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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인도 2.싱가포르22일(2004)

바라나시

by 시경아빠 200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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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카주라호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에 매력을 느끼고, 가기를 소망한다고 했을 때, 나는 시체가 둥둥 떠다닌다는 더러운 갠지스 강변의 그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호텔의 옥상에서 바라다보던 바라나시의 음산하고 조용한 야경, 그리고 그 당시에는 무서워서 혼자서는 다니기 싫었던 좁디좁은 미로길, 보트위에서 보았던 버닝가트의 연기... 이때부터 사진을 별로 찍지 않게 되어서 찍은 사진은 많지 않은데 그래서 오히려 풍경들이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가슴에 담긴 것 같다. 덕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남아서 글로 정리하기가 조심스럽다. 글로 남겨버리면 시간이 흐른 뒤, 글로 쓴 것만 남게 될까봐.

 

바라나시로 가는길

 

기차역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기차역에 있는 숙소의 문 앞이었다. 먼지가 꽤 있었지만 돗자리를 깔고 보니 그렇게 불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단지 쥐들이 좀 돌아다녔다. 한국인들은 어딜가나 모이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자리를 펴고 앉으니 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였다.

 

유선생님이 역 앞에 나가 구경을 하신다고 하시기에 따라나섰다. 어두우면 인적인 거의 끊겼던 보드가야와 달리 역주변이라서인지 사람이 꽤 많았다. 조금 걸어들어가다가 토스트를 하는 가판에 사람이 꽤 있기에 사먹었는데 꽤 맛이 있었다. 유선생님께서 사람들이 많은 가게가 맛있는 집일 거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붐비는 포장마차(?)에서 칠리치킨을 사먹고 그 말에 100% 동의했다. 꼴까따에서 사먹었던 칠리치킨보다 더 맛있었고, 값도 더 쌌다. 칠리치킨과 콜라를 사서 가지고 갔더니 금방 사라져버려서 또 나와야 했다.

 

역앞에 전화하는 곳이 있길래 들어오는 길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꼴까따 하우라 역 앞에서 전화한 뒤로 처음 거는 거였는데 엄마랑 아빠가 그때보다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약간 서운했다. 전화주인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바가지를 씌울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욱현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계산을 해주는 덕에 바가지요금을 면했다.

 

바라나시는 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판타지적인 세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바라나시에 대해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그 물에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는 등 각종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들을 들어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우리가 자리잡은 곳 주변에 작은 대합실이 따로 있었는데 하은이와 욱현이가 그 방에 들어갔다가 시체를 봤다고 수선을 피웠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어 갠지스강가에서 화장한 뒤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을 소원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 죽기 직전이나 죽은 뒤에 바라나시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시체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차마 무서워서 보러가지 못했는데 마치 미라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 천으로 씌워져 있다고 했다. 결국 그 시체가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의 상상은 거기서 끝났다.

 

바라나시 - (1) 버닝가트

 

 

 

아침에 바라나시에 도착해 역 앞에서 오토릭샤를 탔다. 가이드북을 뒤져 버닝가트에서 가깝다는 Guest House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고는 다른 곳을 데려다 주었다. 여기가 아니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이번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묵는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가이드북마다 써있는 릭샤왈라들의 횡포였다. 결국 우린 직접 숙소를 찾기로 하고 바라나시의 미로길로 들어갔다.

 

대장님을 따라가면서 나는 계속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높은 벽들 때문에 햇빛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데다 낡고 습하고 좁은데다 더럽기까기 한 골목이 공포영화에 나오는 하수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 좁은 골목에 소‘님’께서 등장하시면 오물까지 묻어있는 그 몸이나 꼬리가 닿을까봐, 그리고 혹시나 뿔에 받히거나 뒷다리에 채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더군다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인된 길치에 방향치인 것이다. 혹시라도 일행과 떨어지면...이라고 생각하니 인도에 오기 전에 들었던 각종 괴담들이 떠올라 더 무서워졌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대장님은 어떤 아이를 따라 숙소를 알아본다며 어디론가 가셨고 나는 다른 일행들과 라씨의 원료로 보이는 플레인 요쿠르트를 파는 할머니 옆에 서 있었다. 욱현이가 지나가던 소의 엉덩이를 때렸는데 그 할머니가 무척 화를 냈다. 소들이 버려진 채 돌아다니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도에서 소가 신성시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기다리다 지치기 시작할 때쯤 대장님이 돌아오셨다. 한참 미로길을 빙빙 돌고 돌아서 도착한 Myshra Hotel. 나름대로 라운지로 보이는 곳에 쇼파도 있고 TV도 있고 숙박부 같은 것을 적는 카운터도 있어서 지난번에 묵었던 Guest House보다 나아보였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TV였다.) 대장님 말씀에 의하면 조금만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강가가 나오고 버닝가트도 가깝다고 했다.

 

방을 3개 빌려서 여자 / 남자 / 상은이가족으로 나눠 묵기로 했다. 방은 3층이었는데 시멘트 벽에 작은 화장실과 발코니가 딸려있었다. 발코니에 나가면 오른편으로 강가강이 보여 풍경이 좋았지만 건물이 하도 낡아보여 혹시 발코니째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다.

 

 

짐을 풀기가 무섭게 버닝가트를 구경하러 나갔다. 화장터가 가까워지면서 혹시나 고기굽는 냄새가 나서 군침이 돌거나 하면 어쩌나하는 한심한 고민을 했다. 사람의 육신이 한줌 재로 사그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을 떠올리게 된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가트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외국인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인도인들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먼저번 사람들의 재 위에 다시 장작이 쌓아 올려지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천으로 휘감긴 시체가 눕혀진다. 장작 속에 불을 붙이고 약간은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불길이 조금씩 자라고, 그러다 어느 순간 거대해진 불길이 몸을 감싼다. 천이 타들어가고 피부가 드러나고...그 피부가 타들어간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다행히 고기굽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난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을 경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면에 그 사람의 발바닥이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타들어가던 그 발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화장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 발을 꼬챙이로 찍어 불위로 던져올렸다.

 

태어나서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사람의 몸이 타들어가는 모습은 어쩌면 꿈에 나타날까 두려웠을 법도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끔찍하다거나 징그럽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광경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삶에 대한 허무함, 덧없음과 같은 고차원적인 느낌이 생기기를 바랬는데, 솔직히 말해서 별로 그런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 더 눈길이 간 것은 화장된 재가 뿌려진 바로 그 옆에서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이었다. 외국인들은 화장터에서 죽음을 느끼고 두려움을 가지는데 그와는 달리 바로 화장터 옆에서 그 재가 뿌려진 물에 태연하게 빨래와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못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갠지스 강에서 사람들이 목욕하는 모습은 재미있다. 남자들은 하얀색 천으로 된 무릎까지 오는 치마만 입은 채 머리에 비누칠을 한 뒤 다이빙을 한다. 한 2~3미터 밖에서 머리를 쏙 내밀고서는 강가로 헤엄쳐 나오는데 물속에서 흰 천을 다시 두르고 나온다. 사실 좀 민망한 장면이었지만 한낮의 태양빛이 정수리에 내리 꽂히고 있었고 화장터의 열기로 몸이 달아올라 강가강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시원해 보였다.

 

 

바라나시에서도 어김없이 한국식당을 찾아나섰다. ‘라가카페’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에 상당히 호평이어서 기대를 했는데 가이드북의 설명과 달리 여주인이 약간 불친절해보였고 값이 비싸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호텔 옥상에 올라갔다. 식당을 겸하는 옥상은 강가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조금 멀리 화장터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강에는 보트가 떠있고, 오래된 탑들이 보이고 건너편 건물에서는 연 날리는 아이들과 지붕을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이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조금 먼 가트에서 ‘뿌자’를 한다기에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앉아 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다섯명의 남자가 불이 붙어있는 램프를 들고 춤을 추며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서 구경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랜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칠흙같은 어둠이 우릴 감싸고 있었고 도대체 소‘님’께서 어디서 튀어나오실지 알 수가 없었으며, 중간에 동네 아이들이 수작(?)을 걸어서 흠칫흠칫 놀래기도 했다. 그리고 낮에는 그나마 고풍스럽게 느껴졌던 오래된 건물들은 흉물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오래된 건물은 이래서 공포영화의 주소재로 쓰이는가보다.

 

 

저녁은 호텔의 옥상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비르야니라는 걸 시켰는데 너무 느끼해서 먹다가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상은이는 그날 과식을 하고 그 뒤로 한참을 고생했다.

 

저녁을 먹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죽음, 종교와 같은 주제로 흘렀다. 낮에 화장터를 지켜보았던 느낌을 나누고, 인도인들과 우리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다른 것 같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다가 그 원인이 종교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심오한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고 강가강의 야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까만 잉크를 쏟아 놓은 것 같이 어둠이 강가강을 감싸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화장터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오래된 탑은 조명을 받아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였다. 그리고 이 풍경이 바로 내 가슴속에 담긴 인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까까지 그 풍경으로 인해 공포에 떨었으면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고 아름답다고 느끼다니, 참 간사하기도 하지!

 

바라나시 - (2) 바라나시의 일출

 

 

강가의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로비까지 내려오자 뱃사공이 따라붙었다. 1시간정도 가트변을 돌다가 강건너 모래사장에 내려 일출을 보는 코스였다. 조그마한 배에 우리 일행이 모두 올랐다. 상은이, 하은이, 욱현이가 빠지긴 했지만 어른 7명,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그런데 사공은 한명이다. 결코 건장하다고 하기 힘든 몸집인데 신기하게도 노를 젓기 시작하자 배가 움직였다. 어쩐지 약간 미안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용케도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비행기 담요를 챙겨왔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매일 느끼는 거지만 인도는 정말 일교차가 심하다.

 

바라나시는 잠들어 있었다. 어제의 그 소란스러움이 거짓말 같이 고요하기만 했다. 사공의 노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유독 화장터의 불길만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유선생님께서 화장터를 찍으려고 하셨는데 그 순간은 약간 긴장이 됐다. 화장터를 찍다가 카메라를 뺏기고 봉변을 당할 뻔 했다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 건너편 모래사장에 내리자 해가 빨간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일출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전문가 대장님께서 상당히 고생을 하셨다. 모래사장에 앉으셨다가 일어서셨다가... 단체사진도 찍고 가족사진(?)도 찍고...

 

다른 곳에서보다 바라나시에서의 일출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삶과 죽음이 가장 가까이 있는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보트에 타고 돌아오는데 장삿배가 따라붙었다. 강가 강물을 담는 조그마한 병들이 주 상품이다. 죽어서 강가 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힌두교도들이 임시방편으로 강가 강물을 담아가기 때문에 생긴 병이다. 김현미 선생님이 병을 사서 강물을 담으셨다.

 

강건너편에서 바라나시를 보며 괜시리 경건해졌었는데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그 기분은 사라져버렸다. 소가 싼 똥이 여기저기에 너무 많아서 소똥 피해 다니느라 옆건물을 쳐다볼 여유도, 경건해질 새도 없기 때문이었다.

 

 

보트에 내려서 짜이를 한잔씩 마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짜이를 즐긴다! 이젠 우리도 슬슬 인도에 적응이 되어간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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