채점하는 법을 창안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명청시대 과거제는 송대 과거제를 모태로 좀 더 복잡해졌는데, ‘신사’라는 명청시대 고유한 사회계층은 과거제, 학교제, 매관매작제를 매개로 국가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현직관료와 퇴직관료, 면직관료 등 관직과 직접 관련된 자들이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과거 치르는 서생을 ‘거자’라 하는데 이 거자는 일곱 번 변신을 한다”며 “첫 시험장에 들어갈때는 거지꼴”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옛날 과거 시험장에 들 때에는 이부자리부터 변기까지도 들고 갔기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발을 끄는 몰골을 거지에 비유한 것”이라며 “그 거지가 수인으로 변하는 것은 커닝을 위한 부정물을 품에 숨기지 않았나 해서 옷을 벗기고 몸검사를 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좌석에 앉아 시험을 치르면서 목을 늘여 이웃을 보려하는 몰골이 마치 벌집에서 목을 내어 민 벌 새끼처럼 된다”며 “시험을 다 치르고 밖에 나오면 아랫다리에 힘이 빠져 조롱속의 병든 새로 변하고 방이 붙는 날은 안절부절 못하여 목을 매놓은 원숭이 꼴이 된다”고 말했다. 또 “낙방임이 확인되는 순간 땅바닥에 굴러 움직일 힘을 잃으니 독을 먹은 파리가 되고 정신이 들면 주변 세간을 닥치는대로 주워 던져 부수는 것이 제가 낳은 알들을 짓눌러 깨는 비둘기 꼴”이라며 “이렇게 일곱 번 변하기 때문에 수험생의 고충은 예나 지금이나 칠변(七變)한다는데서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성일기자 hansung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