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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인터넷 속의 세계사

패왕별희- 항우와 우희의 가슴 시린 애틋한 사랑이야기

by 시경아빠 201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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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choimiran/8214810

 

 

 

 

한국에 이준기의 <왕의 남자>가 있다면 중국에는 장국영(張國榮)의 <패왕별희>(覇王別姬)가 있다. 칸 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은 이 작품은 빛나는 혜성처럼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간 배우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영화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패왕별희’는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와 부인 우희(虞姬)의 애달픈 생사이별을 노래한 것이다.

 

빼어난 미모로 인해 역사상 우미인(虞美人)이라고도 불리는 우희는 항우의 부인으로 절개가 굳은 강직한 여인이었다. ‘우’가 그의 이름인지 성씨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가 우지(虞地, 오늘의 江蘇省吳縣)태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뿐 정확한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희’(姬)는 중국 고대에 아름다운 여자들을 일컫던 말이다.

 

검무에 능했던 우미인

  우희는 외모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에도 능했다고 한다. 특히 검무(劍舞, 즉 칼춤)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우희는 항우의 용감무쌍과 영웅기질을 숭배한 나머지 천리 길을 마다않고 항우를 찾아와 그와 함께 하기를 청했다. 항우 또한 첫눈에 우희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 후, 우희는 험한 전방에서 항우와 동거동락하며 항우를 보살펴 주고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항우 또한 그런 우희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며 애인이자 지기(知己)로 삼았다.

  당시 항우와 유방의 대결에서 처음에는 항우가 우세였지만 점차 장량(張良), 한신(韓信) 등 뛰어난 참모들을 가진 유방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지게 된다. 기원전 202년, 항우와 유방은 ‘초하한계’(楚河漢界)의 맹약을 달성하기로 했다.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철수하려는 찰나, 유방이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공격해 왔다. 유방에게 쫓긴 항우는 해하(垓下)에 이르러 한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하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항우는 끝까지 대항하지만 이윽고 사면을 둘러싼 한나라 군사 쪽으로부터 그의 귀에 슬픈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사면초가 속에서 자결하는 우희

  이것이 바로 유명한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이는 항우를 이기려는 장량의 계책이었지만 항우는 초나라 패잔병들의 노래로 알고 대세가 이미 기울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시를 읊조린다. 후세사람들은 그것을 해하가(垓下歌)라고 부른다.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들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지만

時不利兮不逝(시불리혜추불서) 시세가 불리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네.

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우희여, 우희, 그대 또한 어찌할 거냐?

여기서 ‘추’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말 이름이고 ‘혜(兮)’는 고대 중국어에서 뜻을 강조하는 조동사이다.

 

항우는 운명의 마지막 시간에 항상 곁을 지켜준 우희를 걱정한다. 우희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희는 항우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항왕, 그댈 위해 검무 한 곡 춰 드리고 싶나이다.”

항우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리하라고 검을 내주었다. 우희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우더니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늘하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드러움과 검의 강인함이 한데 어울려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우희는 마치 행복했던 옛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항우도 잠시 현실을 잊고 마음의 고요를 찾았다.

춤이 고조에 달할 무렵, 우희는 갑자기 검을 들어 자기 목을 찔렀다. 눈부시게 희디흰 목에서 빨간 피가 흘러 나왔다. 그러면서 항우의 품에 쓰러졌다.

항우의 품에서 우희는 화답가(和答歌)를 불렀다.

 

漢兵已略地(한병이략지)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침범하여
四方楚歌聲(사방초가성) 사방에 초나라 노래소리가 울리네.

大王意氣盡(대왕의기진) 대왕의 의기가 이미 다 했는데
賤妾何聊生(천첩하료생) 천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리까.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우희는 항우가 포위를 뚫는데 자기가 부담이 된다고 여겼고, 이별보다는 죽음으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원한 것이다.

 

무덤 위 꽃이 되어 후세에 길이 남다  

항우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사력을 다하여 포위를 뚫고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8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오강(烏江)까지 와서 더는 전진하지 못한다. 고향 강동(江東)에서 함께 길을 떠난 8천 명의 수하를 전부 잃고 혼자 살아 돌아가 고향사람들을 만날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우희가 목숨을 끊은 그 검으로 31살 젊은 나이에 자결한다.

훗날, 우희의 무덤 위에는 예쁜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우미인의 넋이 서린 꽃이라 여겨 ‘우미인초’라고 부르면서 항우와 우희의 안타까운 이별을 그렸다고 한다.

 ‘우혜우혜내약하’와 ‘천첩하료생’, 2천 년 전에 펼쳐진 슬프고 가슴을 울리는 비련, 하기에 오늘도 많은 후세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에 애석해하고 또 감동하고 있다. /상해경제 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