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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8.인도네시아18일(2017 발리)

(11일차) 8월4일 보로부두르 + merapi 산 + 쁘롬빠난사원(인도네시아)

by 시경아빠 2017.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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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07:00) ->렌터카 대여 +  보로부두르 사원(10:00~12) +  merapi 산 머라피 산 짚차투어(업체: JEEP Merapi 86 MUTC/ 1시간30분 탑승 차당 35만, 2시간30분 탑승은 45만) (12:00~14:00)
+ 점심+  쁘롬빠난사원 투어 (no 일몰,14:00~16:00, 자전거 렌탈비 12000rp)  -> 폭립 레스토랑&젤라토&빵-> 숙소




숙소에서 아침식사

쥔장(?)과 스태프가 직접 만들어 준 콘스프인데 향이 넘 강해 먹다 남김

대신 과일 한 접시 나와서 과일만 먹어도 아침 식사는 훌륭하다.



족자르타에서 프람바난 ( 1시간 12분)



렌트카 차량으로 보도루브로 사원으로 이동해서

한 여행사에서 내것부터 입장권  티켓팅




시경이 표는 현장에서 구입 ...





세계 7개 불가사의 건축물, 보로부드르 사원에 도착

입장료가 세계 최대 ??? 가 아닐런지

타지마할 보다 더 비싼걸로 기억




계단을 따라 해탈의 경지로







기념 사진





중앙계단을 이용




층층마다 벽화가 나름 잘 보존...  앙코르 사원보다 3세기 앞선 것 ... 유럽의 교회나 성당보다도 앞선 ...

 

엄청난 크기의 돌들을 가져와  일일이 장인의 손으로 조각하였다.

돌의 출처가  ... 머파리 화산이라고


왜 이  거대한 신전(?)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어쨋든 이 사원이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사원인데

역사가 궁금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봄




인도네시아에서 현재 불교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한 때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막강한 교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만 과거 시대의 역사일 뿐, 현대 역사와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불교는 다른 5개 종교와 더불어서 인도네시아의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받고는 있다.

 이슬람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힌두교 유교와 더불어서 불교는 인도네시아에서 그 존재를 서서히 나타내고 있다.

사실, 불교는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 다음으로 두 번째로 오래된 종교이다.

물론 이 두 종교가 인도에서 오기 전에는 자연의 힘을 숭배하는 원시종교인 정령주의가 지배했겠지만,

인도로부터 힌두교가 전래되면서 종교지형은 달라졌다.

힌두교가 인도네시아 섬에 들어 온 것은 기원후 2세기 무렵이다.

 자바 섬과 보르네오 섬의 왕국은 힌두교가 중심이었다.

 불교가 인도네시아에 들어온 것은 힌두교가 들어오고 나서 몇 세기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의 불교의 전성기는 스리비자야(Srivijaya 650–1377)왕조 때이다.

인도네시아뿐만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일대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스리비자야 왕국에서의 불교는 7세기에서 14세기 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려 700백년간 불교가 전성을 누린 것은 특기할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출처: 해동세계 불교원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  시계 방향으로 관람해서 오른다고 ...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길이 없고 그저 돌덩이에 불과 ...

또 안다고 해도 오래 길억될리고 암튼 수많은 돌을 디테일하게 조각하고

겅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탑(?)을 쌓은 것이 그저 신기하고  불가사의 함.


과거나 현재나 손 재주있는 장인들은 늘  ... 존재하지


날씨가 덥긴하지만 못 다닐 정도의 날씨가 아니여서 다행인 날


















여기 저기 추억ㅇㄹ 남긴다.


회랑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아오르다 보면 정상의 원형탑에 도착

원형 탑들이 한두개가 아니고 똑타은 모양의 탑들이 수십개가 원 모양으로 둘러쌓여 있다.

내부에는 부처님이 가부좌상으로 앉아잇고 








정글 속의 보로부드로 사원

외부 침입자 (?) 에의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밀림속에 묻여있었을 것인데







탑 모양이 거대 종을 연상시킨다.





내부 부처님 상이  많이 훼손되어있다.

종교적 이유일까?

 부처님 엄지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한다.




날시는  좋다.




















보르부드르 사원 구경 후  머라피 화산으로




우리가 도착한  업체는


mlcc 투어  중간 2시간 코스 선택





























머라피 짚차 투어 후 프람바난 사원으로



보로부드르에서 왕궁 (1시간30분)




장례식 풍경



늦은 점심 식사






프람바난 사원에 도착











비슈누 신전



시바신전



브라마 신전








라마야나 공연은 생략



투어를 마치고 이곳Jl. Prawirotaman street 에 내려서 저녁 식사

이곳에 음식점과 여행사 숙소가 즐비한 여행자 거리인듯 ..특히 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유명한 젤라토 아이스크림 가게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인듯

잠시 웨이팅 해서



아이스크림 먹고 ...   걷다가 ,,발견한 유기농 빵집 ...

인도네시아 빵 맛이 궁금한데 .... 울 나라에서 빠리 거시기보다 훨씬더 담백하고 부드러웠음.... 


유기농인데 가격도 저렴 ... 저

녁 대용으로 제법샀는데도 얼마 계산안함.

빵 추천 .... Viavia Bakery





울 아들 좋아하는 폭립으로 저녁 식사 하고 입구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지 분들과 인증샷





여행자 거리답게 재즈바들이 즐비









데일리 투어 =>



Borobudur & Prambanan (No Sunrise)

Leave:05.00 am
Price:Rp. 100.000/person(No breakfast)
Include:driver and gasoline
Exclude:Entrance fees, guide, meals, and donations
Entrance Fee Borobudur = 25 USD / Person
Entrance Fee Prambanan = 25 USD/ Person
Details:The driver will pick you up at 04:30-05:00am, and drive you directly to Borobudur temple. If you take the breakfast, it will be served in a local restaurant in Borobudur temple.
The temple will be opened at 6:00am, so when you arrive there will be little bit quiet than during the day.
With 2 hours duration, we let you to explore the whole part of Borobudur Temple.
Borobudur temple is the world’s biggest Budhist temple which was built in the 8th century by King Samaratungga. Holy atmosphere is warm felt in every story curved on the wall of this great magical building.
Borobudur temple stands on the perfect land and surrounded by marvelous hills around. The “sleeping Budha” Menoreh hill obviously can be seen from the highest terrace of Borobudur, relaxing view is offered.
After exploring Borobudur temple, we will drive you to Prambanan temple and takes 1 approximately 1 hour and half. You will have 2 hours to explore the whole part of the temple.
Prambanan temple is the tallest Hindust temple in Indonesia with 3 main temples. Prambanan offers you a romantic Ramayana story curved on the wall.
In the end, our driver will drive you back to your hotel





보로부두르 불교사원(Borobudur)

 보로부드르 불교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이에 속하며 너무나 유명한 최대의 불교 유적지이다.


 인도양을 건너 전래된 불교는 인도네시아에서 모국인 인도를 능가할 정도의 문화를 꽃피웠으며 역사적인 가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족자 시내에서 42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야자수가 펼쳐진 게도우 분지에 세계 최대 불교 유적으로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충독 라플즈에 의해 밀림 속에서 발견되어 10세기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그 이후는 주권을 빼앗은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관리되어 1907년부터 4년간 복구공사을 하였으며 1973년 아시아의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주도로 대규모의 보존, 보수작업이 행해져 배수로 등 새로운 토목기술도 추가해서 건축된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Indonesia - Borobudur-03.jpg

 1985년 1월 21일 새벽에 보로부두르 사원 폭파사건이 있었는데 이슬람 급진파 소속 각료 한 명과 학생들이 잡혀 국가 전복죄로 기소되었으나 진상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행인 것은 스뚜빠(보로부두르 정상에 있는 종처럼 생긴 구멍이 뚫린 것) 9기가 파괴되었을 뿐 큰 피해를 입지 않아 4개월의 복구공사로 완전 복구되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여전히 많은 의혹을 가지게 하는데 이름의 유래부터 불확실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 언어)로 '보로=승방' '부두르=높게 쌓아 올린 곳'이란 뜻에서 '언덕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건립된 시기는 8세기 중반 중부 자바에 번영한 샤일렌드라 왕조라고 생각되는데 그 연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공사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보로부두르 사원이 천년동안 역사에서 소각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었는데 무슨 원인으로 이 정도의 건축물이 1814년 흙 속에서 발굴되기까지 사람들이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 사원의 건축에 쓰여진 100만개의 안산암의 채석 장소도 머라삐 산의 돌이라는 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없고 왕조의 쇠퇴, 전염병의 만연, 머라삐 산의 분화에 의한 매몰설 등이 있으며 보로부두르 사원의 토대에 사용된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토사의 토질이 동일한 점에서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방형이다. 안산암을 잘라낸 100만 개 이상의 돌벽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 높이 42m까지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라갔다.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탑이다.


 흔히들 앙코르와트를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여러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비해 보로부드르 사원은 피라미드처럼 단 하나의 대 석조물로 만들어진 석탑인 것이다.

 공간없이 쌓아올린 석조물의 무게는 무려 350만 톤에 달해 지반이 점점 침하하고 있어서 원래 42m였던 사원의 높이는 현재 35.3m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 350만 톤에 이르는 돌덩어리를 어디에서 운반하여 왔을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원을 중심으로 30km 이내에는 같은 재질의 돌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이다.


 사원을 이루는 회랑 벽에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새겨져 있고 부조는 모두 2,500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만 명에 달하며는 '거대한 조각의 숲'을 이루고 있다. 회랑의 부조 조각들은 불교 미술의 최고의 수준과 양을 자랑한다. 

                        

 기단에는 종모양으로 된 총 73개의 스투파들이 있는데, 스투파 속에 있는 불상의 약지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기를 쓰며 팔을 뻗지만, 실제로 닿기는 매우 어렵다.


 거대한 사원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그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드러냈지만 과거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건축하였는지, 그리고 어째서 1천년 동안이나 밀림에 파묻혀 있었는지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형 구조로 일체를 이루고 있는데, 최하부의 기단은 한 변이 약 120m에 달하고 높이는 31.5m(복원 전 원형은 42m)에 달한다.

 모두 10층으로 되어 있으며 등신대 크기의 불상 504개와 약 3.5m 높이의 불탑(stupa) 72개가 층별로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에 소요된 돌덩이만 해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보로부두르 사원의 경이로움은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구조물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고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그 구조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방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진 1층에서 6층까지는 외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고, 대신 양쪽 벽에 쉽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부조(浮彫, relief)를 새겨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그 부조들로 이끈다. 그것을 모두 순서대로 다 보려면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10회를 돌면서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회랑이 요철(凹凸)모양으로 되어 있기에 총 길이는  무려 5km에 달한다고 한다.


 회랑은 제1∼4회랑으로 구성되고, 제4회랑에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스투파(종모양의 불탑)들이 서 있는 기단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7층에 올라서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산과 대지가 펼쳐지게 된다. 이 희열감은 바로 1층에서 6층까지 길고 긴 배움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확 트인 둥근 단으로 구성된 7층에서 10층까지는 이제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보로부두르 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이라기보다는 사원을 오르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서 지어졌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국 태생의 인류학자 존 미크식(John Miksic)도 그의 책 <보로부두르의 미스터리(The Mysteries of Borobudur)>에서 보로부두르를 오르는 육체적 행위는 동시에 '세속(世俗)'에서 '법열(法悅)'로 어지는 정신적 고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지 추측일 뿐이며, 보로부두르를 언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는 8세기 중엽에 들어선 불교 왕조 샤일렌드라(Sailendra) 시대에 약 70여년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9세기 중엽에 들어선 힌두 왕조 산자야(Sanjaya) 시대에 보로부두르 사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1006년에 폭발한 인근 메라피 화산(Mt. Merapi)의 화산재에 묻힘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숨겼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어 확실한 것은 없다. 또 사원의 기초에 쓰인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흙의 성분이 같다는 점을 들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보로부드르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왕의 묘, 왕조의 사당, 승방, 우주를 상징하는 구조물 등 여러 가지 의견이 구구하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그러다가 약 천 년 후인 181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발굴된 많은 불상들의 머리를 절단하여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주는 등 오히려 훼손을 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보로부두르 사원에 있는 불상들의 약 35%는 두상이 없다.

                       

 1천년 전 밀림을 헤치며 대 토목 공사를 벌였던 샤일렌 왕조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자취를 찾는 이방인들만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사원의 원래 주인들은 불가사의와 신비 속으로 사라졌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긴 세월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인내는 그 보상을 받아 오늘날 보로부드르 사원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남아 있게 되었다.


프람바난(Prambanan) 사원

 이 거대한 시바의 사원은 족 자카르타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역적으로는 'Lore Jonggrang'사원 또는 '날씬한 처녀의 사원' 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힌두사원으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표방된다.

 족 자카르타의 동쪽 17km 되는 곳에 있는 이 절은 9세기 중반에 바리퉁 마하 삼부 왕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유명한 라마야나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밀폐된 극장과 함께 새로운 노천극장은 달밤에 라마야나 발레를 공연한다. 극장에는 1011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으며 일년내내 공연이 있다.

 Prambanan의 사원단지에는 8개의 사원이 있는데 그중 3개는 시바, 비스누와 브라마를 모신다. 주사원인 시바의 사원은 높이가 47m이며, 시바의 요정인 두르가(Durga)의 동상이 따로 지어져 있다. 그것은 자바에서 가장 우아하고 높이 평가할 만한 신상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100여종의 난초공원이 있다. 또한 새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새공원도 있다. 매력적인 곳의 하나로 입체극장에서 나라의 경치와 사람들에 대한 '인도네시아 인다'를 IMAX 필름으로 정규적으로 보여준다.

 

프람바난 사원의 전설

 옛날에 반둥(Bandung)이라고 불 리는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적국의 아름다운 라라 종그랑(Lara Jonggrang '날씬한 처녀'라는 뜻) 공주에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공주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공주는 그의 마력을 두려워해 그의 청혼을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하룻밤 만에 천 개의 신전을 쌓는다면 결혼하겠노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반둥은 그의 마력으로 많은 악마들을 불러들여 순식간에 신전들을 쌓아올렸다. 새벽녘에 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공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침이 밝아오면 신호를 보낼테니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 오자 1000개의 신전을 모두 세운 악마들은 일을 멈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주의 신호에 따라 신전 하나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천 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9개의 사원이 세워지게 되고, 뒤늦게 공주의 농간에 의해 자신의 꿈이 무너진 것을 안 반둥은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석상을 일천 번째 신전으로 삼았다.

 이곳 사람들은 그 일천 개의 신전이 세워진 곳이 바로 프람바난 사원이며 사원의 중앙에 있는 시바 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 상이 바로 라라 종그랑의 석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프람바난 사원을 라라 종그랑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믄듯 사원(Mendut)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를 타고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가다보면 보로부두르 사원 도착하기 3km 전에 오른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도 보이는 사원인데 화려하고 장엄한 보로부두르 사원과 대조적으로 삼존상 등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녀 방문하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넓은 경내 한가운데 서 있는 불교 사원으로 보로부두루 사원의 반원구형에 비하면 직선을 주조로 한 네모에 우선 시선이 갈 것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기단 부분은 대지에 묵직하게 뿌리를 내린 듯이 자리잡고 있으며 사원의 서남쪽에 만들어진 조각이 있는 난간을 따라 14단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입구 안에는 주위의 밝음과는 대조적인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믄듯사원의 매력은 불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존상에 도취된 마음을 보다 살찌게 해주는  것이 기단과 법당의 안팎 벽면에 새겨진 부조며 기단에는 보로부두르에서도 볼 수 있는 우화가 수없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