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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인터넷 속의 세계사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앙숙 국가로 꼽힌다.

by 시경아빠 201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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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앙숙 국가로 꼽힌다.

양국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 간 라이벌 의식은 점잖은 축이다.

 

힌두교를 믿고 힌두어를 쓰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고 우르두어를 쓰는 파키스탄은 역사 이래 평화로운 시절이 드물었다.

 

그러다가 영국의 식민지 정책으로 두 나라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졌다.

간디를 비롯한 힌두교 엘리트들이 국민회의를 결성해 독립을 추진하자 영국은 이슬람연맹을 물밑으로 지원했다.

 인도의 분열을 노린 것이다.

 

결국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분리해 영국 자치령이 됐다가 56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독립 후에도 두 나라는 지난 60여 년간 국경 분쟁과 방글라데시 독립, 핵무기 개발 등으로 사사건건 부딪혔다.

 

독립 당시 이슬람이 주류였지만 인도연방에 합류한 카슈미르 지방은 아직까지도 국경 분쟁의 도화선으로 남아 있다.

 

양국은 카슈미르를 두고 48년과 65년 두 차례 전면전을 벌였다.

 

71년에는 방글라데시 독립을 두고 또 싸웠다.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분리독립 운동으로 내전이 벌어지자 인도가 동파키스탄을 지원해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인 것.

결국 파키스탄이 패해 방글라데시가 독립했고, 인도에 대한 파키스탄 측 감정은 분노에서 증오로 바뀌었다.

 

두 나라는 일촉즉발의 핵 대결로 세계를 긴장시킨 적도 있다.

 인도가 98년 5월 파키스탄 국경 근처에서 다섯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자 파키스탄은 보름 뒤 여섯 차례에 걸친 지하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70년대 인도가 먼저 핵 개발에 성공하자 파키스탄은 100억달러가 넘는 예산을 쏟아 부어 단기간에 핵무기를 만들었다.

 

2008년에는 뭄바이 폭탄 테러로 양국 관계가 다시 풍전등화 상태로 치달았다.

텔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당시 166여 명이 희생됐는데,

인도 정부는 테러 배후로 이슬람 무장단체와 파키스탄 정보부를 지목했다.

 

최근 들어 양국은 잇달아 유화 제스처를 취하며 해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11월 2일 인도에 최혜국 대우(MFN) 지위를 부여하고 무역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오랜 기간 남아시아에 긴장을 조성한 두 핵 보유국 간 관계가 호전되는 신호"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