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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충청도

청남대,아픈 추억이야기

by 시경아빠 2026. 7. 11.


### 대청호의 푸른 물결 아래 묻어둔 20세기의 서글픈 자화상




1984년 6월?,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버스 커튼이 굳게 닫힌 미니버스에 실려 내려갔다.  철저한 보안과 비밀 속에 가려진 '청남대'라는 이름의 폐쇄적인 공간. 그곳은 내게 조국을 지키는 숭고한 장소가 아니라,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자 공포의 전장이었다.


본관 정문

반송

본관



인왕산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굶주림을 뒤로하고 도착한 청남대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헬멧을 쓰고 머리를 박은 채 버티던 시간들, 목이 뻣뻣해져 감각마저 사라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짓밟히는 경험을 했다.


메타세쿼이아

양어장,음악분수

기념관


M16 총구로 가슴을 내리찍히고, 쏟아지는 폭력과 모멸감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타인을 향한 지독한 증오를 배웠다.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은 굶주림보다 더 지독했다. 새벽 2시 반, 고참을 깨우러 갔다가 일어나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나는 다시 보초를 섰다.


봉황탑

내일은 또 어떤 몽둥이와 폭언이 나를 기다릴까. 소대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늘 사형장으로 향하는 죄수의 발걸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지옥 같은 일상에도 숨구멍은 있었다. 아침 집합 후 대청댐 아스팔트를 달리는 시간. 나는 발에 구름을 달고 달렸다.13공수가 보초 서는 곳까지, 고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나는 살기 위해 달렸다. 1등으로 들어오는 것만이 내 유일한 도피처였고, 내 생존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골프장


그러다 찾아온 운명의 골프장 잔디밭.
거구의 병장 고참과 씨름을 하던 날, 내 어깨는 '뚝'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팔이 부러졌다는 의무실의 진단. 고통 속에서도 나는 미칠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늘막



대전으로 향하는 25인승 버스 안에서, 대청호의 아름다운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것은 억울함의 눈물이자, 지옥 같은 청남대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병원에서 들은 "2달 치료"라는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선고였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이름조차 말할 수 없던 곳, 그러나 내 청춘의 가장 깊은 상처가 아로새겨진 곳.



내일, 나는 다시 그 대청호 앞에 선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폭력의 주체들도, 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선임들도, 이제는 어디선가 주름진 얼굴의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곳의 잔디밭과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20세기의 어린 나에게 말해주려 한다.

**"그때 정말 고생 많았다. 그 폭력과 야만 속에서도 네가 끝내 살아남아 주어서, 그 질주를 멈추지 않아 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 시절 내 눈물에 젖었던 대청호의 물빛은, 내일 내가 마주할 40년 만의 재회에서 부디 평온한 파도가 되어 나를 안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