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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충청도

청주 원도심 투어

by 시경아빠 2026. 7. 12.

청남대에서 청주 원도심까지, 무더위 속 즐거웠던 청주 여행


청남대 관람을 마친 뒤 버스는 청주 원도심으로 이동했다. 철당간 앞에서 하차한 후 오후 1시 30분까지 점심을 먹고 다시 집결하는 일정이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우산을 펼쳐 들고 미리 네이버에서 찾아둔 짱구네 본점으로 향했다. 돈까스와 우동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사실은 백반을 먹고 싶었지만 혼자 여행하다 보니 어제 김천에서는 결국 실패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맛집을 찾아갔다.

거리는 한산해서 혹시 장사가 안 되는 곳인가 싶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청주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기 순번은 세 번째였지만 테이블도 많고 회전율도 빨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주변 손님들을 보니 대부분 돈까스와 물돈까스를 주문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는 물돈까스를 주문했다.

한입 먹어보니 왜 인기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냉면, 그리고 무항생제 1등급 등심으로 만든 바삭한 돈까스가 함께 나왔다. 육쌈냉면처럼 냉면과 돈까스를 같이 먹는 재미가 있었고, 한 끼 식사로 든든하게 영양도 채울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식사 후에는 메가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시 쉬려고 했지만 집결 시간이 10여 분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매장에서 몇 모금 마신 뒤 급하게 포장해서 이동했다.


가는 길에는 다이소에 들러 소형 보조배터리도 하나 구입했다. 어젯밤 충전기에 연결해 두고 아침에 깜빡하고 그냥 나오는 바람에 하루 종일 배터리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오후 1시 30분, 청주 철당간 트래블라운지에서 설문조사를 마치고 핸드크림을 선물로 받은 뒤 해설사와 함께 청주 원도심 투어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철당간이다. 철당간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국보로,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깃발을 달던 당간을 철로 만든 매우 희귀한 문화재이다. 천 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청주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지금도 당당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1. 청주 철당간의 역사
​건립: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세워졌습니다. 용두사(龍頭寺)라는 절 앞에 세워졌던 당간으로, 제작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입니다.

​의미: '당간'은 사찰의 행사 때 깃발(당)을 달아두는 기둥을 말합니다.

​설화(주성설): 예로부터 청주 지형이 배(舟)의 형상이라 하여, 홍수를 막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이곳에 돛대 역할을 하는 철당간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 현재 남은 기둥(철통) 개수
​원래: 기록상으로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세월이 흐르며 일부가 유실되어 현재는 20개의 철통만이 남아 있습니다.

​3. '10층에 열십자'와 내부 시멘트의 사연
​10층 열십자: 철당간의 철통들 중 특정 지점에 '열십자(十)' 모양이 있는 것은 당간을 세우거나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구조적 결합 방식이나 표식으로 이해됩니다.

철당간 자체는 층층이 철통을 쌓아 올린 형태인데, 이 결합부나 보강재 부분이 외부에서 볼 때 '열십자'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고려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국보이며, 원래 30단이었던 철통은 현재 20단이 남아 있습니다. 내부 시멘트는 과거의 안전 보수 과정에서 채워진 것입니다.

내부 시멘트 충전의 배경
​원래 구조: 철당간은 겉면의 철통(철판을 둥글게 말아 만든 통)들만으로는 스스로 서 있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내부에는 이를 지탱하기 위한 **심재(목재 기둥)**가 들어 있었습니다.

​부식과 위기: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의 목재 기둥이 썩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습니다. 그 결과, 철당간이 중심을 잃고 기울어지거나 붕괴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보수: 일제강점기 시절을 포함한 과거 보수 작업 당시, 썩어버린 목재 기둥을 대신하여 철당간이 쓰러지지 않도록 내부를 시멘트로 가득 채워 고정하는 방식이 선택되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내부를 보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적 관점의 평가
​당시에는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응급 처치'였지만, 현재 문화재 보존 과학의 관점에서는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원형 훼손: 시멘트가 내부를 꽉 채우고 있어, 고려 시대의 제작 기법이나 내부 구조를 정밀하게 조사하거나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재질의 차이: 시멘트는 시간이 지나면 수축하거나 팽창하며, 철재와는 화학적 성질이 달라 장기적으로는 철통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습니다.

​이처럼 철당간은 단순한 유물을 넘어, 과거의 보수 방식이 문화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보존 과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니, 다음에 철당간을 직접 보실 때 그 묵직한 기둥이 품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조금 더 깊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중앙공원으로 이동했다.
중앙공원에서는 압각수, 병마절도사 영문, 망선루, 척화비를 차례로 둘러봤다.


압각수
청주의 중심가인 성안길 중앙공원에 있는 수령 1000여년의 은행나무이다.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았다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불린다.

중앙공원 일대는 고려시대 이후 관아가 있던 곳으로 압각수 외에도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압각수와 관련해서『고려사(高麗史)』,『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택리지(擇里志)』등 고문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와 그 일당이 역성혁명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 ‘이초의 옥사’란 큰 사건이 있었다.
윤이, 이초 두 사람이 공양왕 2년에 명나라 세력을 빌어 이성계 일파를 타도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건이었다.

공양왕이 이성계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장차 명나라를 치려 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색, 조민수를 우현옥, 정지 등을 유배하였다.

이때이색, 이림, 정지, 이숭인, 권근 등이 청주옥에 갇혔고 때마침 큰 폭우가 내려 홍수가 났다고 한다.
옥리와 죄수들은 근처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그 나무가 현재의 중앙공원 내에 있는 압각수라고 전해진다.

병마절도사 영문은 조선시대 충청병영의 정문으로, 충청도의 군사를 지휘하던 병마절도사가 업무를 보던 관아의 출입문이다. 당시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망선루 청주시 성안길의 중앙공원 안에 있는 관아건축물 중 하나이다.
고려시대 청주관청의 하나로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인 객관 동쪽에 있던 취경루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으로 청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고 이곳에 방을 써붙였다는 기록이도 있다.

조선 세조 7년(1461)에 수리하였고 한명회가 현판을 ‘망선루’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다시 고쳐서 근세에까지 유지되다가 1923년에 제일교회로 이건되었으며, 2000년 12월 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누각형식이다.

현재 1층은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가까운 곳의 청주동헌, 충청도절도병마사영문과 함께 청주관아의 모습을 짐작케하는 곳이다.

척화비는 1871년 신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이 외세와의 통상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국에 세운 비석이다. 당시 조선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쫄쫄호떡

원도심 투어를 마친 뒤에는 도보로 그림책정원 1937으로 이동했다.

그림책1937


이곳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그림책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읽고 전시를 감상하며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권정생 작가의 그림책도 천천히 읽어보고,


색연필로 그림도 그려보며 무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는 여유를 만끽한 시간이었다.


오후 3시 30분 다시 집결한 뒤 마지막 일정인 초정행궁으로 이동했다.


초정행궁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눈병 치료를 위해 초정약수를 찾았을 때 머물렀던 행궁을 복원한 곳이다. 세종대왕이 이곳에 머무르며 한글 창제 작업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더욱 의미 있는 장소다.


복원된 지 오래되지 않아 전통 한옥의 세월이 느껴지기보다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세종대왕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해설사의 설명을 약 20분 동안 들으며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은 초정약수를 이용한 냉수 족욕 체험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 지친 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니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오후 5시에 청주를 출발한 버스는 저녁 7시쯤 교대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테마캠프 여행사와 함께한 청주골목투어 19900원의 행복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역사와 문화도 배우고, 무더위 속에서도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청주 원도심은 단순히 오래된 도심이 아니라 천 년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뜻깊은 여행이었다.

다음에 청주를 다시 찾게 된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골목골목을 걸으며 숨은 매력을 찾아보고 싶다.

짱구네 물돈까스 사진 → 철당간 → 중앙공원 → 그림책정원 1937 → 초정행궁 → 족욕 →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