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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중국/실크로드10일(2014)

실크로드 7일차 -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

by 시경아빠 201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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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 출입구

베제크리크 천불동에서 10여분 거리에 위치

 

 

도착 시간은  11시50분

버스에 내리자 뜨거운 열기가 가장 먼저 반긴다.

뜨거운 열기를 증명라도 하는 듯  출입구 측면으로 거대한 '연간 고온현황표'가 부착되어있다.

 

7월의 기온이 50도를 육박한다. 

2002년도 자료이니 지금은 이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 60도까지 오른다고한다.

살인적인 무더위다. 다행히도 우리가 간 날은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겨울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 연교차가 80도로 엄청나다.

하지만 기온이 높지만 습도가 높지않아 그늘에 있으면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할 수가 있다.

 

 

 

 

 

매표소에 들어서면  황량한 벌판에는 몇개의 조형물과 누각들만 들어온다.

여기 저기 공사를 하다만 흔적들도 보이고

 

 

 

 

고창군의 성도

일본 고고학자가 이곳을 발견했다는데 ... 3개의 무덤에 미라가 있다.

아스타나는 위구어로 '휴식의 장소'로  고창국과 당나라의 귀족층들의 공동묘지라고 한다. 

개방된 곳은 달랑 2개 ...아직 다른 묘는 발굴이 안되었는지 ..그냥 보존을 하고 잇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무덤으로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다.

  

상인의 묘였던가 ??? 사진 찍느라 가이드 설명을 놓쳤다.

 인테넷 폭풍 검색에 들어가...

상인의 묘라고 증명하는 것이 벽화에 화초가 그려져 있는데

화초는 투루판 지역에서 볼 수 없고,  소주의 상인이 이곳으로 왔다 죽자 무덤에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소주에서 이곳 먼 서역까지와야 했던 이유가 뭘까?  

 

 

 

 

 

 

 

당나라 시대의 부부합장묘

 당나라가 이곳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했던 지역으로 그 관리들의 무덤인 것이다.

이 무덤에는 벽화가 유명??? 옥, 금, 돌, 목인들의 벽화가 있다. 

흰옷을 입은 옥인은 청렴결백을 ,  입을 막고 있는 금인은 언행을 조심하라는 뜻을,

석인은 돌처럼 결심이 잘 흔들리지 말것을, 목인은 거짓없이 바르고 곧게 살라는 뜻이란다.

 

죽어서도 벽화를 남긴 것은 ...

유교적인 생활을 중요시했던 중국인들의 일상적인 그들의 삶의 표현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한다.

 

 

 

 

 

 

화염산의 이글거림이 이곳까지 느껴진다. 이름만으로도 ...

화염 ...불구덩이... 화염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 과거 이곳은 명성으로도 엄청난 전쟁터였던 것은 아닐런지 ...

화염산 앞쪽으로는 포도밭이 보인다.

 

 

 

 

 

정자에서 매표소쪽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12지신상이 보인다.

(앞쪽에 6개, 뒷쪽으로 6개 )

12지신상 가운데에는 우뚝 서 있는 것이 복희여와상이다.

이곳에서 '복희여와도'가 발견되어 만든 조각상이다.

 

 

 

호랑이들 모여라

 

 

 

 

복희와 여와는 중국 신화의 인류 시조이다. 

3황 5제중의 3황이라고도 알려진  ... 전설 속의 등장 인물

 

한 몸에 두개의 사람  ..부부는 일심동체일까?

 

복희와 여와의 상체는 사람, 하체는 뱀 이다.

복희는 남자 신으로 양을 상징하고 팔괘와 태극을 만들었고

여와는 남자신으로 음을 상징한다.

 

복희의 손에는 직각자가 여와의 손에는 컴파스가 들려잇다.

태극은 직각자와 컴파스 없이는 그릴 수가 없으니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희와 여와의 배꼽인 하체가 바로 음양의 화합 도는 태극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복희여와도가 우리나라 국립중앙 박물관에 있다는 사실

 

1900년 초 일본의 승려 오타니 탐험대가 중국에서 밀수(?)해서 한국에 들여 온 것이다.  

오타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가지고 잇던 유물을 한 사업가에게 팔고

그 유물들은 다시 조선총독부로 넘겨지고, 해방과 동시에 한국에 넘겨지게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많은 서역의 유물들이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의 중앙아시아관에 꼭 한번 둘어봐야겠다.

 

 

 

 

 

흙을 산더미 처럼 쌓아 올려 놓은 묘지들의 모습이 마치 공사장에 들어 온 착각이 든다.  .

 

 

참고로 등소평 시절 시찰 중 거리에 무덤이 너무 많이 보이자 경관이 안 좋다고 무덤을 파헤쳐 없애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는 시체를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