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 박물관
오전에는 천산천지를 둘러보고 우루무치 시내로 들어와서 여행의 마지막 관광지인 위그르 박물관을 찾았다.
먼저 1층 로비에 잇는 신강 자치구 지도를 보면서
실크로드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 ...이제야 조금 큰 흐름이 들어온다.
알타이 산맥과 천산산맥 그리고 곤륜산맥의 세 줄기
그 세 줄기 사이로 초원길, 오아시스길(사막길) , 그리고 바닷길이 만들어지고.
오아시스 길은 ...천산북로와 남로 그리고 서역 남로의 세 길이 존재한다.
상황에 따라서 여건에 따라서 필요한 길을 개척하면서 삶을 영위해간다.
현대 과학 기술에 의해 복원된 '누란의 미인'
신장위구르 박물관은
지상2층 건물로 1층에는 신강의 12개 소수민족 전시관이 있는데 의류,악기,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는 아스타나 고분에서 발견된 미라 '누란의 미녀'를 비롯한 수많은 미라들이 전시되어있다.
여기서 누란왕국의 비밀을 파헤쳐본다.
기원전부터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번성하다가
4~5세기경에 돌연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그들 누란왕국의 멸망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관련영상보기
NHK 실크로드 , 중국비단길 5부 누란왕국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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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樓蘭, Loulan)은
현재 중국령인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고대 도시의 작은 국가였다.
그 도시를 중심으로한 국가를 누란국이라 하였다.
서역의 남도와 이어져 공작강하류의 로프누르 호의 서안에 위치하며 비단길 교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끝에 위치)
실크로드 중 지리상, 군사상 주요한 지역이였다.
누란을 지배하는 자가 실크로드를 지배한다고 할 정도로 ...
이 누란 왕국은 한나라와 흉노족의 치열한 공간이다.
한무제는 흉노족을 몰아내기 위해 700여명의 군사를 파견했던 곳이기도 하다.
장안에서 3,000Km 떨어진 이곳 변방까지 사수하고자 했던 .. 그 이유는 ... 전략상으로 서역으로 가기위한 중요 거점 지역이 아니였을까?
누란은 동.서 문명의 융합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1906년 오렐스타인이 발견한 패총에서 한자와 고대 페르시아어와 인도어로 쓰인 많은 기록들을 발견
이곳에서 누란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발견됨.
목간 (나무에 글씨 조각), 나무로 만든 고대 방적기 부품, 누란여인의 금반지,
페르시아의 유리구슬, 마뇌로 만든 로마식 귀걸이. 쿠샨왕조의 구리동전등을 통해 동서문화가 서로 융합햇던 지역이였음을 잘 알 수 있다.
약 1,600년 전 누란국은 소실되었고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기원전 77년에 한나라의 영향 아래에 가를 샨샨(鄯善)으로 개칭하였지만 그 후에도 누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누란으로 불리는 도시 또는 국가가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옛날 신석기 시대로부터 거주가 시작되었던 것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른바 「누란의 미녀」로서 알려진 미이라는 입고있던 의복의 탄소 연대측정에 의해서 BC 19세기 무렵의 인물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문헌에 '누란'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사마천이 쓴《사기》에 수록된 편지 중에서 발견된 것이 최초(기원 전 2세기)이며,
그 사이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 편지는 흉노의 지배자 모돈 선우가 전한의 문제에게 보낸 것으로,
이 편지에서 모돈 선우는 월씨에게 승리해, 누란·오손·호게 및 근처의 26국을 평정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편지는 문제 4년(BC 176년)에 보내진 것이므로, 누란은 적어도 BC 176년 이전에 형성되어 월씨의 세력권에 있던 것이다.
그리고 BC 176년경 흉노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한서》 ‘서역전’에 의하면, 서역을 전체를 지배하에 둔 흉노는 언기, 위수, 위려의 사이에 동박도위를 두어
누란을 포함한 서역 여러 나라에 세금을 부과하고, 하서회랑에 수만의 군세를 두어 그 교역을 지배했다.
출처 : 오마이 뉴스
지도상으로 봤을 때 있어야 할 로프노르 호수가 보이질 않는다???
왜 !!!헤딘박사 왈, 1,600년을 주기로 호수가 원상복귀한다는 설
모래 바닥 때문에 호수가 점점 높아지고 호수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호수가 북-> 남쪽으로 이동
1,900년에는 호수가 다시 남쪽에 북으로 이동한다고 예측
그런데 헤딘의 예측대로 그곳에 있어야 할 호수가 보이질 않는다.
바닥을 파보니 암연이 발굴 ...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동쪽으로 흘러들어와 타림강의 지류를 이루고
지류중에서 물이 풍부한 것이 공작강이고
로프노르 상류에 댐(공작 강)이 설치로 호수로 물이 유입을 막았기 때문으로도 보고도 있다.
누란의 미인
코카사스 백인, 머리에는 부인의 죽음에 사랑의 표시로 달아주는 해오라기(황새)의 깃털을 꼽고,
직조된 털옷을 입고, 손에는 사막에서 자라는 약용식물 마황을 들고 있는,
긴 속 눈썹의 미모의 이 미라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듯 보여 ‘죽음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미라가 잘 보존된 것은 건조한 기후 탓이라고 한다.
무엇일까 ? 소하묘지이다.
사진 우측 앞의 배 처럼 생긴 것이 관이다. 바닥은 나무로 막지않고 시체 주변에 사면으로 나무를 설치하고, 뚜껑을 만들어 덮어주면 된다.
그리고 흙을 덮은 뒤 그 위에 긴막대기를 꽂아주면 무덤이 완성된다.
왜 관의 모양이 배모양인지 궁금해진다. 사막에 배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왜 배 모양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넣었을까?
정답은 배 모양은 아니겠지 ㅎㅎㅎ
묘지 발굴 장면
누란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70k 떨어진 이곳에서 땅위에 백양나무가 흔적들이 타원형 모양을 발견(7곳)했는데
(이스타나 고분군???)
관속에서 남자 유골이 발견... 치아도 훌륭, 체력도 잘 발달 특히 다리가 길어 누란의 지배층으로 추정.
아기의 시신을 담은 관도 발견
시신은 낙타 털로 잘 쌓여져 있다. 시신 머리위에는 밀알을 담은 작은 항아리가 발견
키가 150cm, 건조기후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미라도 발견
비단으로 쌓여있는 것이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머리에는 깃털이 꽂혀있는데
그 당시 결혼 서약의 상징으로 신랑이 신분에게 외가리 깃털을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누란의 미인 ???
붉은 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
얼굴이 가늘고 길쭉하며 머리가락은 길게 땋아서 내렸다... 근데 머리가 ... 가발이라고 ..벌서 2,000-3,000년 전에도 가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손 모양도 길쭉하고 가냘프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몸이 가늘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당나라 초기의 "고창고성 왕국"의 대장군인 "쟝송" ???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무덤도 보이고
2층 다른 관에서는 신강 고대 복식전이 열리고 있다.
1층에 있는 역사관의 말 타고 있는 남자상
댄싱 우먼의 모습
군인 ???
명청시대 복장
전통 주거지인 '유르트'
파오나 겔
위구르족의 전통 의상
위그르족들이 사용했던 전통 악기
점심 식사는 '일로순풍'이라는 음식점에서 해결
음식점 주변의 놀이동산
청소년 놀이기구 보다는 유아나 어린이 놀이 기구들이 많이 보인다.
가족들과 함께 자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자신만의 물감으로 색칠을 한다.
어린이들 체험프로그램인셈이다.
굴절버스도 보이고
이제는 중국 도시의 모습이 우리 풍경과 별반 차이가 없다.
세계화의 바람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을 .. 보고자 하는 이방인의 눈에는 시선이 가질 않는다.
미래의 삶보다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더 간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일까?
우루무치공항(국내선)에서 시안으로
오후 7시30분 벵기에 탑승
창문으로 우루무치 시내를 담아본다.
우루무치가 위그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고 하던데 이제 목장은 사라지고 그 공간에 회색 빛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목장 일을 하던 이들은 도시의 어느 일터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멀리 천산산맥과 남쪽으로 타글라마칸 사막(?) 이 눈에 들어온다.
타클라마칸 사막이 아니면 ...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으로 가는 길목의 염호와 풍력발전단지 부근 ...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천산산맥의 만년설과 연결된 봉우리들 그리고 사막 ...사막에 놓인 수많은 풍력발전기
이 험준한 산맥과 황량한 사막의 길을 지나서 그들이 진정 얻고자 햇던 것은 무엇일까 ?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음의 땅,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땅 , 쥐새끼 한 마리 조차 살 수 없는 땅,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 땅, 모래 폭풍이 시속 90km로 몰아쳐서 바윗돌이 하늘로 날아다니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고자 했던 무모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걸어서는 1년, 짧은 구간도 한 달이상 걸린다는 이곳을 ...
그런데 그런 이곳을 걷고 싶은 마음이 자꾸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낯선 곳에 대한 신비감 때문일까?
모래폭풍을 직접 목격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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