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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답사자료집

국토학교 제5강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by 시경아빠 200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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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학교, 내포(內浦)지방으로 갑니다

[알림] 8월 답사 키워드는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기사입력 2009-08-03 오후 1:46:36

 

 

우리 땅의 소울(soul)과 스피릿(spirit)을 찾아 떠나는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 8월 답사가 22-23일 1박2일로 내포지방에서 펼쳐집니다. 주제는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답사 키워드는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입니다.

지난 4월 개교(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이래 5월(영남 전통마을 순례) 6월(호남의 누각과 정자 문화) 7월(북강원의 요산요수)에 이은 다섯 번째 강의입니다.

내포지방(內浦地方)은 예로부터 가야산(678m)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의 열개 고을, 즉 해미, 결성, 태안, 서산, 면천, 당진, 홍주(홍성), 덕산, 예산, 신창을 이릅니다.

박태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내포지방(內浦地方)은 마한과 백제의 시대로부터 서해를 통하여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하나의 운동장으로 삼아 왕래하는 개방성과 진취성을 발휘해왔던 지역이다. 육지와 바다가 들쭉날쭉 넘나들고 산과 들과 갯벌 및 연근해의 농산, 수산, 해산물이 함께 풍부한 자연환경이었다.

이중환에 따르면 내포지방은 가야산(678m)을 한가운데로 놓아 내륙과 포구가 서해를 향해 열려 있는 10개 고을을 가리킨다 하였다. 내포지방에 대한 근대적인 관찰은 외해(外海)로 나가는 포구가 내륙 깊숙이까지 형성되는 지형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개발해볼 가능성에 주목해보게 했다.

안성천-아산만-당진만, 삽교천-삽교호, 가로림만-천수만-적돌만, 석문반도-태안반도-대산반도-부석반도-안면도 등이 얽히고설키어 대단히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형성하고 간만의 차이가 큰 데에서 비롯되는 방대한 갯벌과 다양한 어종의 해양자원을 보유한다.

이처럼 내륙성과 외해성을 충실하게 융화시키는 고장을 이루기에 태안반도 일대는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 남해안의 다도해와 한려수도는 해상국립공원인 것이고, 해안이 국립공원인 것은 태안반도가 유일하다. 안면도는 원래부터 섬 지방이었던 것이 아니라 천수만을 안전한 해상루트로 활용하기 위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3차례에 걸쳐 태안군의 남단을 인위적으로 절삭시키려는 노력 끝에 마침내 도서지역으로 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기술문명은 이 해안국립공원 일대를 완연히 새롭게 디자인하려는 중인데 경계해야 할 일도 있다. 다행히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의 아픔에서도 벗어나고 있는 내포지방에 대해서는 그 내륙과 포구들을 전체적으로 새롭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해버리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바다가 뽕나무밭이 되고 목장이 되는 <벽해상전>의 지각변동이 지난 80년대로부터 내포지방에 불어 닥쳤다. 하지만 내포지방에는 지속가능한 개발만 아니라 지속불가능한 개발로 인해 환경교란과 생태계 파괴가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기도 했다.

서해안시대가 활짝 열려 있고 고속도로망 연계를 통해 교통환경이 크게 달라진 지금의 내포지방에 대해서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내포의 산과 들과 하천, 갯벌과 바다는 서로 배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융통되어 참으로 특이한 경관을 연출하고 예로부터 풍족한 참살이문화(웰빙문화)를 영위할 수 있게 했다. 지속가능한 이 지역의 문화유산 계승만이 아니라 지속불가능하게 된 문화유산의 회복과 복원에 대한 로드맵을 새롭게 구성하여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과 병행하여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생태자연-문화역사-기술문명의 대합창을 연주해주고 있는 내포지방이니만치 눈 뚜껑과 귀 마개를 크게 열어 한껏 넓게 견문록을 작성해 보아야 한다.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도래를 운위하는 이들이 꺼내는 말이 있다.

"19세기는 지중해의 시대, 20세기는 대서양의 시대, 21세기는 태평양의 시대이며 황해가 제2의 지중해가 되는 시대이다."


내포지방은 환황해권 문화역사유산의 정당한 상속자임을 자부해야 한다.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시대에 과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신의 역할을 씩씩하게 발휘해보려는 준비를 어떻게나 해나가고 있는지 현지답사와 조사를 통해 확인해보고 싶다.

8월 넷째 주말인 22-23일의 1박2일, 교장 선생님의 <길 위의 명강의>와 함께 열리는 국토학교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8월 22일(토요일)
08:00 서울에서 출발
(서울 강남 압구정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

09:00 서해대교-행담도 도착

행담도의 정치지리학

행담도는 오늘에 고속도로 휴게소 역할일 따름이지만 이 섬의 정치지리학은 전통시대에 참으로 중요하였다.

이른바 '남연군 묘 도굴 실패사건'의 침략루트가 단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오페르트 일당은 1868년 4월 18일 680톤급의 차이나호와 8톤급의 소증기선 크레타호를 행담도에 정박시켰다.

다음날 소형증기선만 운행하여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九萬浦)에 상륙한다(현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

덕산(德山) 현청을 습격한 뒤를 이어 오후 5시경 가야산 초입의 명당 터를 차지한 남연군(흥선대원군 부친) 묘앞에 다다랐다.

 철야하며 도굴작업에 들어가 5시간을 경과하였어도 관곽을 덮고 있는 묘광이 견고하기만 한데다가 조선의 군관민이 추격하고 썰물 시간이 가까워져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리 후포(下里後浦)의 민가를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또 강화도동검도(東檢島)에 상륙하여 송아지를 빼앗으려다 조선 수비군의 공격을 받아 2명의 희생자를 내는 등 해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행담도를 제대로 알면 내포지방의 해운과 수운 및 육로교통이 한눈에 보인다.

중국 당나라와 교역하는 항구라 했던 당진(唐津)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행담도가 그 무역항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09:30-10:00 면천읍성, 향교 답사

당진현보다 컸던 면천군, 어째서 당진군 면천면 되었을까
면천(沔川)은 1914년의 행정개편 이후 당진군의 1개 면으로 격하되었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면천이 군(郡) 소재지였음을 밝히고 있는데 당진현, 해미현, 예산현보다 규모가 큰 고을이었다.

개성의 해양세력 출신 왕건의 고려 창업에는 면천의 해양 호족세력이었던 복지겸과 박술희의 역할이 대단히 돋보인다. 특히 서해 전역의 해양세력을 결합시키는 몫을 박술희가 이룩해낼 수 있었다. 박술희 기념사업을 벌이려는 움직임이 면천에서 일어나고 있다.

1797년에 연암 박지원은 61세의 나이로 면천군수로 부임하여 3년동안 재임하면서 특이한 업적을 쌓았다. 정조의 언론탄압정책이라 할 '문체반정운동'의 제1차 숙청대상이었던 그는 면천 부임지에서 '과농소초(課農小抄)'와 '한민명전록(限民明田錄)'이라는 논문을 써서 바쳤다. 정조가 그의 농촌개혁론에 감명을 받아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오늘에 살펴도 탁월한 농촌살리기운동 저술인 이 논문을 살펴보기를….

한국고전번역원-고전번역서-여한십가문초-제6권-백성의 명전을 한정하는 의논/ 제7권-과농소초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면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대건 신부의 생가마을 솔뫼(송산리)가 있거니와 김신부의 증조부 되는 이가 천주교 선교 문제로 붙들려 왔을 적에 이를 구제해준 이가 박지원 군수라 하였으니 <열하일기>의 저자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박지원은 부임 3년째가 되는 1800년에 향교 앞에 있던 연못을 새롭게 조영하여 정자를 세웠던 적이 있는데 당진군은 2006년 6월 12일 이 연못과 정자를 복원시켰다. 면천읍성을 비롯한 문화유적들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고 이 고을 특산품인 두견주가 새롭게 명성을 얻고 있다.

내포지방이 갖고 있는 내륙성과 외해성에 대해서 조선시대에는 내륙성을 중시했다면 근대에 와서는 외해성을 주목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면천과 당진의 역전현상이 빚어진 이유가 이러한 때문일 것이라고 추론해본다.

10:20-10:50 윤봉길 의사 생가 방문

내포지방의 울뚝밸 정신
농민문학의 압권소설 '분례기'는 덕산과 덕숭산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인데 작가 방영웅에게 그의 고향 예산은 어떠한 고을인가 물었을 적에 그의 대답은 '모질긴 끈질김'이라 하였다.

인근 고을인 보령이 고향인 이문구는 '내포지방에는 반골 벨트가 있다' 하였다. 당진-예산-홍성-보령-청양으로 이어지는 고을 사람들은 울뚝밸 정신(울뚝불뚝 끈덕지게 버티어내는 배알 정신)을 갖고 있다 했다. 바닷바람 탓일까 서울바람 탓일까.

충남 도청소재지가 예산 삽교읍과 홍성 홍북면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여 이전되는데 내포 지방에 어떠한 변화가 찾아오려는가. 김복한 민종식 한용운 김좌진 윤봉길의 고장, 그런가하면 박헌영의 고장이기도 하고 예산 덕산장터에는 전통시대의 부보상(負褓商) 본부의 유적이 남아 있기도 한데 내포지방의 근대운동사의 흐름에 대한 평가는 오늘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더구나 탈근대 시대에도 과연 근대운동시대의 저 끈질김 정신, 울뚝백 정신은 살아남아 있는지 이번의 교외교수(校外敎授) 기회에 탐색해볼 수 있기를….
윤봉길 의사 생가 및 기념관(충의사)->http://www.chunghyo.net:8080/choong/index.jsp


진양조 가락으로 느릿느릿하기만 하던 내포지방의 말투와 사투리가 어찌된 영문일까. 온갖 거대자본의 침투와 공사판의 난립상황 속에서 그 말씨가 휘몰이 장단에다가 알레그로 아사이 어조로 빨라지고 행동거조마저 잽싸고 맵싸하게 변해가고 있는 중이려니 내포지방의 <느림보 정신>의 행방은 어찌 되는지….

11:00-12:30 덕숭산 수덕사-정혜사 순방

고대불교 못지않게 근대불교의 정신문화사를 살피고자 할 적에 수덕사는 20세기 1백년의 민족수난시대에 우뚝한 버팀목의 요지부동 터전이 돼왔음을 체감하게 된다. 이 사원과 관련되는 역사인물열전, 곧 송만공 스님과 김일엽 스님, 화가 이응로와 나혜석 등의 불심과 도심, 예술정신의 탐사만으로 이미 덕숭산의 문화공간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수덕사의 '불교산수'는 참으로 기품 있고 단정하다. 더구나 정갈한 산사로(山寺路)의 사색 산책으로 닿게 되는 덕숭산 상승공간의 정혜사에서 조망하는 예산 고을의 파노라마가 밝고 맑다.
수덕사->http://www.sudeoksa.com/

12:30-13:30 점심식사 (수덕사 입구 자연식당의 산채정식)
14:00-14:30 해미읍성 둘러보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은 행정관아와 해양수비의 군사기지, 그리고 성민들의 민가와 시장바닥 및 놀이마당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조선읍성과 성읍의 콘텐츠를 보여주는데 반하여 이순신이 복무하기도 했던 해미읍성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애환이 어린 회화나무와 약간의 건축물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게 공백상태가 되어 있는 <역사유적 공간>이다.

읍성의 성곽만은 완강하게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차단해주는데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마음을 비우지 않을 수 없다. <공백의 공간>에 숨어 있는 문화와 역사와 온갖 사연과 애환의 팩트에 대한 상상력을 활짝 열어놓는 <사유의 공간>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해미읍성은 우리를 명상가, 사색자, 몽상가로 만든다.

15:00-16:30 개심사-서삼마애삼존불-보원사지 순례

개심사...'생얼'의 감동
개심사는 비유컨대 성형수술에다가 온갖 짙은 화장의 여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생얼굴에 맨머리 그리고 전통적 의상을 하고 있는 본연의 미인을 만나는 듯한 예상 못할 신선함을 내방자들에게 갖게 해준다.

대웅전만 아니라 심검당, 무량수각, 범종각, 안양루 등 어느 건축물이든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으며 더구나 이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호반이라든가 목장 등으로 인하여 훼손되기는 했을망정 상왕산(象王山)의 인문지리를 깊숙이 음미해볼 수 있어야 한다.
개심사->http://www.gaesimsa.com/

'백제의 미소' 지키려면
'백제의 미소'라는 아이콘이 내포지방 문화관광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고 있다. 이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서산마애삼존불 기행문이 큰 역할을 하였는데 백제시대에 조영된 이 마애불의 미소에 대한 그의 해설이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후일 실토했듯이 예상 못한 부작용이 없지 아니하다. 삼존불의 미소를 만나기 위해 너무도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나머지 저 백제 미소를 제대로 보존 보호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자연휴식년제 실시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접근을 일정 기간 차단하는 문화유산 휴식년제를 시행해서라도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출해본다.

서산마애삼존불만을 따로 떼어놓을 것이 아니라 태안마애삼존불,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자락의 부석사 연기설화(경북 영주에만 부석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산 부석면에도 똑같은 이름과 똑같은 창건설화를 가진 부석사가 있다),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의 사면석불(일명 사방불)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내포지방의 거대 마애삼존불들 속에는 미륵상과 함께 관음상이 아로새겨지기도 한다. 양양 낙산사나 남해 금산 보리암 등의 해수관음과는 다른 점도 있다. 서해 바다를 안마당처럼만 여겨 중국 북위와 동진(아울러 후일의 양나라)을 내왕하고, 그리고 일본을 드나들며 저들의 비조(飛鳥)문화를 일으키게 해주었던 무령왕과 성왕 시대에 이 고장은 프론티어 정신을 발휘해 보이고 있었다. 마애불 속의 미륵상은 후천개벽의 용화세상을 희원하게 하고 관음상은 개척정신 강한 바다사람들을 전송해주고 아울러 귀환을 환영해주려는 듯한 미소를 얼굴에 담뿍 띄고 있다.

한국미술사학자 최완수는 내포지방의 마애불들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는데 당대의 왕즉불(王卽佛) 사상의 미적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곧 태안마애불은 무령왕을 표상한 것이고, 서산마애불의 주존불은 성왕의 초상이라 파악한다.

백제의 미소가 정녕코 성왕의 얼굴모습이라면, 당대인들의 성왕에 대한 흠모 보다는 성왕의 불국토(佛國土) 유토피아니즘이 어떠한 성격으로 전개되고 있었는지 궁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폐사지 보원사의 가람 건축술과 개심사의 질박하고 겸손한 듯하면서도 알차고 당당한 사원 조영을 통해서도 '백제의 미소'를 새삼스럽게 음미해볼 수 있어야 하고….
(현지 사정상 보원사지 답사를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서산마애삼존불->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1,00840000,34

▲ 김억 화백의 목판화 작품 <서산마애삼존불> ⓒ프레시안

▲ 김억 화백의 목판화 작품 <서산 보원사지>ⓒ프레시안


17:00-18:00 간월암, 천수만 방조제, 창리 교차로

간월도 간월암의 낙조(落照) 경관이 과연 어떠하던가. 일락서산(日落西山) 월출동령(月出東 嶺)이 아니라 일락서해 월출동령이다. 저녁 해는 천수만 바다골짜기 속으로 빠뜨려지고 있는데 가야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 너머로 둥두렷이 떠오르는 보름달이 내려 보내는 달빛이 또한 바다골짜기를 어리비추는 정경, 이를 어찌 새겨야 할까.

무학대사가 이런 간월(看月)을 통해 대오득도 했다 하였고 수덕사를 일으켰던 송만공 스님이 다시 간월암에서 득력(得力)을 하였다는 '월인천강-월인천수만(月印千江-月印淺水灣)'의 그 간월 황홀경이 과연 어디로 빠졌는가. 천수만 방조제로 인해 간월도 일대의 경관이 조화와 균형을 잃은 것은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간월암->http://www.ganwolam.net/


간월도 물때표 - 8월 22일(토) / 아홉물(9물)

만조시간 05:07 / 17:23

간조시간 12:03 / 00:16

일출/일몰 05:57/19:17

월출/월몰 (음력 7월 3일, 그믐달)

<간월도 물때표 보기 : http://www.badatime.com/129.html>


기층문화의 지각변동이 엄청나게 일어나 정월의 봄맞이축제인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라든가, 창리 영신 풍어제. 안면도 황도의 붕기풍어제와 같은 마을축제들이 해체되고 토박이 원주민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추방당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우리 시대의 자성록은 어떻게 작성되고 있는 중일까. <나의 국토 나의 산하>에 써놓은 글 한 대목을 여기에 인용한다.

"해와 달과 별과 별똥별도 변하는 듯싶다. 바람과 철새와 썰물⋅밀물의 파도가 빚어내는 창리-간월도 일대의 풍토가 달라진 것은 비유컨대 환경 불량에 따라 국토에 포섭돼 있던 일, 월, 성, 신의 이탈 내지 반란이 일어나기 때문인 듯싶기만 하다.

1979년부터 '서산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는데 태안군 남면 당암리∼서산시 부석면 창리∼간월리∼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잇는 7,704m의 방조제가 리아스 해안을 직선화시킨다. 당암리∼창리 사이를 막아 부남호가 생기고, 간월리∼궁리의 방조제로 간월호가 조성된다. 간월호를 둘러싼 A지구 방조제에 1900만평의 간척지가 생겨나게 되고 부남호를 끼고 있는 B지구에도 1200만평의 '신국토'를 확장시키게 한다.

이로부터 다시 1991년에 이르기까지 간척 매립지는 거대 농경지로 조성된다. 인공적인 지각변동운동으로 얻은 것도 있으나 잃어버린 것이 또한 많은 쪽이다. 바닷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들은 과연 어찌 되는가.

장 콕토의 어투를 흉내 내고 싶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 그리워한다 하고 프랑스인은 읊었지만 내 귀는 간월도 굴 껍질, 황도 붕기 만선 배치기 노래 소리 그리워한다."

19:00-20:30 저녁식사 및 뒤풀이(태안군 원북면 식당에서 오징어샤브요리)
21:00 숙소 도착(원북면 신두리 하늘과바다사이 리조트.

http://www.sky-sea.co.kr/sky_info/sky_info01_01.htm)

8월 23일(일요일)
06:00 기상
06:30-08:00 신두리 해안사구 산책


서해안에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보존된 곳이 태안군 원북면 일대의 해변이고 갯벌이고 그리고 해안사구(砂丘)이다. 주민들의 어투로 하자면 "군부대가 가장 늦게 까지 남아 있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된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이곳 일대에도 난개발의 개발바람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풍경들인데다가 지난 시대에 비해 덜 어지러운 측면도 있는 듯하다.

신두리 해안사구의 보존상태는 아직은 양호한 편이다. 2001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천연보호구역이 되었는데 해변을 따라 약 3.5km의 길이에 너비 500m에서 1.3km 내외의 폭으로 율동감 넘치는 사구가 살아 있다.

해안사구는 해류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바람의 작용을 받아 낮은 구릉 모양으로 쌓여서 만들어진 해안지형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지형조건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발된 형태를 보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두리 해안사구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6,04310000,34

08:30-09:30 아침식사(학암포 동백회수산의 굴해장국 또는 된장찌개)
10:00-11:30 학암포 해안생태계 및 해안 트레킹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학암포사무소는 <학암포 자연관찰로 순례학습>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학암포는 바닷가의 다양한 생태환경을 종합적으로 갈무리해놓고 있다. 국립공원의 설명에 따르면 바다-갯벌-해안사구-곰솔수림지대-사구습지대로 이어지는 해변 산책은 특이한 체험이 되고 해양문화 학습의 첩경이 된다.
태안해안국립공원->http://taean.knps.or.kr/divide.aspx?menu=001&submenu=001
(태안해안국립공원이 펴낸 <학암포 자연관찰로> 팸플릿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12:00-12:30 태안마애삼존불-태을암(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답사

서산마애삼존불과 비교하자면 조형성과 조각술의 디자인이 소박하고 치졸한 편이지만 되레 이와 같은 질박성의 미학을 추궁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조시대의 중국불교미술의 여러 양식들이 서해를 통하여 어떻게 전래되고 있었는가를 역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 마애불은 불상과 보살상을 엉뚱하게 배치하고 있어서 관심을 끄는데 이는 불교미술양식사의 전개과정을 새롭게 이해해보아야 할 단서를 제공한다. 이 마애불상은 태안읍이 해상교통의 최전방 지대였음을 확인해주고 아울러 가장 앞선 해수관음신앙의 조형적인 성격도 지녔던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태안마애삼존불->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1,03070000,34

13:00-14:00 점심식사(서산시 산해별미의 꽃게장&우럭젓국정식)
14:30-16:00 도비도 관광휴양단지-왜목마을-산업단지 순방


도비도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에 딸린 섬. 면적 0.07㎢, 최고점은 45m이다. 원래 섬이었다가 대호방조제 축조로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당진군과 연결되었다. 근해에서는 새우류·조기·민어·갈치·꽃게 등이 많이 잡히고,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바지락·백합·굴·맛조개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최근에 섬과 바다, 갯벌과 호수, 낙조와 낚시, 문화와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되고 있는데 아직은 개발단계이다. 서해가 당진만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 자리 잡은 대난지도와 소난지도의 해상경관이 참으로 웅장 거대한데 이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도비도에 있다.

왜목마을
누워 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해서 '와(臥)목'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왜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풍설이 있는데 서북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지형적 특성 때문에 동해안과 마찬가지의 일출을 맞이할 수 있고 아울러 일몰을 함께 누려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왜목마을 석문산 79m의 정상에 오르면 충남의 장고항 용무치~경기도 화성군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새벽의 해맞이 일출만 아니라 저녁의 달맞이 월출이 어떠한 장관을 연출하는지 만끽할 수 있다. 더구나 왜목마을의 일출은 동해안의 장엄, 화려한 일출과는 달리 소박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태안반도의 최북단이어서 아산만 들머리 일대의 전망대가 되고 있으나 관광문화에 대한 인식을 고급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목마을-> http://www.waemok.org/info.htm

16:00 서울로 출발

국토학교 참가비는 학교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답사코스별 연동제로 합니다. 깊이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8월은 15만원입니다(리조트 숙소 8월 23일까지 성수기 요금 적용).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huschool.com 전화 010-2471-7410 또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국토학교 제5강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2009.8.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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