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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세계화·아동노동

소년병 지원

by 시경아빠 2011.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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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국 공개모집… 굶어죽지 않으려고 자원
10년간 200만명 사망… 범죄자 취급 논란도

아이의 뒷모습엔 천진함과 잔인함이 뒤섞여 있다. 양손엔 자동소총을 들고 있지만 자그마한 등 뒤에는 파란색 장난감 나비날개가 펄럭거린다. 아직 어린애다. 그런데 끔찍한 전쟁에 휘말렸다.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아야 할 그의 손에는 진짜 총이 쥐여졌다. 그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독재자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을 위해 싸운 소년병이다.





◇수십년간 계속된 수단 내전 현장에서 활동 중인 한 소년병. 어깨엔 자동소총을 둘러메고 있지만 아직 손톱을 깨무는 등 앳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SOS 칠드런스 빌리지 제공

세계 주요 분쟁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고통받는다. 총을 쏘는 것도, 총에 맞아 죽는 것도 어린이다. 일부 지역에선 소년병끼리 서로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들이 벌이고 책임져야 할 살육의 현장에 수많은 어린이가 대신 피를 흘린다. 국제 분쟁에서 끊이지 않는 소년병 논란과 실태를 살펴본다.

◆소년병 처벌 논란


지난 4일 캐나다 국적자로 관타나모수용소에 수감된 오마르 카드르의 군사법원 심문이 열려 논란이 벌어졌다. 카드르는 15세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를 도와 미군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테러조직과 관련된 만큼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카드르는 타의로 소년병이 된 만큼 오히려 알 카에다의 희생양이라고 맞섰다. 카드르는 군사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 일간 USA투데이 등 보도에 따르면 최근 아프간 반군은 14∼18세의 소년병이 주축을 이룬다. 몇 년 전만 해도 20대였던 전사들의 나이가 10대로 낮아졌다. 아프간 주둔 미군과 현지군은 이들 소년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대응공격을 하기엔 상대가 너무 어려 윤리적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체포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훈방하는 게 다반사다. 풀려난 소년병은 다시 전장에 투입돼 총부리를 겨눈다. 사법처리를 하자니 제2, 제3의 카드르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소년병은 통상 18세 이하의 무장 병사를 말한다. 소년병의 임무는 다양하다. 허드렛일부터 첩보수집, 전령, 지뢰제거, 전투 등 성인 병사들의 임무와 다를 바 없다. 아프간과 이라크, 파키스탄 등지에서는 자살폭탄 테러에까지 동원된다. 소년병들은 일부 정부 정규군에도 포함된다. 차드와 콩고민주공화국, 소말리아, 수단, 예멘 등 적어도 14개국이 소년병을 공개 모집한다. 하는 일만 놓고 보면 소년병은 전쟁관련 범죄의 처벌 대상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소년병은 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전장에 투신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분쟁이 오랜 기간 지속하면서 어린이들이 황폐해졌다.

전화(戰禍) 속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기댈 곳은 군대나 무장단체밖에 없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큰 유혹이 된다. 살기 위해선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년병 실태

거의 모든 분쟁지역엔 소년병이 있다. 그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HRW)는 2002∼07년 세계 분쟁지역 21곳에서 20만∼30만명의 소년병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분쟁 지역에서는 무장세력의 70%가 소년병으로 구성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유니세프는 지난 10년 동안 약 200만명의 소년병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년병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분쟁이 많은 아프리카다.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 등 전장에 수많은 소년병이 활약한다.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단체가 대립하는 소말리아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 소년병으로 병력을 충원한다. 무장 반군 가운데는 콜롬비아의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우간다의 신의저항군(LRA) 등이 소년병을 많이 거느리기로 악명 높다. 지난해 궤멸된 스리랑카의 타밀반군(LTTE)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거리나 학교, 운동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어린이를 납치해 강제로 전사를 만들었다. 서방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은 2003∼05년 18세 미만 청소년 군인을 아프간과 이라크 전선에 배치해 논란을 빚었다.





◇라이베리아 민병대 소년병이 양손에 자동소총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나비날개를 맨 모습이 분쟁현장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시장의 동화(FMFT) 제공

◆소년병 금지 노력

자의든 타의든 십대 소년병의 참전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지금까지는 소년병 문제 해결 노력은 소년병 징집을 규제하는 데 집중됐다. 소년병 징집과 전투 참가를 종식하기 위해 '소년병종식연합(CSUC)'이 1998년 발족됐다. 국제사면위원회(AI), HRW 등 6개 인권단체가 참여한 CSUC는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이 어떤 형태의 군대나 집단으로 징집되는 것과 전투 참가를 금지하기 위해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엔은 2000년 18세 이하 청소년의 참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인권협약 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지금까지 110개국 이상이 비준했다.

1998년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립돼 15세 이하 소년병을 전투에 동원하는 것을 형사 처벌할 토대가 마련됐다. ICC는 2006년 LRA 지도자 토머스 루방가를 소년병을 동원한 전쟁 범죄로 처음 기소했다. 2007년에는 시에라리온 반군 무장혁명평의회(AFRC) 지도자 알렉스 탐바 브리마에게 소년병 강제 징집 등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50년을 선고했다.

소년병 카드르 재판 결과는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수만 명의 소년병에게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니세프의 '무력분쟁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충격(IACC)' 프로그램 그라차 마첼 총장은 "최근 무력 분쟁에서 가장 경종을 울리는 경향은 어린이들의 전쟁 투입"이라고 유엔 보고서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