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시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절과 절에 있는 정원 그리고 신사입니다.
그냥 가는 것보다 좀 더 알고 가면 조금 더 의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1. 우선 중국의 선종이 일본의 건축, 정원,공예, 예능, 다도, 꽃꽃이와 같은 생활문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예로 금각사의 경우도 중국의 선종사원 양식을 도입한 건축법입니다.
2. 절을 보시면 단청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 또한 선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일본인은 전후 좌우의 대칭이 완벽한 기하학적인 미보다는
오히려 뭔가 덜 갖추어지고 거칠고 묘하게 일그러진 데에서 미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세 이후의 일본 미술은 현란한 색채를 꺼리는 무광택의 아름다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도 일본인의 미의식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3. 절의 정원 구조
여행을 다니시다 보면 정원이 참 예쁘게 꾸며져 있는데요
무로마치 중엽 이후 일본의 선종 사원에는 광대한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해서 상징적 수법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양식의 정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가레산스이(고산수)라 합니다.
가레산스이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만으로 강과 바다를 표현하는데,
남북조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와 전국 시대에 걸쳐서 선종 사원을 중심으로 유행합니다.
중국에 가면 정원들이 참 예쁘죠. 졸정원 등
이 중국의 돌 정원이 선종을 통해서 일본에 유입되어, 일본 특유의 양식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교토 료안지의 돌정원이나 대덕사의 다이센인 정원이 대표적이죠.
* 일본 정원의 종류 * 지센(池泉)식 정원, 가레산스이(고산수)식 정원, 로지(露地)정원으로 지센정원은 연못을 파서 그 주위에 감상거리를 배치하는 정원입니다. 예를 들어 舟遊식은 연못 위에 배를 타고 돌면서 연못 주변을 구경할 수잇도록 만든 것이고 회유식은 연못 주위에 징검다리 등 산책로를 만들고 그 산책로를 따라 주변 경관을 즐길 수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한 왕조풍의 정원은 왕족의 귀족들이 시를 읊고 주연을 베푸는 귀족들의 실용적인 사교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4. 일본의 신사
1) 일본의 종교
2003년 일본정부 문화청이 집계한 종교 인구를 보면 신도의 수는 1억6천만 명,
불교 신자는 9천5백만 명,기독교계가 182 만명, 기타의 순으로
전체 인구 수보다 1.6배나 많다.
그 이유는 신도 신자수와 불교 신자수가 중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는 좀 다르지만 지방 중소도시나 농가 가정에서는 불단과 신도의 신을 모신 가미나가 한 집에 마련되어 있다. 반면 기독교가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인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신사에 참배를 해야하는데
이는 우지가미(氏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족집단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첫 신사 참배는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남자아이는 생후 31일째, 여자 아이는 생후 33일째 행한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어릴 때 부터 '마쓰리'라는 종교제의를 통해서 신도의 신과 가까이 하면서 생활합니다.
결혼도 신도식으로 행합니다.(최근 기독교 식으로 결혼식을 올림) 그러나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합니다.
즉 ,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신도의 축복을 받고 죽었을 때는 불교에 의해서 구제를 약속받습니다.
이처럼 일본인에세는 신도와 불교 다 필요합니다.
물론 두 종교는 현세관과 내세관은 정반대입니다.
신도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밝고 아름답지만 죽은 후는 깜깜하고 더럽다고 보고있고
불교는 이 세상은 생,로,병,사와 같은 피할 수없는 괴로움으로 가득찬 세계이며
죽은 후에 가는 서방정토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극락세계로 보고있습니다.
신도가 현세 긍정적이라면, 불교는 현세 부정적이고 내세 긍정적인 종교입니다.
2) 민족종교, 신도
길을 걷다보면 문 앞에 청솔가지를 세워 놓은 것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궁중에서도 계절마다 많은 제사가 열립니다.
신도에서의 제사는 결국 자연신에 대한 제사와 조상신에 대한 제사라 할 수있죠.
현재 신이 늘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 관념화되어 있는 '신사'라는 말도 원래 '신의 숲'이라는 뜻으로
삼림이란 신들의 영이 깃든 신성한 영역으로 사람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지금도 이세신궁의 가미지야마(신로산), 나라의 오마와 신사의 미와야마(삼륜산),
나라의 가스가타이샤(춘일대사)의 마카사야먀 등의 산에는
이곳에 신사를 짓고 신을 모신 신체산(신체산)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런 자연숭배와 더불어 일본 신도에서는 조상 숭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조상숭배야 말로 일본인의 모든 신앙의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사는 물론 불교의 사원과 민간 신앙 모두가 조상 숭배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불교가 일본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신도의 조상 숭배를 대폭적으로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3) 여러 신들의 기능
일본의 종교 법인만 약13만개로 일본의 신들은 각각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가내 평안을 맏는 신, 출세 개운을 담당하는 신, 학업 성취, 교통안전, 상업번창, 풍어기원, 병의 치유 등...
(신사에 들어가면 이런 부적을 많이 팔고 있다)
이중 대표적인 신은 이나리 신사와 하치만 신사, 신메이신사가 있다
(1) 이나라 신사
교토에 총본사인 후시미이나리타이샤('게이샤의 추억'에 나오는 사찰)로
주신인 이나리는 사업(번영)의 신을 모신 사원으로 인기가 많다. (원래는 오곡 풍요를 담당했던 농업 신이었음)
전국에 분포되어 잇는 이나리 신사는 이 총본사로 부터 신을 모셔다가 신사를 지은 것이다. 전국에 3만개 정도 된다.
(2) 하치만 신사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 우사 신궁을 총본사로 둠.
이 신사의 제신은 오진 천황과 진구 왕후로
진구왕후는 신라 정벌에 성공하고 개선했다고 기록되어 잇는 여인으로 14대 오진 천왕의 어머니이다.
그래서 하치만 신은 전쟁의 신으로 메이지 이후 전쟁 때 마다 출병하는 병사의 무운 장구를 빌고 국가의 안녕을 빌던 곳이다.
고대 우사 지방은 銅이 많이 생산되어 광산과 철공업의 수호신이 되기도 했다. 전국에 2만 5천개 정도된다.
(3)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유행신인 천신신앙
천신을 모시고 잇는 궁이 덴만 궁으로 전국에 1만개가 잇는데, 이 신은 학문과 문화를 담당하는 신이다.
대학 입시가 어려워지면서 수험생에게 인기를 모으는 곳이다.
교토의 덴만궁, 오사카의 덴만궁
(4) 역사적인 인물을 모시는 사원
메이지 천왕을 모시는 사원 -> 메이지 신궁
간무천왕을 모시는 사원 -> 헤이안 신궁
도요쿠니 신사
5. 간추린 일본 역사
기원전1만년전 구석기시대
->토기를 사용하게된 죠몬시대(기원전1만년~기원전300년경)
->금속기사용과 정착된 농경생활의 야요이시대(기원전300~300년경)
->고분이 만들어지고 정치적 통일이 시작된 고분시대(300년경~710년경)
위에까지를 일본의 선사시대로 봅니다.
하지만 고분시대는 역사시대로의 변환기이며 원사시대라고도 합니다.
원사시대
야요이시대말기(3세기 중반)->아스카시대(7세기말)
아스카시대를 원사시대에서 본격적인 역사시대로의 최종변환기로 봅니다.
이시대는 야마토 아스카지방의 여황제 스이코천황조정(593~628)으로 시작되며 같은해 쇼토쿠태자(574~622)가 섭정을 합니다. 쇼토쿠태자가 17조로 명문화된 중앙집권국가 체제를 정비합니다.
조선과 중국에서 많은것을 배워간 시점이죠 역사를 한문체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고대
나라시대(710~794)->헤이안시대(794~1185)
중국의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모델로 헤이죠코라는 수도가 만들어집니다.
나라시대는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최초의 연대기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편찬됩니다.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사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점이죠.
후에 귀족계급과 승려계급의 갈등으로
784년 간무천황의 제위때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현재의 쿄토에 헤이안쿄라는 수도를 만듭니다.
19세기에 수도를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기기전까지 일본의 수도가 됩니다.
중세
가마쿠라시대(가마쿠라막부)(1185~1333)->무로마치시대(무로마치막부)(1333~1573)
우리나라의 무인시대와 비슷한때죠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무인들이 막부를 세워 통치하는 시점입니다.
최초400년간의 무사지배를 일본봉건시대라고도 합니다.
가마쿠라막부는 1333년에 고다이고천황의 연합세력으로 멸망되고 고다이고 천황의 직접통치가 잠시이루어지나 그를 도와주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에의해 정권을 박탈당합니다.
다카우지가 허수아비천황을 내세우고 무로마치막부를 건설하죠.
하지만 오닌의 난(1467~1477)을 기점으로 지배체계가 흔들리며 전란의 시대로 돌입합니다.
이 시대가 바로 전국시대입니다(1467~1573).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등등이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근세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68~1600)->에도시대(1600~1868)
16세기 중반이후 천하재통일의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주도권은 잡은건 강력한 맹주였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였죠.
오다와 히데요시가 통치했던 시기를 아즈치모모야마시대로 일컬으며 짦지만 화려한 시대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때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오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죽고 천하통일을 한 히데요시가 내란을 정비하기위해 조선을 침략하죠
하지만 잇달은 실패로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에게 세키가하라전투를 기점으로 권력을 완벽히 빼앗기고 맙니다.
도쿠가와는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설치하고 에도시대를 엽니다.
근대
메이지시대(1868~1912)->다이쇼시대(1912~1926)->쇼와시대(1926~1989)
도쿠가와시대는 바깥과 차단된제 평화롭게 200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세계의 열강들이 아시아수역에 출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통상강요로 쇄국정책은 막을 내립니다.
1853년 페리의 내항이래 이루어진 개항은 유력한 번(지방세력)들로하여금 조정을 이용해 막부를 무너뜨리게 하였고
결국 1868년 메이지유신에의해 에도막부가 막을 내립니다.
이때부터 부국강병의 슬로건으로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헌법채택및 의회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후 일본은 1895년에 중국전쟁 승리, 1905년 러시아전쟁에 승리 ,1910년 조선병합으로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세력으로 다시태어납니다.
다이쇼시대에 세계의 열강중의 하나로 인정받게되며 다이쇼데모크라시라는 정당내각으로 정치또한 발전합니다.
쇼와시대에는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면서
국제연맹에서 이탈 초국가 주의와 국내의 강압정치에 의해
일본은 미국과 그 연합국들과 진주만 폭격을 시발점으로 전쟁에 돌입합니다.
현대-일본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항복하게된 일본은 연합군에 의해 점령 비무장화와 천황의 인간 선언 등등 맞게되죠.
하지만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미국의 보급선역활을 맡으며
그것을 발판으로 1960~1970년대에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어내며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적인 인지를 회복합니다.
아울러 2차대전패전후 어떠한 군대밑 자위세력을 갖지않겠다는 선언을 깨고
미국의 필요에 의해 1954년 가칭 치안세력이라는 자위대를 결성합니다.
1990년대에 들어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지금까지 장기침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고있습니다.
2003년 6월 13일 유사법제가 국회를 통과하며 패전 58년 만에 `전시'에 대비한 국가 체제 정비를 목적으로 한 법제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효력을 갖게 돼며
전수방위를 원칙으로 해온 일본의 안보 방위 정책은 일대 전환점을 맞습니다.
즉 해외 파병등이 가능해졌습니다.
<위 자료는 오대에서 출판한 교양으로 읽는 일본 사회와 문화와 네이버 지식 검색을 참고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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