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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중국/실크로드10일(2014)

실크로드 3일차 - 천수 맥적산과 난주로 이동

by 시경아빠 201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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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 특산물인 복숭아

어제 밤에 가이드분의 특별식이다.  탐스럽고 복스럽게 먹음직 스럽게 생겼다.

복숭아를 한 입 깨무는 순간  입안에 단물이 철철 쏟아져 들어온다.   

중국이 아닌 한국이였으면 택배로 몇 상자 보냈을 것이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우육면으로

뼈를 삶은 국물에 수타면을 넣고 소스를 얹혀주는데

얼큰하고 뜨거운 육수가 속을 풀어주는데 최고다. 특히 숙취뒤에 해장술로  굿이다. 

 중국 식단은 기름진 음식들이 많아 식사 후에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찬물보다는 차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활기찬 아침 거리의 모습

거리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있지만 아직은 잘 지키고 있지 않다. 큰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아직은 가슴 속에 과거의 습관이 존재한 탓일 아닐까?

굳이 법 없이도 서로 간의 보이지 않은  약속을 통해 서로가 원칙만 지킨다면 굳이 법은 필요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법들이 오히려 선량한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택시에는  운적석과 뒷좌석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되었는데 운전사를 보호하기 위한 막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버스와 마찬가치로 ...

택시를 타보질않아서 확인은 못했지만 ... 버스에서 차장 밖으로 지나가는 택시를 관찰했을때는 택시 내부의 칸막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맥적산 관광 안내도인데 ...  지도의 아래쪽 부분에 맥적산 석굴이라고 적혀져있다.

안내도를 보니 주변에 또 다른 볼거리들이 많이 있는 것같다. 

온천과 선인애 풍경구도 보인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어서 (?) 주변을 함게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맥적산 매표소 입구에서 인증샷

 

 

 

매표소를 지나서  전동카를 타고 맥적산 석굴이 보이는 곳까지 이동한다. 

날씨가 덥지않으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맥적산 석굴을 보기위해서 계단을 많이 걸어다녀야 함으로 전동카를 타는 것이 좋겠다.

더울 때는 무조건 전동카를 추천  !!! 거리가 생각보다 짧은 거리는 아니다.

 

 

호두가 길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노점상들을  지나 오르면

 

 

 

본격적인 입구로 들어서면서 마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말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않는다.

 

 

 

도로를 따라 맥적산으로 걸어 오르다보면, 길거리 상인들이 가장 많이 파는 품목이 잣이다.

고소하고 영양가 만점의 잣 !!! 이 이곳을 대표하는 특산물인가보다.  우리나라의 가평하면 잣이 유명한 것 처럼.  

 잣을 통째로 태워져 시커멓게 되어 있는 것을 전시도 해 놓았다.   잣을 어떻게 볶을까 생각했는데 답이  절로 나온다.

 

 

 

 

 

 

드뎌 맥적산의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진에서 많이 봤던 그 장소이다.

 

맥적산은  보리 짚단을 쌓아놓은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돈황, 용문, 운강의 3대 석굴과 더불어 맥적산 석굴은 4대 석굴에 포함된다.  

 

돈황 석굴은 벽화가 걸작이라면, 맥적산 석굴은 흙으로 빚어 만든 형상(소상)이 걸작이다.

돈황은 건조한 지역이라 벽화가 잘 보존될 수 있었지만, 천수 지역은 비가 많고 습기가 많은 지역이였고,

암석은 단단하지 않은 붉은사암으로 구성되어서 소상 제작에도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돈황 석굴은 길이와 규모에 비해 너무 정형화된 틀에 갇혀져 있다면

 맥적산 석굴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인위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멋을 간직하고 있어 느껴오는 맛과 향이 전혀 다르다.

돈황 석굴이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맥적산 석굴은 시골의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맥적산의 제작 시기는 북위시대부터 청나라까지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을 지나서도 원형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것은 지형이 갖고 잇는 특징의 탓일 것이다.

 

윗 사진은  맥적산 서쪽 절벽의 석굴로 마애석불입상이 보인다.  맥적산에는 총 194개의 석굴이 존재한다.

 

 

 

맥적산 동쪽 석굴

이곳은 당나라 때 대지진으로 절벽이 갈라지면서 서쪽 절벽과 동쪽 절벽으로 나뉘게 되는데,

초기 석굴의 대부분이 서쪽 절벽 중앙부에 있고 역대에 걸쳐 점점 동쪽으로 발전해 갔다.
동쪽 석굴 모습보다는 서쪽 석굴의 모습이 더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보인다.

사람의 앞모습보다 옆모습을 보는 모양과 같은 위치이다.

 

 

 

 

 

 

맥적산 관람 순서 안내도

특별하게 신경쓸 것없이 앞 사람들을 쫓아서 오르고 내리면서 관람을 하면된다.  지도에서 빨간색 화살표 방향 참조

 

 

 

동쪽 절벽의 <제13호굴> 삼존대불입상

 

불심이 없었다면 이 커대한 석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불교의 위력과 파워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가는 대목이다.

 

이 거대한 석불은  여러 개의 구멍을 파서 그 곳에 나무를 꽂고,  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석회가루로 마감을 한 뒤, 화려한 돌가루를 뿌려 마감칠을 한  커대한 불상을 올려 놓은 것으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 일들을 가능으로 바꾼 불가사의한 작업이였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아니 죽지 않고서는 안되는 일들을  해야만 했던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살면서 자주 하늘을 쳐다보자

넓고 공활한 하늘 그 속에는 우주가 있고 내가 있다. 존재하는 삶, 영혼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굴 속 마다 자신의 소망을 염원하는 지폐들로 넘친다. 

 

 

 

 

009호 中 칠불각

 

 

칠불각 내부

 

 

 

003호 천불상이 잇는 회랑

 

 

 

 

사진에서는 일부만 보이지만 천불상은 회랑의 벽면이 2단,  회랑의 아래쪽으로도 4단이 더 있어 총 6단으로 구성되어있다.

총300여개가 안된다고 한다.

 

 

 

004호 上 칠불각으로 북위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맥적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7개의 감실과 감실 내부에는 불상들이 놓여져있다.

감과 감사이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도깨비 얼굴 모습을 한 역사(力士)들의 모습도 보인다.

 

 

 

 

 

칠불각 내부 사진

불상의 얼굴에  근심들이 많아보인다.  마치 화난 얼굴모습에 입모양은 마치 울상이고 심술난 표정들이다.

 부처님으로 부터 잔소리를 들어서인지(ㅎㅎㅎ) , 아니면 당시 조각가들의 고단한 삶의 마음을 담아서 표현한 것은 아닐런지 ...

 

 

 

 

 

굴의 양쪽으로는  눈이 부리부리한 모습으로 창을 들고 지키는 근육질의 여사상이 있다.

마치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는 느낌을 주어 나의 마음을 위축들게 만든다.    

 역사상 위로는 작은 감실이 하나 더 있다.

 

 

5호굴의 삼존불로 수나라 때 조성되었다.

감실 내부의  불상들은 선이 굵직하고 시원하게 잘 조각하였다.  마치 우리의 석굴암 불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불상의 크기와 위용, 다양한 칼라의 조화와 부드럽고 선명하게 표현된  선의 굴곡,

그리고 가사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해 놓은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어 놓는다. 

 

 

 

 

 

 

 

 

 

5호굴 관람을 마치고 서쪽 절벽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계단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천길 낭떠러지로 아찔하다.

맥적산 석굴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공중에 하늘 계단과 나간을 설치해 놓은기술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이 둘의 부조화로 인해(?)  맥적산의 모습이 더 위용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닐런지 ... 쓸데없는 생각을 가져본다.

 

 

 

 

서쪽  절벽의 98호 굴인 마애불

3개의 입상중 사진의 왼쪽 석불의 겉모습은 훼손되어있다.

훼손된 석불을 통해 거대한 석불의 제작 방법을 알 수가 있다. 

진흙과 지푸라기를 썩어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구멍을 파고 나무막대기를 넣은 뒤 마지막으로 석회가루로 마감을 하였다.

북위시대 것으로 후대에 중수를 거친 것으로  불상의 얼굴 윤곽 특히 눈이 크고,  얼굴은 통통한 모습으로 포근한 느낌을 준다.

 

 

 

불심이 거대한 바윗돌을 떠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관람로 입구에는 관람로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해두었다.

맥적산 석굴은 절반 정도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고, 나머지는 철문을 만들어 잠그고 철망을 설치해두어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동방의 비너스로 불리는 44호굴, 서위 때 조성된 것으로

살며시 내려 감은 눈아래 오톡한 콧날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얼굴엔 안온한 미소를 띠고 있다.

특히 풍부하게 겹겹이 잡힌 붓다의 가사 주름이 눈길을 끈다.

 

 

43호굴의 적릉에 있는 역사의 모습

사진으로 적릉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이곳 적릉에는 슬픈사연이 간직되어 있다.

 

서위를 세운 문제에게는 을불 왕후가 있었는데 , 북방 유연국의 잦은 침략으로 유연국의 딸을 새 황후로 맞이한다.

이때  을불 왕후는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지만 문제는 늘 을불황후를 잊지는 못했다.

이 사실을  빌미로 유연국이 침략하자 문제는 을불왕후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사람들은 맥적산에 굴을 파고 황후를 장사지냈고, 이 무덤을 적릉이라 불렀다. <바움 도서, '걷는자의 꿈 , 실크로드', 문윤정 글 참고함>

 

 

  

 

 

 

 

 

전동카에서 줄을 서 있는 동안 한 소년이 다가와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복스러운 얼굴이다.

 

 

맥적산 석굴 관람을 다 마치고 전동카에서 내려오니 소나기가 지나간다. 

열대성 소나기다.  무더위를 잠시 날려주는 복되고 착한 비이다.

 

 

대마(삼)이다.

삼은 약 30%의 기름이 들어 있는 씨를 얻기 위해 심거나  잎과 꽃에서 얻는 마약제인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얻기 위해 재배를 한다 

 

 

 

 

중국의 경유 가격은  리터당 7위엔.  1위엔에 우리나라 돈으로 180원으로  환산을 하면 리터당  1,300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유 가격이 리터당 1,600원임을 감안했을때는 ... 기름에 붙는 세금이 중국도 만만치는 않은 모양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란주로 이동을 한다.  이동 소요 시간은 4-5시간

 

 

 

 

 

 

감곡(?)의 대상산 석굴지를 지나고 ... 고층 건물들이 신축중에 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면  차창 밖으로는 넓은 벌판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이상한 회색빛 도시 건물들이 눈 앞에 덜러덩 나타난다. 

이 넓은 벌판에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 황량한 곳을 찾아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 정착을 하면서 살아갈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한편으로는 나는 지금  중국 서부의 개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은 이미 지나갔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세계의 중심은 이제 중국이다.

 

 

 

란주까지 230키로미터

 

 

 

큰 바위산에 구멍이 뻥뻥 뚫어져 잇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이산의 독특한 지형과도 닮았다. 

자연이 주는 힘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나무 한 그루도  자랄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다.

 

 

 

 

 

무산 온천을 지나

 

 

 

석회석을 운반하는 케이불카(?)

 

 

 

석회석 공장(?) 들의 모습도 보이고

 

붉은 황토와 협곡들이 이어진다.

옥수수 밭도 펼쳐지고

 

 

 

 

 지형과 치수를 잘 이용해서 만든 계단식 논이다. 

 

 

 

 

달리고 달려서

 

 

 

 

 

 

란주에 도착했다.

 

 

 

검문은 필수

 

 

 

 

 

식사를 마치고는 건국 호텔(준5성) 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