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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5.미얀마12일(2011)

미얀마, 짧은 마실의 기억 - III

by 시경아빠 201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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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짧은 마실의 기억 - III

잠시 숙소로 돌아와 졸았다. 숙소 뒤편 뜰에서 들어온 햇살이 밝고 곱다. 그렇게 화사한 볕에 잠시 눈을 가늘게 떠서 바라보면 키를 넘는 창밖으로 마치 오래된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온 것처럼 부겐베리아가 소담하게 피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해만 중천에 떴을 뿐 조용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한낮의 짧은 오수가 여행자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음을 느끼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 숙소 창 밖으로 활짝 핀 부겐베리아 ⓒ 들찔레

부겐베리아는 바간의 고고학 박물관 마당에도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스프링클러에서 뿜어 나오는 물이 공중에 약한 무지개 포말을 일으키다가 붉은 꽃잎을 적시며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지는 붉은 꽃잎은 바간 왕국의 영화가 스러지는 모습이거나, 식민지 시절의 가난하고 나라를 잃은 백성이거나 철권통치하의 백성 같다는 느낌이다.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팔놀림이 홀가분해서 좋았고 눈으로보다는 마음으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원을 조성하고 탑을 건설하면서 시주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새겨진 비석들부터 이곳에서 발견된 화석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 바간 풍경 하나 ⓒ 들찔레

베트남에서 한문으로 된 비석의 아주 간단한 글자조차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 것을 보았던 경험이 있다. 식민지로 인해 타의에 의해 베트남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서 수 십 년 만에 거의 모든 국민들이 한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에 비해 미얀마의 비석에는 그들 고유의 언어인 미얀마어의 기원이 되는 빨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미얀마어는 35개의 자음과 9개의 모음으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 아라비아 숫자조차 자신들의 숫자를 실생활에서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자동차 번호판을 들 수 있다

◇ 미얀마의 차량번호판, 고유 아라비아 숫자를 쓰는데 <다/7999> 란 뜻이다 ⓒ 들찔레

이곳 박물관 관계자는 자랑스러워하는데 도가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들이 오래 이어져 도망도 못 가고 꼼짝없이 잡혀서 난감했지만 1층 로비에 전시된 아노라타왕과 그의 아들인 쟌시타왕의 부조를 보면서 짧은 해후를 한 기억이 좋았다.

◇ 따마양지 파고다 ⓒ 들찔레

해가 중앙에서 서쪽으로 기운 모습이 확연할 즈음, 800만장의 벽돌이 소요되었다는 가장 웅장한 탑 따마양지(Dhammayanggyi)사원을 향했다. 사원 입구에서 툭 트인 사방을 바라보면 먼 곳에 탑들이 키 재기를 하며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바간다운 풍경의 하나인데 눈앞에 보이는 따마양지는 우람하지만 균형이 잘 잡힌 모습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피라미드 모양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붉은 사암은 이곳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원들의 주 건축 재료일 것이다. 이미 그렇게 각인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남방의 힌두교나 불교 사원이 붉은 사암으로 만든 것이라야 제격이라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그러나 이 우람한 따마양지는 미완성의 사원이다. 이 사원은 아버지인 알라웅시투 왕을 베게로 눌러 숨지게 하였다 그 후 동생, 아버지가 맺어준 아내, 그리고 왕자들과 신하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폭군 나라투(Naratu 재위 1167-1170))가 왕위에 오른 뒤 학살을 참회한다는 의미로 이 사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의 부인들 중 인도의 칼라(파테익카야) 왕의 딸이 잠자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죽이자 칼라왕이 브라만 승려로 위장한 여덟 명의 자객을 보내 나라투를 죽임으로써 사원은 완성을 보지 못했다. 이후 그에게는 칼라지아민(인도인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따마양지 파고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쌓여있는 벽돌 ⓒ 들찔레

내부의 구조는 아난다 사원과 유사한 구조인데 입구만 들어가 보아도 알겠지만 벽이나 아치형의 구조물들은 마치 남미의 잉카유적처럼 벽돌 사이의 틈에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정교하게 쌓여있음을 볼 수 있다. 이 포악한 왕은 인부들로 하여금 이렇게 완벽한 벽 쌓기를 요구하였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팔을 자르거나 죽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에 불만을 품은 인부들은 복수심으로 안쪽 통로 내부를 깨진 벽돌로만 채워 넣었다고 하며 이는 눈으로 쉽게 목격할 수가 있다.

◇ 따마양지 파고다, 서쪽의 두 좌불상 ⓒ 들찔레

아난다에서처럼 내부 공간은 사방불을 모셔놓도록 꾸며져 있는데 동쪽에는 훨씬 후대의 불상이 시멘트로 보수된 채 놓여 있고 북쪽에는 아예 불상이 없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불상은 서쪽 맨 앞에 있는 두 좌불이다. 마지막 과거불인 석가모니불과 미래불인 미륵불로 구성된 이 두 좌불이 인상적인 이유는 우람하지 않고 우리 불상들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과거를 속죄하고 매래에 대한 기복을 하는데 있어 이 두 불상이 가장 중요한 존재임은 미얀마 사람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에게 다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 탓빈유 파고다 ⓒ 들찔레

바간에서 차를 타고 다니면 따마양지나 아난다도 잘 보이지만 가장 높은 탑은 탓빈유(Thapyinnyu)파고다다. 해 질 무렵의 바간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들 중 한 곳이지만 일반인들은 꼭대기까지 내가 올라갈 수 없다. 61m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이 사원은 아난다 사원 건립자인 짠씻따왕의 손자인 알라웅씨투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사원의 규모는 크지만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도굴로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 잠시 지나는 길에 외관만 바라보았다. 이 사원을 짓는데 는 1000만장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100장의 벽돌을 사용할 때마다 한 장 씩 빼서 별도로 쌓은 사원이 곁에 있는데 그것도 규모가 꽤 커 보인다.

해가 그림자의 길이를 길게 내리는 시간이다. 탓빈유파고다 앞의 흙 길 멀리로 아스라한 탑들의 실루엣이 황금빛으로 걸리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처럼 사람들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바간의 하오를 꾸미고 있다. 아마도 해가 넘어 갈 때쯤이면 이 도시는 더욱 주황색 빛에 물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며 쉐산도(Shwe-San-Daw)파고다를 향한다.

◇ 쉐산도 파고다 ⓒ 들찔레

바간이라는 도시, 그 중 쉐산도 파고다에서 도시를 조망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의 감동이 나를 미얀마로 이끈 이유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해질녘을 기다려 쉐산도파고다에 올라 도시를 조망하는 것이 미얀마 일정에서 감동적인 시간의 하나가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앙코르와트의 프놈바켄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것이 유명하듯 이 탑은 바간에서 이른 아침의 여명과 물안개 속의 풍경이나 석양을 보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풍경 I ⓒ 들찔레

쉐산도파고다는 아노라타왕이 건설한 탑으로 ´황금빛 부처님 머리카락´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을 즈음 그에게 보시한 상인들에게 여덟 가닥의 머리카락을 뽑아 주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나중에 그것들을 가지고 있던 남부 바고(Bago)의 왕이 지완(Gywan, 현재의 크메르)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준 아노라타왕에게 선물을 하여 그것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원이 바로 지금의 쉐산도파고다라고 한다.

◇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풍경 II ⓒ 들찔레

이 사원은 바간왕조 초기에 건축된 것임에도 위용과 건축미가 뛰어나 쉐지곤파고다를 만드는 모델이 되었던 탑이다. 이는 바간의 초기 탑들이 그렇듯 속이 차있는 제디 양식이다. 정방형의 외부모양은 마치 피라미드 위에 종형 부도를 얹어놓은 모습인데 사방에 계단이 마련되어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폭은 좁아진다. 아래로부터 중간 중간에 다섯 군데의 정사각형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어 마치 5층탑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리의 옛 목탑도 이런 구조와의 유사성이 있을 듯싶기도 하고 남미 페루의 마추픽추 유적과도 닮아있다.

◇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풍경 III ⓒ 들찔레

이런 관찰을 하고 있을 즈음 사람들이 갈수록 몰려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누구든 이 시간이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조급한 마음에 맨발로 급경사의 좁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렸으면 계단 바닥이 이렇게 매끈하게 닳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테라스까지 한 층을 오르고 뒤를 돌아보니 발 아래로 조금씩 보이는 풍경들이 조금만 더 오르면 훨씬 좋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설레게 만들었다. 이윽고 맨 위층에 섰을 때는 세상의 빛이 점차 황금빛으로 변하는 시간, 햇살의 두께는 얇아졌지만 심도는 깊어져서 갈수록 보이는 사물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풍경 IV ⓒ 들찔레

서편 해가 기우는 쪽으로의 풍경은 아직 빛을 발하고 있는 태양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과 멈춰있는 모든 것들의 그림자가 아련하고 바간다움이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을 싣고 강가로 나가는 마차가 만들어 내는 먼지조차 부드러운 풍경 속의 한 장면을 이룬다. 큰 탑들과 작은 탑들 그리고 성근 숲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긴 꼬리의 그림자들의 조화는 여태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만 해질녘 석양을 보고, 별이 뜨기를 기다리며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앉아있고 싶었던 터키의 카파도키아 젤베계곡과 비둘기 계곡이 생각났다. 또한 섬진강 대숲을 등에 지고 백사장에 앉거나 남한강 신륵사 앞에 앉아 해지는 모습을 본 기억과 변산반도의 겨울 낙조를 생각하였다. 이런 풍경은 같은 자리에서도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얼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속성을 다 알아채고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풍경 V ⓒ 들찔레

맨 위 테라스에부터 아래쪽까지 많은 사람들이 쉐산도파고다에 올라와 있었지만 분주한 발걸음과 행동들 가운데서도 소란하지 않았다. 비록 불교 신자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연의 위대함에 유연하게 녹아있는 불교 유적의 조화를 보면서 모두 <경건함>이라는 동질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즈음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곧 해가 질 것이지만 마음속의 시간은 정체를 거듭하여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각인한 한 순간에 머무르기 일쑤다. 이런 순간은 <고요함>과 맞물려있고 사람들은 <경건함>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건함>은 모두의 마음에 <평정심>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도 숨소리는 고르고 조용하며 얼굴은 평안하다. <담백한> 기운이 얼굴에 나타나고 편안함이 묻어나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이라와디 강으로 가는 길 ⓒ 들찔레

무심히 지는 해를 바라보다 이라와디 강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면서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해가 지는 모습은 강에서 맞을 계획 때문 이었다. 쉐산도파고다를 내려와 마차를 잡아타고 목적지로 향할 때 쯤, 해는 높은 사원의 등 뒤를 빠져나와 키 큰 나무의 머리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해는 더욱 붉게 짙어져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용트림을 하는 듯 보였고 그 만큼 강가로 가는 길은 더디게 느껴졌다.

◇ 이라와디 강의 저녁풍경 I ⓒ 들찔레

숲 사이의 길을 지나고 큰 길을 빠져 강으로 가는 작은 길에 들어서면서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마부에게 물었다. “7 minutes!" 간단명료하게 말하며 불안해하는 나를 흘깃 바라보더니 씽긋 웃었다.”Perhaps you can see orange river by sunset" 그 말을 듣고서야 나도 그 마부에게 웃어 보였다. 영어를 할 수 있는 그는 나와 동갑내기였고 큰 아이가 딸인 것과 딸의 나이도 같은 것을 알고는 또 한 번 웃었다.

◇ 이라와디 강의 저녁풍경 II ⓒ 들찔레

강에 못미처 나를 내려준 마부와 인사를 나누고 강으로 달렸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와서 강 너머로 지는 해넘이를 감상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본 이라와디 강에서의 해넘이는 강은 섬진강에서, 낙동강에서 혹은 남한강이나 서해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붉디붉은 해가 강물에 수놓은 색깔은 순천만 용산에서 바라보던 해넘이를 닮기도 하였다가 경주 남산에서 한여름에 넘어가던 해넘이와 중첩되어 기억되기도 하였다.

◇ 이라와디 강의 저녁풍경 III ⓒ 들찔레

강 언덕을 따라 저 멀리로 로카난다(Lawkananda)파고다의 머리가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았고, 한적하게 노를 저어 강을 가로지르는 사공을 보았다. 물은 갈수록 물감을 푼 듯 붉은 빛을 더하고 사공과 배 그림자도 시간 속을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강물 속에 녹아들고 있음을 느꼈다. 점점 붉은 빛은 어둠을 몰고 와서 꼬리처럼 남았던 해는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용광로처럼 끓던 그 해는 내일 다시 뜨리라. 이런 광경을 보면 누구나 가슴 먹먹해짐을 느낄 것이며 쉐산도파고다 에서처럼 내 표정은 담백함으로 물들어 걸 것이라 여겼다.

◇ 바간의 개략도 ⓒ 들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