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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중국/실크로드10일(2014)

실크로드 5일차 (8월2일) 가욕관 성루와 장성박물관 . 돈황으로 이동(고비사막)

by 시경아빠 201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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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욕관역에 6시20분 도착

 

난주에서 가욕관까지는 800km,  이 길을 하서 화랑( ~ 둔황까지, 1,000km)이라고 부른다.

가는 길은 산맥과 사막사이의 협곡길 . 걸어서 한달이 걸리는 길이다. (우리는 기차로 반나절만에 휙 순간 이동)  

중간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고, 그 중 한 곳이 가욕관이다.

중국 시베이(西北) 지구의 최대 강철기지이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 가욕관 (자위관)

 

 

 

 

 

 

 

가욕관역 앞 도로

 

 

 

아침 식사 후 휴식

 

 

 

 

 

 

현대 엘란트라 ???차량

 

 

 

 

 

 

 

 

가욕관 매표소

 

 

  

 

 

 

매표소를 들어서면 작은 호수가 보이고 그 너머로 가욕관 성루가 보인다.

가욕관은 만리장성의 제일 서쪽의 끝에 위치한 관문이다.

 

 

  천하웅관 (동문 외성)

매표소에서 천하웅관까지는 전동차를 타지말고 도보로 이동할 것 ( 도보로 5분)

 

만리장성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가욕관 성루는

동서 교통로의 요지이고 실크로드를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으로

항상 400여명의 병력이 상주했던 군사요충지이다.

 

중국인들은 동쪽 끝인 산해관을 '천하제일관'이라고 하고,

서쪽 끝인인 가욕관을 '천하웅관'이라고 불렀다.

 

 

 

 

 

 

 

안내도

 

 

동문 입구에서 걸어오르다보면 우측편에 있는 <천하웅관>표지석

 

 

 

문창각 앞에서

 

 

 

문창각을 통과해서 우측으로 관우장 사찰이 있다.

관우가 중국인들의 존경하는 2대 성인에 포함된다는 사실 ???

한명을 뽑는다면 공자가 아닌 관우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숭배하는 이유는?

삼국지에서 가장 끌리는 캐릭터는 제갈량이 아니라  관우입니다.
문무를 겸비한 능력도 능력이지만 오만함에 가까운 자존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카리스마 그리고 의리를 지키다 맞은 비극적 최후는

관우를 삼국지 최고의 ‘스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공자를 문성(文聖), 관우를 무성(武聖)으로 부르며 추앙하고 있습니다.

일개 무장이었던 관우가 중국을 대표하는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른 것이지요.

또 관우는 공자보다 ‘민중적’ 입니다. 관우를 모신 사당은 공자를 모신 사당보다 많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관우를 그리 숭배하고 사랑할까요?
잘 알려졌다시피 관우는 이른바 ‘의리’의 화신입니다.
조조가 온갖 재물과 벼슬로 회유해 관우를 자기 휘하에 두려 했지만 관우는 유비의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달려갑니다.
여몽과 육손의 지략에 빠져 생포되었을 때에도 끝내 형제의 의리를 내세우며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반면 현실의 중국인들은 화교의 상술에서 나타나듯이 의리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즉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 혹은 행하지 못하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구현한 관우를 숭배함으로써

 ‘의리 콤플렉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자료 출처 => 박수호 psh4039@libro.co.kr

 

 

 

 

 

 

관우장 사찰 내에 위치한 상점에서 본 사막 소금

 

 

 

 

 

충의 첨추

 

관제묘 내부

 

 

 

관우 사원 반대편에 위치한 공연 무대

천정에는 태극 모양과 팔괘가 그려져있는 팔괘도가 있다.

 

 

 

 

 

 

 

천하제일웅관

동문 성벽의  편액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낯이 익힌 글씨이다.  동쪽 성문의 이름이 광화문이다.

 

 

 

 

 

광화문을 지나 우측 계단 위로 올라와서 (사진 광화문의 오른쪽이 올라오는 입구임)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광화문(천하제일웅관)의 사진의 왼쪽 방향으로 동선을 잡는다.

 

 

 

다시 시계방향으로 걸어간다. 남쪽 망루( 설산이 보이는 쪽)와 남쪽 각루를 거쳐서 서쪽 문에 도착한다.

 

 

 

 

멀리 기련 산맥의 설산이 들어온다.

「기련산」(祁連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대의 흉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흉노어로 「기련」은 즉 「하늘」이라는 뜻이며, 기련산은 「천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하서회랑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남산’이라고 칭해지고 있었다.

당대의 시인 이백의 「明月出天山,蒼茫雲海間;長風幾万里,吹度玉門関.」안의 「천산」은 기련산을 가리킨다.

 

 

성이 대개 외성과 내성으로 쌓듯이, 자위관의 방어 설비는 크게 나누어 내곽, 외곽, 굴의 3개로 되었다고 한다. 

굴 3개의 위치는 어디있을까? 궁금해진다.

 

 

 

 

 

 보수중인 내벽

 

 

 

외벽은 끝은 과연 어디쯤일까?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동식 겔의 모습  

 

 

 

남은 벽돌 1장은 어디 ?

전설에 의하면 가욕관의 설계자에게 어느 정도의 벽돌이 필요한가를 물어,

만약을 위해 1개 의 벽돌만 여분으로 준비했는데, 가욕관의 완성 시에는 정확하게 1개만 벽돌이 남았다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문서 상으로 남아 있어, 얼마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지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일화가 되고 있다.

(가이드는 총 10만장 중에 9만9천9백9십장이 소요되고 한 장이 남아 이것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다 서쪽 성벽에 한장을 올려 둔 것이라고 함)

 

 

 

 

 

서문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길의 보수공사 장면

 

 

 

 

 

 

 

서역으로 가는 길, 동방으로 들어오는 길

 

 

 

이 길을 지나려면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관조(關照)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고비 사막이 이들을 기다린다.

 

 

 

 

 

가욕관루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인 가욕관. 가욕관을 지나면 천연 방어막인 사막이 펼쳐진다

 

 

 

가욕관의 탄생과 몰락

 

진나라 때  서북쪽 국경은 대략 지금의 란주(蘭州)에서 그침.

 한나라때는  흉노족을 격파 하면서 간쑤성 서부인 허시후이랑 지역을 정복 -> 장성을 구축( 양관, 옥문관)

한나라 멸망 이후 삼국시대(위,촉,오)와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장성은 거의 무용지물이 됨.

수ㆍ당 시대에는 재팽창에 나서면서 장성 너머까지 영토를 넓혔다.
나라 때,  몽골족을 북방으로 밀어내고 지금의 '만리장성'의 마지막 골격이 이뤄진 것은 명나라 때다.

가욕관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한나라 때처럼 둔황이 만리장성의 끝이 되지 못한 이윤는 ?

 

 14세기 중화제국 명나라의 기본적인 대외 기조는 쇄국정책이였다.  

특히 당시 이슬람 세력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급격히 팽창하자 이를 막기 위해 허시후이랑에 대대적인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즉 가욕관은 방어를 목적으로 만든 성채다.

 

중국사에서 군사용으로서의 만리장성의 기능은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끝이 났다.

 청나라 때 부터는  만리장성이 필요 없었다. 중앙아시아나 몽골 정복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였다.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순전히 군사용 성채인 가욕관의 경우

그 효용이 떨어지자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떠나갔고 도시는 순식간에 황폐해졌다.

성곽이 재발견된 것은 19세 초 고대유적으로서다.

저료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leisure/newsview?newsid=20130906172316162

 

 

 

 

 

 

 

 

 

 

가욕관을 관람한 다음 코스는 ... 장성박물관으로 (가욕관 동문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보인다.)

 

 

 

 

 

가욕관에서 서쪽으로 돈황,  그리고 옥문관과 양관으로 연결된다.

 서역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이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얌관과 옥문관은 기원전 121년 서한때 흉노족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설치한 것이다.

 

 

 

 

서역으로 떠나기전 가족과의 이별 장면

 

 

 

서역 상인들과의 만남

 

 

 

 

 서안(병마용갱)을 출발해서 

천수 (맥적산) - 난주(병령사)를 거쳐서 ->  지금은 가욕관의 장성박물관에 서 있다.

 

앞으로 남은 여정은 돈황 (막고굴) - 옥문관 - 투루판을 거쳐 우루무치까지 가야한다. 

 

10일간의 여행 일정 중 반이 지났다.

 이번 여행 일정은 우루무치까지이지만 

마음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좀 더 들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애절하다.

 

 

 

 

 

 

한 나라시대의 기마병

한무제의 서역 경영이 가능했던 것이 바로  한혈마(漢血馬).

한무제에게는 흉노족의 말보다 더 튀어난 말이 필요했다.

대완국의 말은 전력으로 달릴 때 피와 같은 땀을 흘려 한혈마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혹자는 피부 밑에 서식하는 기생충에 감염되어 빨리 달릴 때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한다.

어찌되었던 빨리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임에 틀림이 없어보인다. 

 

 

 

우리나릐 천마총을 연상시키는데 ...무슨 관련이 있을까???

 

 

 

 

 

 

장성박물관 빠른 속도로 휘젓고 나와서는 돈황으로 출발

 

 

 

가욕관을 빠져나와 5분거리에 있는 흑산호 톨게이트를 탄다

 

 

 

 

 

고비가 끝없이 펼쳐지고

고비사막이란 지명은 중국에는 없다고 한다.

고비는 풀이 없는 지역을 말하고,  사막은 모래가 쌓인 곳이다.

아마 우리는 이 둘을 붙여서 사용하는 용어일 것이다.

 

 

 

 

황량한 사막 ,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휴게소 식당 옆으로 철인왕 ** 기념관이 있다.

현재 식당의 위치는 옥문시에 속한다.  옥문관하고 연관이 있어 보인다.

혹시 지나오면서 옥문관을 먼 발취에서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옥문시 주변으로 유명한 것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고속도로를 타면서 차창 밖 풍경으로 보았던  강철, 석유, 풍력발전기, 해바라기 농장 등이 이곳을 대표하는 자원일 것이다.  

 

 

 

 

가욕관에서 돈황가는 고속도로 주변으로는 엄청난 규모의 대단위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있다. (사진은 일부임)

상상 초월이다. 상상이 가질 않는다.

가이드는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투푸판에서 우루무치로 들어가는 길에는 이보다 더 큰 풍력발전단지가 있다고 한다.

 

 

 

 

해바라기 재배 농가 지역도 많이 보인다.

 

 

 

 

 

 

 

 

쌍탑, 고주를 통과해서 돈황까지는 193km

 

 

 

여기는 고비 + 사막입니다.

엄청 운이 좋은 날은 이곳을 지나면서 신기루를 볼 수 있답니다.

 

갑자기 호수가 나타나고

옆으로 큰강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

신기 신기합니다.

 

 

 

 

 

 

 

 

 

고비사막 한 가운데 대규모의 송전탑들도 끝없이 펼쳐진다. 

 풍력발전기에서 나오는 전력들을 공급하는 장치일 것이다.

 

 

 

삼위산(돈황 소재) 관광표지판

 

 

 

 

고속도로 주변이 거리표지판

시안에서 출발할 때가 1,200km, 현재 위치가 2,600km

 1,400km를 달려온 셈이다. 서울 -부산간 기준으로 봤을 때 왕복으로 2번 다녀오는 구간이다. 

 

 

 

 

돈황을 가기위해서는 고주 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바람이 많이 불고있다.  이곳에 왜 풍력발전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국도 주변에도 풍력발전기가 많이 설치되어있다.

 

 

 

 

 

고속도로 확장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그것고 한 사막 벌판을 가로 질러서 

 

 

 

돈황(고주)은 하미과로 유명하다.

하미과는 중국 신장 위그르 자치구 하미가 원산지로 하는 멜론의 한 품종이다.

 

하미를 중심으로 주변 기온이 높은 투르판,

쿠얼러등의 지역에서도 모두 하미과가 생산된다.

현지인들은 관광할 때 비닐 봉지에 하미과를 넣어서 갖고 다닌다.

 

 

 

하미과 건조 장면

 

 

 

 

교각위에 다리 설치로 차량이 통제되어 잠시 휴식중에 있다.

 

 

 

 

 

 

 

사막을 질주하는 승합차들

 

 

 

 

 

함께 한 일행 분이 모하비 사막(미국)과 같다고 해서  얼른 사진을 찍었다.

수업용 교재다.

모하비 사막으로 연출로도 가능하다.

 

 

 

황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속도로 주변에도 나무를 심고  물을 준다고 하는데

이 많은 나무들을 누가 관리하고,  또 많은 물은 어디서 길러와서 공급하는지 상상이 잘 가질않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면화 생산지  ???

 

 

 

드디어 돈황 톨게이트 도착

그런데 통행료를 징수하지않는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농.축산물 차량들은 징수비 면제차량이라고 한다.

 돈황에 돼지를 싣고 있는 차량이라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ㅎ

 

 

 

돈황 공항 입구와 둔황 석굴 입구를 경유해서 

 

 

 

 

돈황 시내로 들어섰다.

 

돈황 시내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다. 

돈황은 대상 교역의 중심지로 서역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서 교역이 이루어짐 (중계무역을 통해 번성)

인구 12만 정도로 사막에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이다.

 

인구 12만이면 우리나라 소도시보다 큰  규모인데 

 

 

 

특식 요리인 낙타발이다.  

먹어보니 맛은 족발 맛이다.

비위에는 거슬렸지만 언제 또 먹어볼 기회가 있나 싶어서 두개만 집어먹었다.

다른 일행 분들도 별로 손을 대지않았다.

ㅎ 비쥬얼도 별로 ~~

 

 

 

 

 

사막에서 잘 자라는 대추야자요리도 식탁에 오르고

수업 때  대추야자를 이야기할 때 대추와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똑같다.

모양도 맛도 동일하다. 크기는 크다.  

 

 

 

 

 

 

 

식사후 사주 양광 호텔(5성) 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나선  야시장 탐방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 주변 산책에 나섰다.  

 

 

 

 

호텔 바로 뒷편의 강가

아직 이른 저녁인지 강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보이질 않는다.  

 

 

 

호텔 주변 거리 풍경

 

 

 

 

호텔에서 다리를 건너 호텔을 배경으로

 

 

 

 

 

 

19인승 미니 버스에 승차한 강아지가  출입문 계단에 서있다.  

 

 

 

 

낙타발 사진 

 

 

호텔 앞 강가