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옥마을과 지리산 일정 안내입니다. *
안녕하세요. 국사봉중학교입니다. 7월 20일(토) 출발하기에 앞서 몇까지 사전 안내를 드립니다.
1. 당일 오전에 비가 내려도 출발합니다. (현재 일기 예보상 날씨 맑음입니다 ^^)
2. 개인 신분증을 지참하셔야 합니다. (노고단 정상을 올라갈 때 필요합니다.)
3. 오전 8시40분까지 학교 운동장에 모입니다.
인원체크 후 8시50분에 정확하게 출발합니다. 늦지 않도록 해주세요.
4. 일정은 뒷면을 참고해주시고요. 답사 자료는 당일에 배부하겠습니다.
이번 여행 주제는 (소통)과 (공감)입니다. 짧은 여정이지만 많이 보고, 많이 걷으면서, 함께 소통하고, 함께 느껴보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일정상에 무리가 있으면 의견 수렴 후 축소하도록 하겠습니다.
5. 20일 당일 아침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이 조금 준비되어있습니다.
6. 전주에 도착하면 백반 정식으로 식사 후 한옥 마을을 2시간 동안 자유 투어입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전주한옥마을>검색하시면 한옥마을 사이트가 나옵니다. 2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먹을 것인지 각자 찾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7. 개인 준비물 : 세면도구(수건 포함), 개인 약, 여벌 옷, 챙이 있는 모자, 우산(양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점퍼, 랜턴, 휴지 등
* 여행 중의 무거운 짐은 짐이 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8. 숙소는 참가 인원이 많아서 둘로 나눴습니다. (총89명). 교사 가족과 학생 개인(1호차)은 지리산 산내에 위치한 매동 마을에서 민박을, 학생 -학부모 가족 팀(2호차)은 뱀사골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와운 마을로 갑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 많이 들으셨죠. 세상에서 집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행의 즐거움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합니다. 즐거운 마음을 갖고 행복한 여정을 함께 떠날 준비는 되셨겠죠?
- 매동 마을 인솔 교사 :
- 뱀사골 계곡 인솔 교사 :
- 일정 문의는 김재숙 선생님께 016-278-8973
* 전주 한옥마을과 지리산 일정 *
일정 |
a코스 (매동마을- 교사 가족, 학생) |
b코스 (뱀사골 - 학생 가족) |
20일(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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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0까지 |
학교 운동장 집합 | |
08:50분 출발 |
8시50분에 버스 출발합니다. 꼭 지켜주세요 | |
08:50 ~ 13:30 |
전주 한옥 마을로 이동 (간식 제공) | |
13:30 ~ 14:10 |
점심 (한정식 백반 - 광장식당) | |
14:10~ 16: 20 |
한옥마을 자유 투어 후 버스 탑승 (2시간) * 추천 : 전동성당 - 경기전(입장료 있음) -오목대 | |
16:20 ~ 18:00 |
산내 실상사로 이동 |
뱀사골 국립공원으로 이동 |
18:00 ~ 20:00 |
방 배정 및 저녁 식사(체험관에서) 백반 +과일 |
방 배정 및 저녁 식사 (수육)
|
20:00 ~ 22:00 |
작은 음악회 및 영화 상영 (장소: 체험관 식당) |
산중 음악회 및 풍등, 별자리 관측 |
22:00 ~ |
취침 | |
21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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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07:00 |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일부 탐방(매동마을_금계)(희망자) |
천년송에서 일출 감상 ( 희망자, 5시31분) |
07:30 ~ 08:30 |
숙소 정리 후 짐을 챙겨서 매동 마을 체험관에 모임. 아침 식사 후 버스에 탑승 |
아침 식사 (뱀사골 와운 산장) 후 짐 정리 |
08:30~ 09:00 |
뱀사골 국립공원(반선매표소)으로 이동 |
|
09:00 ~ 11:00 |
뱀사골 자유 탐방 (짐은 차에 보관) : * 뱀사골 탐방소 -> 요룡대까지 단체로 이동 (40분)-> 요룡대에서 산 정상 쪽으로 30분 정도 산행 후 -> 11시0분에 요룡대에 집합 -> 와운 마을로 이동 후 휴식 |
뱀사골 자유 탐방 (와운마을 -> 요룡대 -> 간장소 방향) ->요룡대 -> 와운마을 (11시까지 돌아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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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 12:00 |
11시30분부터 식사(김치찌개) 후 곧바로 하산 |
11시부터 점심 식사 후 하 산 * 짐은 산장 봉고차로 이동 |
12:00 ~ 13:00 |
성삼재로 이동 | |
13:00 ~ 15:00 |
성삼재 ~ 노고단 대피소 (자유 관람 2시간) | |
15:00 ~ 19:30 |
학교 도착 (성삼재 -정령치 휴게소 -전주-서울) |
지리산 자락인 남원시 산내면에 둥지를 튼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이다. 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국보 1점과 보물 11점 등 넓은 경내가 비좁으리만큼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5교(五敎)와 구산선문(九山禪門)이란? 불교에는 교(敎)와 선(禪)의 양대 파가 있다. 교는 경전에 의해 점차 도를 닦음이요, 선은 문자를 통함이 없이 좌선(坐禪)을 하여 도를 깨닫는 것이다. 신라 교종(敎宗)에는 5종(宗)에는 열반종·화엄종·계율종·법성종)·법상종)이 있다. 선종(禪宗)에는 남원의 실상사· 장흥 가지산의 보림사· 곡성 동리산의 태안사· 삼가리의 굴산사· 영월 사자산의 흥녕사·문경 희양산의 봉암사· 보령 성주산의 성주사· 해주 수미산의 황희사 등 구산(九山) 선종(禪宗) 또는 구산선문이 있었다. |
실상사의 건물들을 언제 만들어졌을까?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洪陟 證覺大師)가 창건하였는데, 홍척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한 분이다. 이후 2대조 수철(秀徹, 817∼893)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었으며, 선풍도 떨쳤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린 뒤 폐사되다 시피 하여 근 100년을 지내오다 숙종 16년(1690) 36동의 건물을 다시 세우는 등 크게 중창되었다. 이후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뭔 절이 동네 앞에,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 없이 있을까?”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은 꽃밥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은 실상사는 여느 지리산 자락의 산사와는 달리 평지에 들어서 있어 분위기가 색다르다.
* 우리 절은 남녘에서 가장 크고 깊은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 만평의 논 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 너른 들판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자라는 볏 잎으로 초록바다가 되고 실상사는 그 속에 마치 섬처럼 있습니다. 가을이면 벼가 익어 황금물결 일렁이는 그 속에 보물선 마냥 흔들리며 있습니다. 겨울이면 벼 베인 휑한 들판에 무상(無常)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른 들판 한 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보시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닐 겁니다. 불교최초 절인 ‘죽림정사’ 역시도 마을 옆 들판에 자리하였습니다. (실상사 주지 스님 인사말 중에서) |
사찰의 구역을 따라 담장을 낮게 두르고 담 안쪽으로 키 큰 나무들을 둘러 세운 풍광이 푸근하고 고즈넉하다.
반야봉·노고단·고리봉 등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만수천이 큰 냇물을 이루어 실상사 앞을 흐른다.
해탈교를 건너 논길을 200m 정도 걸어가면 산문인 천왕문(과거에는 만세루가 있었다고 한다)이 나온다. 해탈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징검다리가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는데 이때에는 개울을 건너는 운치가 그윽했다고 한다.
해탈교를 전후하여 서 있는 세 기의 돌장승은 그 표정이 무섭고 당당하여 절집을 노리는 잡귀들을 가히 물리칠 만하다.
* 실상사(實相寺)돌장승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돌장승 하나가 의연히 서 있다. 원래 마주보고 있는 돌장승이 하나 더 있었는데, 1963년 홍수 때 떠내려갔다고 한다. 높이 약 3m로 보기 드물게 큰 장승이며, 몸통에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수염을 땋아서 왼쪽으로 구부렸고 벙거지 같은 모자를 썼다. 찌푸린 이맛살과 콧등, 물안경을 쓴 듯 튀어나온 두 눈, 주먹 같은 코는 벌름거리는 것 같고, 입술 밖으로 드러난 이빨은 굵고 송곳니는 길게 八자형으로 튀어나왔다. 목에 힘을 준 듯 힘줄이 솟아 있다.
해탈교를 건너면 돌장승 두 기가 서 있는데, 왼쪽 나무 밑에 있는 장승이 대장군(大將軍), 마주보고 있는 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다. 대장군의 받침돌에는 '옹정삼년을사삼월입동변’(雍正三年乙巳三月立東邊)이라는 각자가 있는데, 옹정 3년은 1725년이다. 높이 2.5m이며, 숱이 많아 보이는 수염은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애꾸눈이 안대를 한 듯 검은 줄이 바위 위로 눈과 코, 입을 가르며 그어져 있어 꽤 무서워 보인다. 미간 위쪽에는 불상의 백호와 같이 동글게 도드라진 점이 하나 있는데 매우 독특하다. 눈썹을 치켜올려 한껏 사납게 보이며, 비뚤어진 입은 비죽거리며 조소하는 듯하다. 상원주장군은 눈알이 동그랗게 튀어나왔고 역시 미간 사이에 대장군처럼 백호로 보이는 동그란 점이 조각되어 있다. 두 장승 모두 사찰장승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점이다. 턱수염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점잖으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준다. 그 몸통에는 ‘신해년오월’(辛亥年五月)이라고 각자되어 마주보고 있는 대장군보다 6년 뒤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2.5m이다. 세 장승 모두 거대하고 정교한 작품이며, 옹호금사축귀장군과 상원주장군은 서로 모습이 비슷하고, 대장군이 약간 다른 모습이다. 상원주장군 뒤쪽의 논 가운데에는 입석이 하나 서 있다. |
천왕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에 삼층석탑 두 기가 동서로 나란히 서 있고, 뒤쪽 중앙에 석등과 보광전이 차례로 서 있으며, 보광전 양 옆으로 약사전과 칠성각이 있다. 석등 양 옆으로는 명부전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는데 전체적으로 평지에 들어선 전형적인 1금당 쌍탑의 가람배치를 보여 주고 있다. 천왕문과 삼층석탑 중간에 종루가 있으며, 종루 뒤쪽에서 발굴된 건물터는 원래의 가람과는 별도로 후대에 만들어진 오층목탑이 있었던 장육전으로 추정하던 터에 1999년 11월 24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팀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목탑지로 확인되었다.
실상사의 주법당인 보광전은
현재는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소박한 모습으로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로써, 보광전 주변에는 83평을 추정케 하는 주춧돌이 남아 있어 굉장한 규모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에는 홍척·수철 두 스님의 영정과 범종이 있다.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은
종에 새긴 글을 통해 조선 숙종 20년(1694)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으며,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주지가 일본 경찰에게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상사에는 일본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한다.
약사전의 창호에는 어떤 꽃이 그려져 있나요?
당시는 왜구가 남해안과 전라도 일대에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던 때이다. 홍척은 도선에게 부탁하여 절터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현재의 실상사 약사전 자리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는 말을 듣고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약사전의 창호가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이고, 약사전 앞에 무궁화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 중에서는 약사전만이 조선 중기의 양식을 갖춘 단정한 건물이다.
약사전에 모신 철불은 ?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영험한 불상으로 인근 불자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상사 동종(銅鐘)
한편 경내에서 발견된 실상사 동종은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발견 당시 이미 상반부가 없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비록 유곽·비천상·당좌뿐이지만, 그 조각솜씨가 우수하여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 동종을 연상하게 한다. 남아 있는 부분의 입지름으로 보아 높이 1.67m, 입지름 91cm인 상원사 동종보다 약간 큰 규모였으리라 추정되며, 실상사 창건 당시 주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광전의 옆에 있는 칠성각은 팔작지붕 형태로 아담하며, 요사채 옆으로 난 길가 한쪽에 있는 화장실은 입구에서부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빼어난 목조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보곤 한다.
요사채 쪽 사잇길로 들어서면 극락전 주변에 홍척스님의 부도와 부도비 그리고 실상사의 제2대 조사인 수철스님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 자료 출처 : 산내면사무소, 실상사 홈페이지, 갱물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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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지리산 답사 자료집
1. 1박2일 생태 체험에서 우리 모두가 꼭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해당되지 않는 것은 ?
① 안전 ② 소통 ③ 나눔 ④ 공감 ⑤ 황소고집
2. 이번 1박 2일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총 인원은 ?
3. 다음 중 국사봉중학교 1박2일 생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것은 ?
1) 전주 한옥마을 2) 지리산 뱀사골 국립공원 탐방
3) 성삼재 ~ 노고단 길 산행 4) 대청봉 산행
5) 실상사 탐방
4. 학교를 출발해서 최종 도착지인 곳까지 이용한 고속도로를 모두적어보세요.
5. 일사조약(1905)이후 일본인들이 서문 밖에 거주하다, 양곡 수송을 위한 도로가 개설되면서 성곽이 없어지게 되고 이후 일본 상인들이 이곳의 상권을 장악하게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19030년 전후로 한국인들이 한옥촌을 형성한 이곳은 지금의 어디일까요 ?
6. 천주교 신자의 순교지로 프랑스 선교사인 보드네가 부지를 매입하여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다. 본당과 측량의 평면 구성과 내부천장은 둥글다. 중앙의 종탑과 양쪽의 작은 종탑이 함께 잘 어우러져 입체감과 건물의 상승감을 주고있다. 종머리가 로마네스트 양식과 비잔틴 풍이 잘 가미된 이 건물의 이름은 ?
7.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중 이곳에서 승전 잔치를 벌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어디일까요?
8.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어용전) 이곳은 어디일까요?
9. 전주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3대 문학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10.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은 ?
11.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로 높은 산일까요?
12. 지리산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최고봉은 ?
13. 다음 중 지리산 문화재와 관련이 없는 것은 ?
① 화엄사, ② 천은사, ③ 연곡사, ④ 쌍계사 ⑤ 사자암
14.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며, 국보1점과 보물11점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산선문의 최초인 이 사찰의 이름은?
15. 실상사로 들어가는 해탈교를 전후해서 서 있는 석상으로, 절집을 노리는 잡귀들이 얼씬하지 못하도록 표정이 무섭고 당당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은 ?
16. 실상사 약수전의 창호에 그려져 있는 꽃의 이름은 ?
17.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축물로 안에는 숙종때 만들어진 범종이 있다. 종을 치는 자리에는 일본지도와 비슷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전해져 일본강점기 때 주지가 일본 경찰에 의해 문초를 당하기도 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이 건축물은 ?
18.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으로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마다 땀을 흘린다는 영험한 불상으로 불자들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불상의 이름은 ?
19.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길이 14㎞의 골짜기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고 해서 붙었다고도 하고,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 데서 유래된 이 계곡은 ?
20. 구름도 누워가는 간다는 오지마을로 생필품을 구하러 가장 가까운 남원의 인월장에 갔다 오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벌목한 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만든 외길이 지금도 이 마을을 외부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며 핏빛 동족상잔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이곳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고로쇠·토종벌·목기 제작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주민 대부분이 식당을 운영하거나 민박을 치며 생활하는 이곳 마을이름은?
21. 이곳 마을이 외부에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이것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매년 음력 1월 10일에 지낸다는 이 나무의 이름은 ?
22.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로 숙소인 매동 마을도 이곳에 포함됩니다. 제주도에서는 좁은 골목의 뜻인 올레 길로 부릅니다. 지리산을 함께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는 이 길의 이름은 ?
23. 17∼18도의 완만한 경사지대로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로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안치환의 노래 <행여 지리산에 오시거든>에서 이곳을 노래했는데 노랫말 중에 ‘구름바다에 빠질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은 이슬을 눈으로 오시라’는 이곳은?
24. 성삼재 휴게소~노고단 길에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있는데요. 그 곳에서 만난 꽃들의 이름을 적어볼까요? 가장 많은 꽃 이름을 적은 분에게는 행운이 갑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詩人 이 원 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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